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시 라켓을 잡은 ‘사랑’의 기적

입력 2017-03-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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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랑은 세계랭킹 3위를 지켰던 세계적인 선수였지만 목 디스크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코트와 네트, 그리고 분신과도 같은 라켓까지 기적적인 회복으로 다시 함께 만났다. 4년여를 괴롭힌 고통을 떠나보낸 후 활짝 미소 짓는 표정부터 달라졌다. 밀양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진통제도 소용없었던 목 디스크
평생 장애 위험 속 참가한 올림픽 그리고 은퇴
기적적으로 코트위로 돌아온 김사랑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오른쪽 손이 덜덜 떨렸다. 4년 전부터 한 알 두알 복용량이 늘어난 진통제는 더 이상 통증을 가려주지 못했다. 의사는 ‘이제 선수생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선수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김사랑(밀양시청·28)은 2016년 여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올림픽. 운동선수에게는 평생 동안 수백만 번 마음속으로 그리는 꿈의 무대다. 특히 김사랑에게는 복식 파트너 김기정(27)이 있었다. 4년 동안 코트 위에 모든 것을 함께 건 김기정에게 ‘너무 아파서 도저히 못 뛰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인생을 건 올림픽 도전은 4강에서 끝났다. 세계랭킹 남자복식 3위 김사랑은 지난해 8월 리우올림픽 직후 ‘목 디스크가 악화돼 더 이상 선수생활이 힘들다’며 소리 없이 코트를 떠났다. 이후 ‘수술 밖에 방법이 없지만 선수생명과 맞바꾸어야 한다’, ‘독일, 캐나다에서도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등의 소문이 들렸다. 그러나 올해 초 김사랑이 말레이시아 퍼플 리그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고 인도네시아 자룸 슈퍼리가에서 이용대와 복식조로 출전했다는 믿기지 않은 소식이 들렸다.

김사랑은 이후 밀양시청에 입단해 최근 2017 봄철종별배드민턴리그전에서 팀의 4강을 함께했다. 지난 7개월간 어떤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 경남 밀양으로 달려갔다.


-올림픽이 끝난 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소속팀에서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기를 뛸 수 없으니 당연히 대표팀에 있을 수 없었다. 전 소속팀(삼성전기)에도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배드민턴 선수가 뛸 수가 없으니….”
김사랑은 수 천 만원의 의료비를 직접 부담하며 백방으로 목 디스크 치료를 받기 위해 애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술에 의지했다”는 짧은 말은 세계랭킹 3위까지 올랐던 정상급 선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기적적으로 복귀했다. 어떻게 치료했나?

“대표팀 트레이너가 중국에 유명한 중의사가 있는데 침으로 디스크를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 연락했다. 중국 심양에 병원이 있는 리준 선생님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희망을 걸었지만 치료비가 너무나 고가였다.”

김사랑은 쓴 웃음으로 그 순간을 떠올렸다. 다행히 치료를 마친 후 주위에서 많은 도움이 이어졌다. 재활이 끝난 후 이용대의 소개로 동남아시아리그에서 뛸 수 있었고, 조명 쇼핑몰 ‘반짝조명’은 공식적인 후원을 하기도 했다. 코트에서 펄펄 나는 모습에 국내 실업팀 복귀도 빨리 이뤄졌다.

밀양시청 김사랑. 밀양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목 디스크는 일반인도 굉장히 힘든 질환이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고통이 더 심했을 텐데, 반년도 지나지 않아 코트위로 당당히 돌아왔다. 치료와 재활과정이 궁금하다.

“올림픽을 앞두고 제대로 훈련도 못했다. 진통제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었다. 김기정에게 미안할 뿐이다. 지금도 미안하다. 올림픽 출전은 모든 것을 다 바치자는 마음이었다. 메달을 땄으면 좋았을 텐데…. 중국에서 치료를 결정하고 한 달 동안 매일 목에 침을 맞았다.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귀로 전달되기 전에 큰 고통부터 몰려왔다. 치료가 끝난 후 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고생 많았다. 잘 참아주었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목이 퉁퉁 부은 상태로 한국에 와 한 달 동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디스크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아닌 진짜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냈다. 무려 4년을 괴롭힌 통증이 사라졌다. 다시 코트로 돌아왔을 때 느낌은?

“4년 동안 항상 곁에 있던 고통이 사라지자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고통은 성격도 바꿔 버린다.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처음에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치료비가 워낙 고액이라서 빨리 갚아야 했는데(웃으며), 다행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됐다. 배드민턴 열기가 뜨거운 곳이다.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며 다 포기하고 ‘이제 끝났다’는 마음으로 멍 하니 누워있던 몇 달 전이 생각났다. 코트는 참 소중한 곳이다.”


-이용대라는 워낙 빼어난 스타가 있어서 조금 가려진 느낌이다. 꾸준히 세계랭킹 상위권을 지키고 있고, 리우올림픽 때도 메달권 다크호스였다. 코트에 돌아왔으니 다시 태극마크가 그립겠다.

“지금은 다시 라켓을 잡고 코트에서 경기를 뛰며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밀양시청에 입단한 후 가족적이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재미있게 훈련하고 있다. 다시는 못 누릴 순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위치에서 또 최선을 다하다보면 태극마크와 올림픽에 대한 꿈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기 때문에 조급해하거나 욕심이 나지 않는 것 같다.”

밀양시청 김사랑(앞). 밀양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김사랑은 배드민턴 국제무대에서 최고의 스피드를 가진 선수로 꼽혔다. 항상 밝은 미소, 활력 넘치는 플레이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얼마나 큰 고통을 참으며 세계랭킹 3위권을 지켰는지 우리는 몰랐다.

김사랑과 헤어진 후 유명 프로선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부상에도 많은 언론이 집중적인 관심을 쏟고 팬들은 함께 슬퍼한다. 한국 배드민턴대표 선수들은 중국, 인도네시아에 나가면 톱스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메달에 도전하는 올림픽대표도 부상을 당하면 쓸쓸히 사라진다. 치료비 걱정에 밤을 지새운다. 김사랑의 기적이 더 뭉클한 이유다.

밀양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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