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2013년 한국축구 명암] 우승도 득점왕도 뺏긴 2013년 그럼에도 가장 빛났던 김신욱

입력 2013-12-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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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감격과 아픔을 두루 맛본 울산 김신욱은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잊고 더욱 희망찬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10월 서울과 K리그 클래식 홈경기에서 헤딩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스포츠동아DB

5. 울산 김신욱

우승·득점왕 놓치고도 연말 시상식 휩쓸어
김호곤 감독의 사퇴…아버지를 잃은 느낌
월드컵·AG 앞둔 내년에도 최고보다 최선


김신욱(25·울산 현대)처럼 다이내믹한 2013년을 보낸 스포츠 스타가 또 있을까.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아픔과 아쉬움, 환희와 행복이 두루 했던 시즌이었다. 기록으로는 빈손이었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에서 마지막까지 승승장구했던 소속 팀 울산은 정규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고, 자신도 FC서울 데얀과 득점 동률(19골 6도움)을 이루고도 출전 경기 횟수가 많은 탓에 득점왕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래도 김신욱의 노력과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았다.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항상 주인공이었다. 프로축구연맹 주최 시상식에서는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최우수선수(MVP)와 함께 팬들의 직접 투표로 선정한 팬타스틱 플레이어, 올해를 대표하는 베스트11 공격수 부문에 선정되면서 3관왕에 올랐다. 동아스포츠대상 올해의 프로 축구 주인공도 김신욱이었다. 다른 팀 동료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선정된 결과라 수상의 의미는 더욱 컸다.


● 어제도 오늘도 오직 동료, 김호곤 감독뿐

12월1일 울산문수경기장. 승점 2를 앞서 선두를 달려오던 울산이 2위 포항과 운명의 승부를 펼쳤다. 지지만 않으면 정상에 오를 찬스였다. 울산은 추가시간 막판까지 95분을 잘 버텼다. 하지만 1분을 넘지 못했다. 0-0에서 포항의 결승골이 터졌다. 운명이 엇갈렸다.

올 시즌 FA컵까지 챙긴 포항은 정규리그까지 평정했고, 울산은 모든 것을 잃었다. 이날 김신욱은 경고 누적으로 관중석에서 혈전을 지켜봤다. 추가시간이 계속된 93분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선 그는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향하던 중 예상 밖의 장면에 몸이 얼어붙었다. 11월27일 부산 아이파크 원정(1-2 패) 때 옐로카드를 받은 뒤 마지막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순간부터 금식기도를 하며 울산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던 그의 눈시울이 금세 붉게 변했다.

그날 밤, 김신욱은 동갑내기 개인 트레이너 이창현 씨와 서울 중구의 웨스틴조선 호텔에 숙박했다. 2일 동아스포츠대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와 소주를 몇 병씩 사왔다. 수년만에 처음으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셨다. 동아스포츠대상 시상대에 선 수상 소감도 남달랐다.

“우리가 준우승을 해서, 또 내가 득점왕을 놓쳐 슬픈 게 아니다. 내가 뛰었더라도 결과는 바꿀 수 없었을 거다. 진정 아팠던 건 필드에서 동료들과 함께 준우승의 쓰라림을 맛보지 못해서다.”

결국 김신욱은 ‘평생의 은사’ 김호곤 감독까지 떠나보냈다. 아마추어 시절 중앙 수비수로 뛰던 그의 공격수로서의 재능을 발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키운 김 감독이었다. 엄청난 신장(197.5cm)에도 불구, 머리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그가 ‘머리도 발도 잘 쓰는’ 완전체 공격수로 탈바꿈하기까지 김 감독의 든든하고도 꾸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럽 진출을 미루고 8월 울산과 3년 재계약을 한 것도 오직 김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관계가 밑바탕이 됐다.

“축구의 아버지를 잃었다. 앞으로 내가 (김호곤 감독님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최고가 아닌,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는 김신욱의 시선은 내일을 향한다.


● 2014년을 진짜 무대로

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지나갔다.

김신욱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장 내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뒀다. 조광래호에서 최강희호까지 일련의 대표팀을 거친 동안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본격 출항한 홍명보호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핵심 선수로 떠오르고 있다. 7월 동아시안컵 당시 “김신욱에 대한 점검은 끝났다. 경기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상대에 우리의 전술을 미리 공개하는 건 치명적이다”라던 홍 감독의 평가는 11월 스위스와 올해 국내 마지막 A매치(2-1 한국 승)가 끝난 뒤 “최선을 다한 모습이 훌륭했다. 김신욱의 활용과 이를 통한 전개 상황을 준비했고, 잘 맞아 떨어졌다. 높이도 기술도 우수했다”로 바뀌었다.

김신욱의 간절함이 통했다. 대표팀에 소집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다. 홍 감독의 싸늘한 평가가 나왔을 때도 포기하는 대신, 땀을 흘렸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개인 훈련은 이제 축구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실력 못지않은 자세의 성숙함과 성장이 특히 많은 어필을 한다. 브라질월드컵은 물론, 올해 이루지 못했던 K리그 클래식 제패와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김신욱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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