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ML 타임슬립] 5시간50분 혈투…백전노장의 생애 마지막 PS 승리

입력 2013-12-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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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클레멘스의 투혼 빛난 2005년 NLDS

애스트로스 창단 첫 월드시리즈 티켓 획득 명승부
브레이브스에 2승1패로 앞선 4차전 18회 연장전
클레멘스 16회 마운드 올라 3이닝 4K 무실점 역투


2013시즌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로 이동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텍사스 레인저스, LA 에인절스 등 강호들의 틈바구니에서 팀 연봉이 2100만달러에 불과한 애스트로스는 51승111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남겼다. 3년 연속 100패 이상을 당하는 치욕을 맛봤다.

1962년 창단된 애스트로스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5년이다. 당시 2년 연속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나선 애스트로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터너필드에서 열린 1차전에서 애스트로스는 5-3으로 앞선 8회초 대거 5득점해 10-5의 완승을 거뒀다. 선발 앤디 페티트는 4-3으로 앞선 7회초 2루타를 친 뒤 모건 엔스버그의 적시타로 홈을 밟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브레이브스는 치퍼 존스와 앤드루 존스의 홈런포에도 불구하고 선발 팀 허드슨의 부진으로 홈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2차전에선 브레이브스가 7-1로 이겼다. 존 스몰츠가 1회초 먼저 1실점하며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최근 뉴욕 양키스와 장기계약을 한 브라이언 매캔이 2회말 자신의 포스트시즌 첫 타석에서 43세의 노장 로저 클레멘스로부터 통렬한 3점홈런을 빼앗아 전세를 뒤집었다.

미닛메이드파크로 옮겨 치러진 3차전에선 애스트로스가 7-3으로 승리했다. 로이 오스왈트가 마운드를 지킨 가운데 마이크 램이 3회말 2-2의 균형을 깨는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다. 7회말 4점을 추가하며 승기를 잡은 애스트로스는 2승1패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1승만을 남겨놓았다.

10월 10일 열린 운명의 4차전. 미닛메이드파크에는 4만3000여 관중이 운집해 애스트로스의 승리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러나 탈락 위기에 몰린 브레이브스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3회초 애덤 라로시가 애스트로스 선발 브랜든 배키를 두들겨 만루홈런을 뽑아냈고, 4회초에는 앤드루 존스의 희생플라이를 앞세워 5-0으로 달아났다. 5-1로 앞선 8회초에는 매캔이 솔로홈런을 때려 승부의 추가 브레이브스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듯했다.

그러나 각본 없는 드라마는 8회말 시작됐다. 1사 만루 찬스서 랜스 버크먼이 우완 강속구 투수 카일 판스워스로부터 만루홈런을 뽑아내 5-6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2개의 만루홈런이 터진 것이다. 홈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화답하듯 애스트로스는 9회말 2사 후 브래드 아스머스(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가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동점 솔로홈런을 때려 판스워스를 녹아웃시켰다. 정규시즌 134경기에 출전해 고작 3홈런에 그쳤던 아스무스의 깜짝 홈런이었다.

화끈한 타격전이 전개된 정규이닝과는 달리 연장 들어서는 팽팽한 투수전이 전개됐다. 애스트로스는 15회말 3이닝을 던진 댄 휠러 대신 클레멘스를 대타로 기용했다. 2차전에서 패전투수가 됐던 클레멘스는 팀의 8번째 투수로 16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을 4개나 잡아내며 1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18회말 선두타자로 다시 타석에 선 클레멘스는 브레이브스의 루키 조이 드바인을 상대로 끈질긴 승부를 펼쳤지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 타자는 크리스 버크. 연장 10회말 대주자로 투입됐던 버크는 볼카운트 2B에서 드바인의 3구째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끝내기홈런을 때려 5시간50분의 혈투를 마무리지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버크의 끝내기홈런볼을 잡은 애스트로스의 팬이 8회말 나온 버크먼의 만루홈런볼도 잡았다는 점이다.

이 경기에서 양 팀 투수들이 던진 공은 무려 553개에 달했다. 클레멘스는 애스트로스 투수들이 기록한 299개의 공 중 마지막 44개를 던졌다. 결국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치고 6-7로 무릎을 꿇은 브레이브스는 1승3패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991년부터 15년 연속 지구 우승의 신화를 만들었지만 포스트시즌에 약한 징크스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만난 애스트로스는 4승2패로 승리하고 팀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의 꿈을 이뤘다. 특히 2004년 3승4패로 분패한 아쉬움을 갚고 따낸 44년 만의 첫 월드시리즈행 티켓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3차전 선발로 출전한 클레멘스는 자신의 포스트시즌 12번째이자 마지막 승리를 따냈다. 2승무패, 방어율 1.29를 기록한 로이 오스왈트가 챔피언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애스트로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4경기를 모두 패해 창단 첫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한 애스트로스는 단 한 차례도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하며 길고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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