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 친구] 콘텐츠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필살기 리버스 레이업슛! 아이고, 다 까먹었네”

입력 2017-08-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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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사랑받고 있는 대도서관이 ‘왕년의 필살기’로 자부하는 리버스 레이업슛을 선보이고 있다.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농구를 사랑한 스타 콘텐츠 크리에이터 대 도 서 관

학창시절 나름 필살기…일대일은 다 뚫었죠
덩크 연습 하다 착지 잘못해 손목 꺾인 적도
성인 되고 나선 운동보다 스포츠 만화 탐독

원래 콘텐츠 보고 분석·활용하는 걸 좋아해
대기업 관두고 게임 방송…유쾌함으로 승부
앞으로도 ‘1인 미디어의 진수’ 보여드릴 것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대도서관(나동현·39)’이 모처럼 땀에 흠뻑 젖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올 법한 모니터 안에서 나와 뜨거운 태양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동네 농구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몇 번 공을 튕겨보더니 자신 있게 뛰어올라 리버스 레이업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멋지게 차려입은 트레이닝복이 무색하게도 림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그는 “학창시절 나름의 필살기였는데, 이젠 내 몸이 다 까먹었다”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성남 분당에서 BJ 대도서관 인터뷰.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어린 대도서관’의 모든 것, 농구

중·고등학생이었던 대도서관에게는 농구가 전부였다. 당시 NBA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이름을 날렸고, 국내에서는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가 유행하며 한창 농구 열풍이 일던 때였다. 혈기왕성했던 청소년 대도서관은 고작 10분이 허용된 쉬는 시간이면 허겁지겁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친구들과 짧은 대결을 펼칠 정도로 농구에 빠져있었다. 한 번은 덩크 연습을 하다가 착지를 잘못해 오른쪽 손목이 뒤로 꺾인 적도 있었다. “아직도 손목이 뻐근하다”는 그는 “농구 때문에 성적이 잘 안나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대도서관의 우상은 고려대학교에서 뛰던 현주엽(LG 감독)이었다.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리던 현주엽의 카리스마에 반했다. 그는 “당시 연세대학교는 올스타팀 같은 느낌이었고, 고려대학교는 현주엽 선수를 중심으로 한 강팀의 이미지였다”고 회상했다.

대도서관은 그의 우상이 그러했듯 리바운드에 특출 났다. 어려서부터 키가 컸고, 팔이 길었다. 골밑 수비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 인터뷰 당일 선보인 리버스 레이업슛도 한때는 성공률 100%를 자랑하던 대도서관의 특기였다. 그는 “일대일 상황에서는 무조건 상대 수비를 뚫을 수 있는 스킬이었다”고 자부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랬다.

성인이 되어서는 직접 운동을 할 기회가 많이 줄었지만, 대신 스포츠 만화를 탐독했다. 농구부터 야구, 자전거, 미식축구 등을 모두 섭렵했다. 여느 스포츠 마니아들처럼 경기를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만화책 뿐 아니라 스포츠 애니메이션과 영화도 즐겨 본다. 대도서관은 “원래 컨텐츠를 보고, 분석하고, 이를 활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선호’는 ‘업’이 되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이 평소 방송을 진행하는 자택 작업실에서 한 손에 농구공을 들고 엄지척을 해보였다.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재미있는 사람? 유쾌한 사람!

대도서관은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일에 흥미가 있었다. 대기업에 재직하던 시절에도 굵은 레게머리를 하고 다니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연말 파티에서는 여장을 하고 ‘큐티 하니’를 춰 뜨거운 환호를 받기도 했다. 사보에도 2∼3차례 실린 ‘유명인’이었다. 그 스스로도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았다”고 했다.

1인 미디어를 시작할 때의 마음도 같았다. 그의 기준은 ‘즐거움’이었다. 대도서관은 세이클럽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던 기억을 되살려 2009년 다음 tv팟에서 게임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 방송계에는 욕설이 난무하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주를 이뤘다. 때문에 ‘B급 콘텐츠’를 꺼리는 이들도 많았다. 이에 대도서관은 트렌드를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 게임을 다루지만 대중적이고, 여자들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게임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예능’으로 풀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대도서관은 “역벤치마킹을 했다. 다행히 잘 먹혀들었다. 게임방송인데도 여자분들이 훨씬 많이 왔다. 목소리도 좋은 편이었고, 얼굴이 나가지는 않았으니까”라고 미소 지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인기는 많았지만, 수입이 없었다. “당시 퇴직금도 바닥이 났고, 조금 남은 쌀로 미음을 끓여 마시면서 방송을 했다. 시청자들은 몰랐다. 밝게 방송을 했으니까.”

대도서관은 여전히 ‘유쾌함’을 추구한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150만을 훌쩍 넘고, 시청자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내게 고맙다고들 한다. ‘암울하고 어두웠던 시절에 내 방송을 보면서 힘이 됐다’면서. 내가 유쾌하고, 편안하게 인생의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들도 여기서 많이 위로를 받는 것 같더라”고 뿌듯해했다.

성남 분당에서 BJ 대도서관 인터뷰. 성남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1인 미디어의 새로운 길

8년차 크리에이터인 대도서관은 1인 미디어 업계에서 ‘선구자’로 통한다. 9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월 30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정도로 ‘잘 나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임 방송, 먹방 등에 한정된 1인 미디어의 경계를 확장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어서다.

실제로 대도서관은 게임 방송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시청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수다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그의 반려견이 출연하는 애견 콘텐츠도 제작한다. 때로는 방송에서 화장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라이프스타일, 키즈 채널을 새롭게 키워나갈 구상도 갖고 있다. 대도서관은 “‘1인 미디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업계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개인적인 바람을 전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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