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창간 9주년] 2008베이징올림픽이 남긴 영광과 선물

입력 2017-03-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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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이 흘렀지만 다시 봐도 감동은 그대로다. 스포츠동아가 창간한 2008년에 한국야구는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 신화를 쓰며 금메달을 획득해 국민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중국 베이징의 우커송 구장에서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흔들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한국 선수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2008년 3월 24일 세상 밖으로 나온 스포츠동아는 창간 첫 해, 한국야구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공유한다. 바로 2008베이징올림픽 전승우승의 영광. 올림픽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야구는 이후 가파른 성장을 이루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스포츠동아 역시 한국야구의 비약적인 발전과 궤를 함께 했다. 그렇다면 9년이 흐른 지금, 베이징올림픽이 남긴 선물은 한국야구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있을까. 스포츠동아는 창간 9주년을 맞아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달성한 베이징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추억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당시 금메달에 이르는 과정은 물론 우승 주역들의 이후 발자취를 따라가며 베이징이 한국야구에 남긴 유무형의 선물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2차 예선 끝에 베이징 향한 ‘김경문호’

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을 8개월 앞둔 2007년 3월. 한국야구는 대표팀 수장으로 당시 두산을 지휘하던 김경문을 깜짝 선임했다. 많은 후보들이 감독 수락을 고사한 가운데 4년차에 불과하던 김 감독에게 지휘봉이 넘어간 것이다.

베이징을 향한 첫 관문은 지역예선이었다. 한국은 박찬호와 이병규, 김동주 등 국내외 프로선수들을 총동원해 2007년 11월 아시아선수권을 겸한 지역예선이 열리는 대만 타이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한 장뿐인 본선진출권 획득에는 끝내 실패했다.

한국은 결국 이듬해인 2008년 3월 다시 타이중으로 건너갔다. 최종 플레이오프에선 3위 이내에 들어야 베이징행이 가능한 상황. 한국은 당시 요미우리에서 뛰던 ‘국민타자’ 이승엽까지 포함시켜 결의를 다졌다. 남아공과 호주, 멕시코, 스페인, 독일을 차례로 꺾어 파죽의 5연승을 내달리던 한국은 6차전에서 캐나다에 3-4로 발목 잡혔지만, 대만을 4-3으로 잡고 최종순위 2위로 올림픽 티켓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운명의 여름이 다가왔다. 김 감독은 7월 14일, 올림픽에 나설 최종엔트리 24명을 발표했고, KBO리그는 8월 1일부터 25일간 중단시킨 채 베이징올림픽에 전력을 쏟았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9전전승’ 새 역사 써낸 우커송의 기적

베이징 본선은 8개국이 맞붙는 풀리그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한국은 첫 판부터 힘든 경기를 펼쳤다. 8월 13일 미국전에서 6-4로 앞서던 9회초 6-7로 역전을 허용한 뒤 9회말 정근우의 1타점 땅볼과 이종욱의 끝내기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극적인 재역승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은 다음날 2차전마저 진땀을 흘려야했다. 약체로 평가했던 중국에 1점도 뽑지 못한 데다 6회말 폭우가 내려 3일 뒤 서스펜디드 경기를 치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한국은 캐나다와 일본을 각각 1-0, 5-3으로 힘겹게 잡아 숨을 돌린 뒤 17일 재개된 중국전을 연장 승부치기 끝에 1-0으로 승리하면서 준결승행을 위한 7부 능선을 넘겼다. 한국은 이후 대만과 쿠바, 네덜란드를 모두 누르고 당당히 4강에 올랐다.

22일 준결승에서 ‘운명의 맞수’ 일본을 만났다. 먼저 2점을 뺏긴 뒤 4회와 7회 1점씩을 뽑아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운명의 8회. 그동안 침묵하던 이승엽은 8회 1사 1루에서 상대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결승 2점홈런을 뽑아내며 마침내 ‘국민타자’의 위용을 드러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극적인 투런 홈런을 친 이승엽(오른쪽).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다음날 열린 결승전에서 한국은 이승엽의 1회 2점홈런으로 기선을 잡았다. 류현진의 호투 속에 9회까지 스코어는 3-2. 그런데 9회말 쿠바 공격에서 애매한 심판판정과 포수 강민호의 퇴장이 엮여 1사만루라는 벼랑 끝에 몰렸다. 위기의 순간, 한국은 잠수함 정대현을 투입해 상대 중심타자 율레에스키 구리엘을 내야 땅볼로 유도했다. 이어진 유격수 박진만과 2루수 고영민의 그림 같은 더블 플레이. 한국야구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베이징이 남긴 선물, 그리고 그들은 지금…

KBO리그는 ‘베이징 효과’를 체감하며 흥행 대박이라는 선물을 안게 됐다. 2007년 410만 관중을 기록했던 KBO리그는 2008년 525만 명을 기록하더니, 성장을 거듭한 끝에 지난해에는 사상 최초로 관중 800만명을 돌파(833만9577명)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베이징이 남긴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금빛 영광은 한국야구를 활짝 꽃 피우는 자양분이 됐고, 당시 주역들은 지금도 그라운드 곳곳에서 활약하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이다.


우선 당시 두산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감독은 9년이 흐른 지금 명장 반열에 올라 NC 지휘봉을 잡고 특유의 뚝심 깃든 야구를 팬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또한 요미우리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던 김기태 타격코치는 이후 LG 감독 자리에 오른 뒤 지금은 고향팀 KIA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당시 김광수 코치는 현재 한화 수석코치, 조계현 코치는 현재 KIA 수석코치로 자리 잡고 있다.

우승에 일조했던 오승환(35·세인트루이스)과 류현진(30·LA 다저스), 김현수(29·볼티모어)는 KBO리그를 평정한 뒤 무대를 메이저리그로 옮겨 국위선양에 힘을 쏟고 있다. 이대호(32·롯데)는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거친 뒤 올 시즌을 앞두고 역대 최고 대우인 4년 150억원을 받고 KBO리그에 복귀했고, 당시 세대교체의 주역 강민호(32·롯데)와 정근우(35·한화), 이용규(32·한화) 등은 KBO리그의 슈퍼스타로 성장해 베테랑이 됐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이승엽(41·삼성)은 KBO리그로 복귀해 한일 개인통산 600홈런을 돌파한 뒤 올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김동주(41·전 두산)는 그라운드를 떠나 야인이 됐고, 김민재(44·롯데 코치), 박진만(41·삼성 코치), 고영민(33·kt 코치)은 지도자로 변신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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