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창간 9주년] ‘월드 스타’ 김연경이 꼽은 최고의 순간들

입력 2017-03-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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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김연경. 스포츠동아DB

2008년 3월 24일 창간호를 발행한 스포츠동아는 9년간 다양한 종목에 걸쳐 수많은 선수들의 가슴 뜨거운 사연을 발굴했다. 특히 스포츠동아가 창간한 해에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선수들에게는 유독 눈길이 간다. ‘배구 여제’ 김연경(29·터키 페네르바체)도 그들 중 하나다.

2005~2006시즌 한일전산여고를 졸업하고 프로무대(흥국생명)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2008~2009시즌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며 V리그를 평정했고, 이후 일본 JT 마블러스를 거쳐 2011~2012시즌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꼽히는 터키 무대(페네르바체)에서 활약 중이다. 김연경에게 2008년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달라고 하자 “딱 한 순간을 꼽을 수는 없다”면서도 “일본, 터키에 진출한 첫 시즌과 2012런던올림픽,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순간을 돌아봤다.


● 흥국생명 우승 : 2008~2009시즌

김연경이 해외 무대에 진출하기 전 V리그에서 뛴 마지막 시즌이다. 그해 김연경은 28경기에서 경기당 23.93득점(4위·국내선수 1위), 공격성공률 47.09%(2위·국내 1위), 세트당 0.368서브(1위)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서 입지를 굳혔다. 또 리시브 부문에서도 5위(세트당 3.556)에 오르며 ‘만능 선수’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소속팀 흥국생명은 3위(16승1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KT&G(현 KGC인삼공사)와 GS칼텍스를 연파하고 챔피언결정전 왕좌에 앉았다. 김연경은 챔프전 4경기에서 경기당 23.25득점, 공격성공률 52.6%를 기록하며 팀에 마지막 선물을 했다.

흥국생명 시절 김연경. 스포츠동아DB



● 일본 JT : 2009~2010·2010~2011시즌

2009~2010시즌부터 김연경은 일본 V프리미어리그의 JT로 임대 이적했다. 한국 선수의 일본리그 진출 사례도 김연경이 처음이었다. 이적 첫해부터 일본국가대표 세터였던 다케시타 요시에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늘 중위권에 머물렀던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공을 인정받았다.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2010~2011시즌에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쥐었다. 2시즌 연속 베스트 6(레프트)에 뽑힌 것은 당연했다. 팬들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JT를 떠나 귀국할 당시 동료 전원이 공항까지 나와 김연경을 배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JT 입단 당시 김연경. 스포츠동아DB



● 터키 페네르바체 입단·챔피언스리그 우승 : 2011~2012시즌

일본 무대에서 2년간 활약을 발판 삼아 터키 무대에 진출했다. 아로마리그(여자부) 강팀으로 꼽히는 페네르바체에 입단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 최고 리그의, 최고의 팀의, 최고의 선수였다. 클라우디오 파비아나(브라질), 로건 톰(미국), 류보프 소콜로바(러시아)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이뤄낸 결과라 의미가 컸다. 주전 세터 나즈 아이데미르(현 바크프방크)와 호흡도 일품이었다. 그해 페네르바체는 22전승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김연경은 전승 우승을 확정한 날도 19득점(5서브), 공격성공률 54%, 리시브성공률 40%의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팀들이 겨루는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이 첫 우승을 차지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 준결승에서 2m2㎝의 장신 공격수 에카테리나 가모바(러시아)가 버틴 디나모 카잔(러시아) 격파에 일조하더니 RC 칸(프랑스)과 결승 1~2차전 2경기에선 총 55득점을 쏟아 부으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다. 당시 현지 중계진은 ‘MVP는 반드시 김연경이어야 한다(MVP is Kim, It has to be)’는 말로 그의 활약에 경의를 표했다. 한국 배구의 위상도 덩달아 올라갔다.

페네르바체 김연경. 사진제공|페네르바체 페이스북



● 2012런던올림픽 4강

터키리그 첫 시즌의 좋은 기운을 2012런던올림픽까지 이어갔다. 당시 한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올랐다. 비록 미국과 준결승전, 일본과 3~4위결정전에서 패해 메달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한국배구의 성장을 알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김연경은 8경기에서 경기당 25.88득점(총 207득점)을 기록하며 대회 MVP와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격성공률 3위(35.57%), 서브 7위, 리시브성공률 9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전방위에 걸쳐 활약했다.

런던올림픽 당시 김연경.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2014인천아시안게임 우승

2014인천아시안게임은 김연경은 물론 한국 여자배구에도 의미가 큰 대회였다. 김연경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5위,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 한국여자배구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1994히로시마대회 이후 20년만이었다. 당시 중국과 결승전에서 26득점을 기록하며 한국의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이끈 뒤 그는 “개인적으로 국제대회 우승은 처음이다. 금메달이 참 무겁다”는 말로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연경. 스포츠동아DB



●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8강

리우올림픽 본선무대를 향한 김연경의 열망은 대단했다. 평소 시원시원한 화법으로 궁금증을 풀어주던 그였지만, 예선을 앞두고는 “일단 본선에 가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2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해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터키리그를 마치고 귀국해 단 하루만 쉬고 대표팀에 합류한 터라 체력적인 부담도 대단히 컸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김연경은 리우올림픽 6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112점(경기당 18.67득점)을 올렸고, 블로킹(세트당 0.38개)과 서브(세트당 0.19개) 등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제 몫을 충분히 했다. 디그(세트당 1.90개)와 리시브(정확도 34.71%)에도 적극 가담했다. 리우올림픽은 김연경이 왜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지를 보여준 대회였다. 한국은 8강전에서 강호 네덜란드에 덜미를 잡혀 탈락의 아픔을 맛봤지만, 김연경의 존재감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김연경은 “가능하면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뛰고 싶다”는 말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리우올림픽 당시 김연경.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여전히 터키리그 최고의 선수

김연경은 여전히 페네르바체에서 뛰며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소속팀은 전승 우승을 차지한 2011~2012시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리그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김연경이 처음 입단했을 때 동료는 센터 에다 에르뎀, 리베로 멀브 달베르가 전부일 정도로 선수구성은 확 바뀌었다. 그럼에도 김연경의 입지는 탄탄하다. 올 시즌 페네르바체가 터키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도 김연경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리우올림픽 최우수선수(MVP)였던 주팅(중국)과 로네크 슬뢰체스(네덜란드), 밀레나 라시치(세르비아) 등이 버틴 바키프방크도 김연경의 벽을 넘지 못했다.

페네르바체 김연경. 사진제공|페네르바체 페이스북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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