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가 꿈꿔온 그림, 스케치는 이미 끝났다!

입력 2018-02-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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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보이’ 이상호는 24일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거머쥐며 한국 스키·스노보드 첫 메달의 역사를 작성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스노보드에 대한 지원 환경이 개선되길 기대하고 있다. 태극기를 펼쳐든 이상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에서 스노보더의 꿈을 키워 ‘배추보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상호(23·한국체대)는 2016년 12월 국제스키연맹(FIS) 카레차월드컵 4위를 차지한 뒤 당찬 포부를 밝혔다. “내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냄으로써 한국스노보드가 세계적으로 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알파인스노보드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도전의 길이 열릴 수 있고, 선수를 양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상호는 무명에 가까웠던 스노보더였다. 이제 막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리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때 밝힌 포부를 막연한 꿈으로 여겼던 이유다. 그러나 겁 없는 23살 청년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뽐내며 2년 전 그렸던 그림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 무대는 올림픽이었다. 이상호는 24일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렸던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정상급 선수들을 차례로 꺾으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상 처음 나온 동계올림픽 메달이었다.

남자 스노보드대표 이상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레이스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예선을 3위로 통과한 이상호는 16강부터 1대1 대결을 펼쳤다. 최대 고비는 준결승이었다. 얀 코시르(슬로베니아)와 치열한 접전 끝에 단 0.01초 차이로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그러나 금메달의 문턱은 높았다. 세계랭킹 1위 네빈 갈마리니(스위스)와 맞대결에서 0.43초 뒤져 은메달에 만족해야했다.

비록 금빛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이날 성적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었다. 그간 불모지로 통했던 스키·스노보드 종목에서 처음 나온 동계올림픽 메달이기 때문이다.

새 역사를 써낸 이상호는 이제 더 큰 목표를 그린다. 경기 직후 “이번 메달을 통해 스노보드에 대한 지원이 좋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러면 유럽 선수들과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짧은 소감 속에 밑그림은 모두 완성됐다는 뿌듯함이 엿보였다.

강릉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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