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 사커에세이] 이란전 비기기만 해도? 방심이 최고의 적!

입력 2013-06-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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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축구 대표팀 감독. 스포츠동아DB

1996년 12월16일은 한국축구사에 얼룩이 크게 진 날이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2-6으로 완패했다. 이란 스트라이커 알리 다에이에게 무려 4골이나 내주면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당시 사령탑이던 박종환 감독이 경질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 경기 이후 이란으로 출장 갈 기회가 있었는데, 현지인들로부터 ‘식스(6)-투(2)’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공항이나 호텔, 경기장 등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식스-투’를 내뱉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현지 교민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아차렸다. 경기가 끝난 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6-2의 결과를 들먹이는 걸 보면 당시 이란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미뤄 짐작이 갔다. 하지만 자꾸 듣다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한국은 이란축구를 따라 오지 못한다는 뉘앙스였기에 한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18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선 이란과 2014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8차전)이 열린다. 마지막 승부다. A조 1위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딴다. 이란에 대패하고 같은 시간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를 크게 이기지 않는 한 조 2위는 무난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의 수를 믿으면 곤란하다. 경우의 수는 함정이다. 거기엔 방심이라는 못된 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잘못하다간 방심에 당한다. 축구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게 바로 ‘비기기만 해도 된다’는 경우다.

지난 해 한국은 이란 원정에서 0-1로 졌다. 이번에 되갚아야 한다. 역대 전적에서도 9승7무10패로 열세다. 키를 맞춰야한다. 앞으로도 이란과는 계속 맞붙는다. 이 때문에 본선 티켓 여부를 떠나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다.

지난 주 화제는 양 팀 감독들의 설전이었다. 이번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엿볼 수 있는 예고편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11일 우즈베키스탄과 7차전을 마친 뒤 “선수들 모두 작년 10월 이란 원정에서 받은 푸대접을 기억하고 있다. 이란이 밉다”고 말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에서 푸대접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란은 최선을 다했다. 최 감독이 이란에 모욕을 줬다. 이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이어 최 감독은 케이로스를 향해 “내년 브라질월드컵은 고향 포르투갈에서 TV로 보시기 바란다”며 더 강한 코멘트를 날렸다.

사령탑이 전면에 나서 설전을 벌이면 선수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는 충분하다. 아울러 국가간 자존심이 걸린 경기다. 죽을 각오로 나서야한다. 4년 전 이란의 스타플레이어 네쿠남은 원정을 앞둔 한국 선수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번엔 우리 차례다. 이란 선수들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주자.

이제 월드컵 최종예선도 딱 한경기만을 남겨뒀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속담처럼 마무리를 잘 해주길 바란다.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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