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감독’ 김인식의 진심, “나는 태극마크를 믿는다”

입력 2017-01-0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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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독’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념 모자를 쓰고 나왔다. 인터뷰는 KBO에서 이뤄졌는데,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의 등 뒤로 한국야구의 영광이 담겨 있는 사진들이 늘어서 있었다. 2006년 제1회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제2회 WBC, 2015년 프리미어12의 감격 중 올림픽 금메달을 제외한 무려 3차례의 영광은 김 감독이 국민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제 김 감독은 “마지막 봉사”를 선언하고, 2017년 3월 제4회 WBC에 출정한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인터뷰는 섭외가 절반이다. ‘국민감독’으로 추앙받는 김인식(70) 월드베이스볼대표팀(WBC) 감독은 위상으로 놓고 볼 때, 섭외가 수월한 레벨이 아니다. 기자의 기억으로 스포츠동아에서 김 감독과 송년·신년 인터뷰로만 3차례 만났다. 2006년 제1회 WBC 4강,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그리고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점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야구 역사의 길목마다 김 감독은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2017년, 다시 김인식이다. 3월 열리는 제4회 WBC를 앞두고, 인터뷰 요청을 넣었다. 이번에도 수락이었는데, 전에 비해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박에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번만큼 적극적인 적이 없었다. 꼭 하고 싶은 말들이 있는 것 같았다. 지도자 인생의 종착지를 앞둔 노(老) 감독의 가슴을 짓누르는 응어리는 무엇이었을까.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국가대표팀은 책임지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곳


-요즘 같으면 ‘내가 이러려고 대표팀 감독 맡았나’ 하는 심정도 들겠습니다.(웃음)

“(한참 웃더니) 내가 감독 (2016년 9월) 취임 인터뷰에서 ‘내년 2월까지 걱정만 있을 거다’라고 했었지. 그 말이 틀렸으면 했는데 그대로 되고 있어. 대표팀 감독을 여러 번 해봤는데 순탄한 적이 없었어. 어느 감독이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위안삼아) 생각해.”


-감독님은 ‘덧셈의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팀 구성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선수만 있어서 걱정이 많겠네요.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까. 골치가 아프지. 2월6일 최종 엔트리 발표인데 그때까지라도 (대표 후보 선수들이) 안 좋은 일들을 말아야지.”


-어느 포지션이 가장 걱정이세요?

“아무래도 투수가 가장 문제야. 몇 년간 오른손투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나마 왼손인데 김광현(SK)이 수술이야. 대체 멤버로 누가 와야 할지…. 내야도 걱정이야.(웃음) (메이저리거 차출은) 사무국, 선수노조, 구단, 셋이서 타협하는 단계인데 결정이 나지 않은 부분이야. 재활 중이거나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선수는 구단이 관리하겠다고 하는 모양인데, 안 내보겠다는 뜻이겠지.(웃음)”


-추신수(텍사스)를 꼭 뽑고 싶으신가 봐요?

“추신수가 마지막으로 국가를 위해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 반면 구단은 염려가 강해. 해결이 안돼. 계속 열어놓고 협상 중이야.”


-오승환(세인트루이스) 필요하시죠?

“필요하지. 그런데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말 못해. 본인은 ‘태극마크 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바깥에서는 ‘또 검증된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짜느냐, 성적 안 좋을 각오하고, 젊은 선수로 해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대표팀이 어린 선수들 키워나가는 곳인가? 대표팀은 마지막 전쟁을 하는 곳 아니야? 당장 성적 나쁠 것은 전혀 고려치 않나? 책임 없는 얘기야.”


-선수층의 문제가 구조적인 것 같습니다.

“야구가 인기는 있지만 ‘혼도 한번 나야된다’, 이런 생각도 들어. 이거(국제대회는) 다 같이 힘을 합할 일이야.”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패배가 두렵냐고? 야구장에 들어가면 승패 자체를 초월할 뿐


-KBO가 ‘타고투저’인줄 알았는데, 포스트시즌 보니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포스트시즌은 잘 던지는 투수만 나오니까. 8월 초 대표선수 선발 과정에서 ‘홈런 20개 이상 친 선수 중에서 외국인투수들 상대로 친 숫자만 따져서 가져와봐라’ 했더니 기록이 떨어지는 선수도 있더라 이거야. 에이스급 상대로 타율이 어땠는지, 찬스에서 어떻게 쳤는지 냉정히 분석해야 돼.”


-감독님이 생각하는 국가대표팀은 전통적 국적 개념에서 자유로운가요?

“포지션이 중요하겠지. 최현(탬파베이·미국명 행크 콩거)이 제3자를 통해서 ‘뽑아줄 수 있느냐’는 얘기도 왔었는데. ‘포수로서 우리 투수들하고 해본 것이 있었나? 단기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


-월등히 나으면 한국어가 안 되는, 다른 인종 선수라도 욕심나겠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포수는 아닌 것 같아.(웃음)”


-오승환, 강정호(피츠버그) 등에 관해선 대표팀이 속죄의 기회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국민정서가) 어디까지 용서해줄 수 있는지를 가려야지. 단 우리 국민, 우리 선수들은 국가관이 남달라. 나라가 있고 그 다음에 야구지. 그것이 우리가 다른 점이야.”


