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도입 20년, 변화의 기로에 선 ‘외인제도’

입력 2017-06-09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상 첫 프로야구 외인 드래프트 당시 각 구단에 지명된 선수들. 사진제공|한국야구위원회

1998년은 KBO리그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변혁기였다. 외국인선수 도입이라는 혁신적인 제도가 바로 그해 실시됐기 때문이다. 큰 키와 우람한 체구를 앞세운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미친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외인 농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팀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이젠 전체판도를 쥔 주축전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이들을 둘러싼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린다. KBO리그 질적 수준을 향상시켰다는 찬사도 있지만, 주전 2~3자리를 차지하면서 유망주들의 성장을 막았다는 비판 역시 공존한다. 여기에 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제기된다. 외인제도가 KBO리그에 남긴 유·무형의 효과와 앞으로 발전방향에 대해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범현 전 감독이 답했다.


Q : KBO리그에 외국인선수가 들어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우선 이들이 처음 한국땅을 밟았을 당시 현장 반응이 궁금합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했는데요.

A : 우선 선수들은 동요가 조금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본인의 설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반대하는 기류가 있었죠. 국내선수들에겐 ‘생존’의 문제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구단들과 KBO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KBO리그의 질적 향상은 물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외인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엔 이미 프로축구와 프로농구에서 외인들이 들어온 뒤였습니다. 프로야구도 뒤처져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Q : 그간 많은 외인들이 KBO리그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도 하고,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는 외인들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A :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역시 KIA 감독 시절 데리고 있던 아킬리노 로페즈입니다. 2009년 통합우승 당시 일등공신이었죠. 로페즈는 무엇보다 실력면에서 귀감이 됐습니다.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고, 한 번 나가면 긴 이닝을 소화해줬습니다. 여기에 승부근성까지 갖췄어요. 확실히 외국인선수라하면 부드러운 맛보단 투지 넘치고 근성 있는 기질이 중요해보입니다. 이런 선수들이 기억에도 많이 남고요. 또 한 명은 SK에서 마무리로 활약했던 호세 카브레라입니다. 제게 외인 운용법을 깨닫게 해줬던 선수였어요. 외국인투수는 경기에 많이 나가는 부분이 제일 중요한데 마무리를 외인으로 기용하다보니 일주일 넘게 출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거금을 들여 데려왔음에도 게임 투입이 어려웠던 거죠. 결국 그 이후론 외국인투수를 마무리로 영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 KIA 로페즈.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Q : 외국인선수는 타국에서 생활하는 만큼 일상적인 관리가 중요해보입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그라운드 안팎의 문제로 속을 썩였던 외인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A : 하루는 아침부터 프런트에서 보고가 올라오더군요. 외인 한 명이 새벽까지 술을 마신 뒤 속옷 바람으로 아파트 복도에서 발견됐다고요. 감독 입장에서 한숨이 절로 나오죠. 이러한 경우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들이 경험했을 법합니다. 물론 외국인선수들이 한국 무대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인도 없고, 정보가 미천한 타국에서 지내야하니까요. 야구는 물론 한국문화 자체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감독과 선수단은 물론 프런트에서도 관심을 더 기울이려고 합니다. 도와주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고 할까요. 다만 사생활 관리에 계속 문제가 생기는 선수는 결국 퇴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Q : 그렇다면 외국인선수 제도가 KBO리그에 남긴 유·무형의 효과엔 무엇이 있을까요.

A :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우선 국내선수 내부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처음 제도가 도입됐을 당시 타이론 우즈, 펠릭스 호세, 댄 로마이어 등 엄청난 파워를 지닌 타자들이 득세했습니다. 당시 국내 야구계가 놀랄 정도였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비롯한 몸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술과 담배를 일절 자제했던 몇몇 외인타자들은 국내선수들을 야단치기도 했었죠. 몸 관리 제대로 하려면 둘 모두 끊으라고요. 이와 더불어 수준 높은 외인들이 들어오면서 KBO리그 전체에 선수 수급이 원활해졌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덕분에 팬들께서 야구를 보는 즐거움이 늘어나게 됐죠. 또한 국내선수들이 외인들과 한 시즌, 두 시즌을 치러나가면서 국제경쟁력이 강화된 부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 두산 우즈-전 롯데 호세(오른쪽). 사진제공|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Q : 그러나 제도 도입에 따른 비판적 시각 역시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A :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몸값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현재 대략 200만달러 턱밑까지 뛴 외인 몸값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재 팀당 3명의 외국인선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많게는 400~500만달러까지 지출하는 형편입니다. 경제상황 등을 고려할 때 너무나 적절치 못하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트라이아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정액수를 상한선으로 두고 더블A~트리플A 선수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면 질적 수준도 유지하고 몸값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특정기준을 잡아도 한국에 오고 싶어할 선수는 많습니다. 물론 이 같은 논의는 구단과 KBO, 현장 야구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20년이 흐른 만큼 조금 더 깊이 있는 성찰과 방향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