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유준상·왕용범, 10년을 함께 한다는 것

입력 2018-03-15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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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배우 유준상은 연출가 왕용범을 처음 봤을 때 ‘독특하다’고 생각했고 왕용범은 유준상을 보며 ‘저렇게 다리 길고 멋있는 배우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돼 뮤지컬 ‘삼총사’를 함께 했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10주년 공연을 하게 됐다. 그 사이 이들은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을 함께 하며 인연을 이어갔고 이제는 서로에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오죽하면 ‘왕용범 사단’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유준상은 “아내 홍은희 씨가 ‘그냥 왕 연출이랑 살아라’ 할 정도다”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를 얻은 것 같다”라고 왕용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왕용범 역시 “제 아내도 그런 소리를 하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인터뷰 내내 유준상은 단 한 순간도 왕용범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형이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말을 놓은 적이 없다고. 그는 “나이를 알았을 때 말을 놓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뮤지컬 ‘삼총사’는 알렉산드로 뒤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삼총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7세기 프랑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전설적인 총사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은 뮤지컬이다. 10주년을 맞이해 16일부터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올해 10주년 공연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유준상 때문이었다. 4년 전 ‘삼총사’ 마지막 공연을 할 때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2018년이 ‘삼총사’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때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관객들과 약속을 한 것. 유준상은 “점점 2018년이 다가오더라. 약속을 했으니 지키긴 해야겠고…. 그런데 왕용범 연출이 너무 바빠서 간신히 설득시켜 함께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저 3개월가량 설득 당했어요. 하하. ‘프랑켄슈타인’도 준비해야 하고 여러 할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다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이 지났으니까 다들 많이 늙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연습실에 가니 다들 그대로더라고요. ‘어? 10년 더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10년 뒤에 유준상 씨 환갑이거든요. 환갑 선물로 ‘삼총사’ 할 수 있게 해주려고요. 그 때 되면 유준상 씨 아들이 ‘달타냥’ 할 나이가 될 것 같은데요?” (왕용범)

“제가 ‘삼총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요. 예전에 이 작품을 체코에 가서 봤는데 이대로 가져오면 절대 성공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이름’만 사와서 대본과 음악을 새로 만들어 하나의 ‘창작품’을 만들었거든요. 나중에 그 체코팀이 우리 공연을 보고 정말 놀라워하며 그 작품 그대로 자기들에게 넘겨달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너무 행복했죠.”(유준상)


10년 전 유준상은 왕용범의 연출법을 보고 놀라웠다고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방법”이었다며 자신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은 초반에 의심을 가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연습을 다 마친 후 혼저 남아 왕용범 연출이 각 배우들의 동선을 정하는 등 모습을 보며 뛰어난 연출가가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출에 대해 의심하는 배우들에게도 “우리가 저 연출을 무조건 믿고 가야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시스템이어서 다른 배우들도 이해를 못했어요. 일반적으로 한 장면씩 만드는데 왕용범 연출은 1막 동선을 한 번에 그리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죠. ‘이 사람 천재다, 믿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수년간 봐온 결과 배우들이 연습하기 전에 혼자서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하세요. 그래서 가장 좋은 동선과 대사를 짜주시죠. 그러니 연습도 빨리 진행되고 배우들도 더 열심히 연습할 수밖에 없어요.”(유준상)

“‘삼총사’ 처음 했을 때가 제가 35세였거든요. 그런데 수십억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한다니 믿겨지지가 않았죠. 당시에 압박감이 심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참 많이 울었어요. 게다가 배우들과 멱살만 안 잡았지 한 번씩 크게 싸우기도 하고요. 한참 나이 어린 연출가가 생소한 방법으로 작품을 올리니 신뢰를 못 받았죠. 그럼에도 유준상 선배는 격려해주셨죠.”(왕용범)

왕용범에게 있어서 유준상은 물질적·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후배 배우들을 잘 이끌어주는 선배이기도 하고 간식부터 여러 가지 등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고. ‘벤허’를 했을 당시 유준상은 체력과 몸을 키워야 하는 배우들을 위해 ‘단백질 파우더’를 제공하기도 했다. 왕용범은 “‘형수님은 아시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앙상블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씀씀이가 크시다”라고 말했다.

“늘 솔선수범하는 배우예요. 유준상 선배가 열심히 하니까 다들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저희가 장기공연을 하다 보면 긴장이 풀릴 때가 있거든요. 그 때 되면 또 알아서 기강도 잡아주세요. 그럴 땐 정말 무서워요. 여름 공연 때 지각하면 벌칙도 있었어요. 당연히 준상 선배도 지각하시면 예외 없습니다! (웃음) 이런 배우 마음가짐 덕분에 ‘삼총사’가 10년 동안 사랑받지 않았나 생각도 들어요.”(왕용범)


유준상은 올해 하는 ‘삼총사’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대본을 보는데 ‘이번 대본이 마지막이겠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헤어질 때가 됐다니 슬프고 애틋하더라”고 말했다. 이에 왕용범은 “노인이 된 삼총사의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초연멤버인 ‘엄유민법’(엄기준·유준상·민영기·김법래)가 다 모이니까 그냥 웃겨요. 그런데 다들 책임감도 커서 열심히 해요. 아마도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쏟아내는 것 같아요. 우리도 열심히 하지만 이번에 앙상블들이 정말 잘해요. 아마 보시는 분들의 눈이 즐거울 정도로 에너지 가득한 공연이 될 것 같아요.”(유준상)

“‘삼총사’를 처음 쓸 때 ‘아버지’를 보며 테마를 잡았거든요. 저희 집이 사업을 하다가 IMF로 부도가 나서 형편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내가는 모습을 보며 ‘삼총사’를 생각해냈어요. 이제는 한물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정말 큰 일이 생겼을 때 힘을 합쳐 정의를 구하는 것처럼 힘 잃은 가장들이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에 이 작품을 썼었죠. 그래서 이후에 정말 노인이 된 ‘삼총사’의 모습도 기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왕용범)

왕용범 연출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준비 중이다. 왕용범 연출은 ‘신곡’으로 ‘신(神)의 3부작’을 완성시키겠다고 말했다. ‘프랑켄슈타인’이 ‘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 ‘벤허’가 ‘신을 만난 사람’이라면 ‘신곡’은 ‘신을 죽여야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왕용범 연출은 새로운 작품 역시 유준상에게 역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유준상이 80세가 됐을 때 예술의전당에서 ‘노인과 바다’를 시키는 게 바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작품까지 함께 하고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어요. 정말 훌륭한 배우와 함께 연을 놓지 않고 한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유준상 씨에게도 미리 말해놨어요.”(왕용범)

“왕용범 연출의 작품을 보면 스스로 반성하게 돼요. 그와 함께 작품을 하면 겸손함을 먼저 배우게 되죠. 나이를 떠나 신뢰하고 존경하고 있어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저절로 그렇게 돼있더라고요.”(유준상)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쇼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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