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동아 창간 9주년] 박태환, 역경의 9년을 이긴 ‘9년의 역영’

입력 2017-03-2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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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스포츠동아가 창간한 2008년, 한국수영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역경의 9년을 극복한 그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마린보이’ 박태환의 무한도전


2008년 한국수영 최초 올림픽 금메달
금지약물 징계 악재에도 선수생활 연장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수영은 일대 역사를 만들었다. 박태환(28)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3분41초8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친 김에 그는 자유형 200m에서도 1분44초85로 은메달을 추가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러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박태환에게는 빛과 그림자가 겹쳐졌다. 베이징올림픽 이듬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 예선탈락으로 부진했던 그는 2010년 또 한 번 화려하게 비상했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자유형 3관왕(100·200·400m)에 등극했다. 4년 전 도하아시안게임에 이은 2회 연속 3관왕이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도 2개의 값진 은메달(200·400m)을 수확했다.

그러나 곧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따냈지만 ‘금지약물’에 발목을 잡혔다. 인천아시안게임 직전 받은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인 네비도를 투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얻은 모든 메달을 잃었을 뿐 아니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2014년 9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선수자격 박탈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선수자격을 회복한 뒤에도 고통은 계속됐다. 제대로 훈련을 못한 채 나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압도적 성적을 냈음에도 ‘금지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은 선수는 징계 만료일로부터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에 따라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길이 막혔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외로운 싸움이 또 다시 이어졌다. 박태환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소송을 통해 스스로 활로를 뚫었다. 그러나 어렵게 출전한 리우올림픽에서 그는 주 종목인 400m와 200m는 물론 100m에서도 예선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온갖 비난이 뒤따랐지만, 박태환은 리우올림픽 직후 주변의 ‘은퇴’ 예상을 뒤엎고 재기를 선언했다. 2020도쿄올림픽에 대해선 “아직은 먼 이야기”라고 선을 긋고는 다시금 도전을 택했다. 당장 올 7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내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을 겨냥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그 다음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박태환을 둘러싼 주변여건은 녹록치 않다.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받은 대한수영연맹의 행정표류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비롯한 올해 국내대회 일정이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과연 박태환의 2017년은 어떤 모습일까.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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