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2017년 LG에서 20년 전 삼성이 보인다?

입력 2017-11-2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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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진혁 경영지원실장, 양상문 신임 LG 단장, 신문범 LG스포츠 대표이사, 류중일 신임 LG 감독, 류제국, 박용택, 차우찬. 스포츠동아DB

내야수 정성훈 손주인, 외야수 이병규 등을 하루 만에 정리한 LG가 추진하는 선수단 개편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세대교체라는 ‘명분’에는 공감하더라도 적어도 현 시점에선 구체적인 ‘진행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기에 LG 선수단을 비롯한 야구계 전체가 한동안은 술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LG가 설정한 최종 목표는 단 하나일 듯하다. 2002년을 끝으로 중단된 한국시리즈(KS) 진출과 우승일 터. 너무도 명확한 이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LG가 그동안 끝내 주저했던 마지막 카드인 선수단 대수술의 메스를 꺼내든 모양새다.

전 LG 정성훈-이병규(오른쪽). 스포츠동아DB



● ‘적과의 동침’도 불사한 삼성

공교롭게 2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져 큰 파장을 낳았다. KS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은 간판선수들부터 사령탑까지 모조리 바꾸며 야구계를 뒤흔들었다. 1996년 10월 이종두와 11월 강기웅을 시작으로 1997년에는 신인왕 출신 이동수, 1998년에는 대들보나 다름없던 양준혁까지 잇달아 트레이드했다. 영원한 홈런타자 이만수는 199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그에 앞서 홈런왕 출신 내야수 김성래는 1996시즌 후 구단과 갈등을 빚은 끝에 자유계약선수가 돼 쌍방울로 옮겼다. 레전드 유격수 류중일도 1998년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은 떠나간 주축선수들의 빈 자리를 해태, 쌍방울 선수들로 채웠다. 투수 조계현 이강철 임창용 김현욱, 내야수 김기태, 외야수 이순철 등을 새 식구로 맞았다. 2001년 1월에는 롯데에서 마해영까지 데려왔다. 2000년 12월에는 숙적 해태의 사령탑이던 김응용 감독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자신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감독과 선수들이 삼성을 접수하자 연고지 대구·경북의 민심은 상상 이상으로 들끓었다.

삼성 선수 시절 김기태-임창용-김현욱(왼쪽부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LG는 어떻게?

LG는 2017시즌을 6위로 마치자마자 단장과 감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양상문 감독을 신임 단장, ‘삼성왕조’를 일군 류중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혔다. 재계의 라이벌 구도상 LG가 삼성에서 선수도 아닌 감독을 영입한 것은 엄청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삼성이 집요한 구애 끝에 김응용 감독을 ‘모셔온’ 사건에 비유할 만하다.

현장과 프런트를 일신한지 1개월여 만인 22일, LG는 KBO리그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날 진행된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LG가 작성한 40인 보호선수 명단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일지도 모른다. 2차 드래프트의 비공개 규정 때문에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진 않고 있지만, 팬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일부 선수들도 이 명단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진다.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한다. 또 비웠으면 채워야 한다. LG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LG가 어느 선까지 ‘비우기’를 시도할지, 향후 ‘채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또 성공적인 리빌딩 또는 리모델링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가늠할 수 없다.

20년 전 전방위적인 선수단 물갈이를 추진한 삼성은 2002년 첫 KS 우승에 성공했다. 하필이면 삼성의 첫 KS 우승에 빛나는 조연 역할을 한 뒤로 LG는 침체기로 빠져들었다. 그 어둠의 터널을 극복하기까지 삼성은 숱한 눈물을 흘리고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LG가 그 같은 숙명에 맞서는 길을 택한 듯하다. 과연 인내할 수 있을까.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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