[베테랑토크②] 남경주, 30년간 무대 위에서 느낀 행복·위기·인생

입력 2017-06-21 1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1982년 ‘보이 체크’로 배우의 첫 발을 내딛은 남경주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작품 대부분에 참여를 한 ‘뮤지컬 배우 1세대’ 중 대표적인 배우이며 이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뮤지컬 ‘맘마미아’, ‘아이 러브 유’, ‘시카고’, ‘브로드웨이 42번가’, ‘라카지’, ’위키드‘ 등 30년간 수많은 무대에 올랐고 여전히 대선배로서 기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남경주에게 물었다. 그의 첫 무대가 기억이 나는지. 그는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라며 “내가 지금 연습하는 곳 맞은편 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 정말 떨려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떨려서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게 동랑 레퍼토리 극단 정기 공연이었어요. 정동환 선배도 ‘보이 체크’를 하셨고 김명환 선배, 한성옥 선배 등과 함께 했던 것이 다 기억이 나요. 저는 대사가 없었고 일종의 ‘멀티맨’이었어요.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보이 체크’를 사형시키는 병사 역할을 했었어요. 그런데 첫 무대니까 총을 들고 있는 제가 벌벌 떨고 있더라고요. 나중에 연출가께서 ‘사형 집행하는 놈이 벌벌 떨면 어쩌냐’며 꾸중을 듣기도 하고요. 동기 녀석이 화약을 터트려야 하는데 나름 준비한답시고 전날 화약을 붙여놨다가 습기가 차 정작 공연 때 안 터져서 엄청 혼이 난 적도 있어요. 그런 기억이 나네요.”

남경주는 3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무대 위에서 더 없이 행복하게 지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은 아니었다. 조각가를 꿈꿨던 그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조소과가 별로 없었고 자신의 학교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형이자 배우 남경읍이 서울예전을 알려주며 연기자가 돼보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정말 부랴부랴 준비를 한 것 같아요. 형이 자기가 하는 작품 대본을 주며 리딩하는 법을 알려줬고 판토마임 등 제 입시를 위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형님은 제게 아버지이자 선배, 선생님과 같은 존재예요.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와 함께 저희 남매를 거의 키우다시피 하셨죠. 어렸을 적에 유독 제가 말썽을 많이 부려서 형님한테 많이 맞기도 했어요.(웃음) 또 선배로서 연기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하기도 했죠. 형님 덕분에 춤이나 연기 연습을 많이 할 수 있게 됐어요. 정말 죽도록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대선배로 무대에 오르는 남경주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렸을 적 나는 뭐가 조금 된다고 건방졌던 것 같다. 지금도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무덤을 팠던 적도 있었다”고도 말했다.

“어릴 때부터 이름이 알려져 일이 정말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다 보니 일만 할 줄 알았지 기량을 닦을 노력을 하지 않더라고요. 다행히도 형님이 조언해주셨을 때 훈련 받았던 기술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써먹으려고만 했지, 배우지 않으니까 몸도 녹슬더라고요. 그 사이에 뮤지컬 배우들이 점점 늘어났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게 됐어요. 제가 42세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후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다시 기본에 충실하자는 다짐이었죠.”

그는 학생 때 읽었던 연기론도 다시 읽고 철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섭렵했다. 더 이상 도태될 수 없다는 그의 강인한 결심이었다. 남경주는 “계속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다. 나름 개똥철학이지만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저를 즐겁게 괴롭힌 거죠. 그런데 결국 제게는 도움이 됐어요. 뭔가를 더 안다는 것이 대본을 분석할 때도 도움이 되고요. 그게 맡은 배역을 표현함에 있어서 든든함으로 작용이 돼요. 지금도 분명 위기가 있고 슬럼프가 있지만 인간은 늘 투쟁하며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세상을 살며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려고 투쟁하는 게 당연한 거고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다면 넘어가든 치우고가든 해야 하잖아요. 그런 걸 조금씩 깨달으면서 저도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배우로 살고 싶은지 묻자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우타 하겐(Uta Hagen)의 ‘산연기(Respect For Acting)’이라는 전공서적이 있어요. 거기에 존경받는 배우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과잉도 과소도 아닌. 연기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내가 아닌 사람을 연기하거나 멀리 떨어진 일을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정말 치열하고 진실하게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탐구를 하고 끊임없이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 상태에서 무대에 올랐을 때 정말 그 순간에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관객들이 생각했을 때 ‘그래, 그 사람이 거기 있었지’라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