-결속력이 강하죠?

“일본 기자들이 늘 물어보는 것이 ‘당신은 일본과 경기하기 전에 선수한테 어떤 얘기 해주느냐’고 궁금해 해. 일본하고 할 땐 얘기 안 해. 얘기 안 해도 각자가 다 (안에) 가지고 있어. 나는 그걸 믿어.”


-만약 이번에 성적이 안 나면 그동안 쌓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지면 지는 거지 어쩌라고. 우리나라는 각 분야가 그런 게 모자라. 그동안 선배 세대가 쌓은 것에 대한 예우가 모자라. 오랫동안 일한 사람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부족하다고 그거 무서워서 못하면 어떡해? 누가 해? (목소리 높이며) 누가 안 하기 때문에 하는 거야. 내가 이거 맡아서, 져서, 그동안 쌓은 거 하루아침에 잃는다? 잃으면 어때? 두렵지 않아.”


-대표팀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동네입니다.

“다른 감독 추천하라고 해.(웃음) 뒤에서 왜 얘기해? 앞에서 떳떳하게 비판해줬으면 좋겠어. 승부는 할 수 없잖아? 지든 이기든 둘 중 하나가 되는 거고. 팀이 약하면 질 확률이 높고, 팀이 세면 나아질 확률이 있고.”


-특히 한국사회는 리더의 카리스마 의존도가 강해요. 잘하면 리더 덕, 못하면 리더 탓.

“부담 되는 거는 틀림없어. 그러나 결국 맡게 된 이상 그러면 좋든 안 좋든 그냥 가자 그런 마음이야. 전력누수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인데 마지막까지 가서 그것밖에 없다면 할 수 없는 거냐. 매일 걱정이지만 야구장에 딱 들어가면 잊어. 걱정만 해서 어떡할 거야? 지든 이기든 해야지. 그런 마음이야. 지금까지 그런대로 해왔으니 이번에도 해봐야지.”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진보의 출발은 경험, 발전의 동력은 실패

-오타니(일본 니혼햄) 부러우시겠어요?


“물론이지. 왜 우리는 저런 투수가 안 나오나, 어떡하면 나올까. 많이 물어보고 듣는데 이건 위(프로)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봐. 진짜 잘 가르쳐야 돼.”


-칠 수 있을까요?

“(웃음). 일본 TV에서 왔다갔는데 시속 164㎞ 던지는 영상을 가져왔더라고. 홈런 치는 영상도. 오타니는 특별한 선수야. 오타니만 (체구가) 커요. 일본에는 오타니 이외에는 큰 투수가 많지 않은데도 힘을 다 이용해서 던질 줄 알아. 그런 게 우리하고 달라.”


-아무래도 선발진이 얇을 것 같은데 불펜에서라도 정현욱(현 삼성 불펜코치) 같은 비밀병기가 눈에 안 띕니까?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모르겠는데 2월12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하니까 봐야지.”


-구속 문제가 걸리는 유희관(두산)은 일단 엔트리에 넣었습니다.

“투수가 없어. 유희관은 꾸준하게 성적을 낸 투수이고…. 2월6일 최종엔트리 때 결정해야겠지.”


-1루수 자원은 풍족한 편인데 박병호(미네소타)는 승선이 어렵겠네요?

“그런 것도 있고, 구단에서 안 될 거야. (재활 중인) 박병호는 힘들다고 봐야지.”


-객관적 전력이 약해도 국민들의 기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목표가 1라운드 예선통과야. 그것도 만만찮아. 1라운드를 통과해야 (도쿄에서) 일본도 만나.(웃음)”


-2017년 새해를 맞아 야구계 어른이 야구를 위해 전하는 당부를 듣고 싶습니다.

“야구가 발전하려면 사장, 단장이 야구를 알아야 돼. 몇 년 하다 바뀌고 그러니 어떻게 보면 팬들보다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그 아래는 ‘예스맨’만 있고. 기업에서 야구에 관심이 없으니까 이러는 거야. 적자니까. 감독도 300패 이상 해봐야 무언가 보이는 것처럼 프런트도 이거 저거 해보고 노하우가 생겨야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는 거지. 실패 해봐야 한다. 져봐야 무언가가 나온다. 약해졌을 때 야구하는 방법도 알아가는 거고, 그러면 사장, 단장이 오래 있어야 해. 그래야 헛돈 안 쓰고 야구가 발전하는 거야. 신문사도 야구전문기자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자도 모를수록 쉽게 써. 야구도 마찬가지야. 모르면 이리저리 쏠려. 처음부터 이기기만 하면 아무 것도 배우는 게 없어….”

WBC 대표팀 김인식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


▲생년월일=1947년 5월 1일

▲출신교=돈암초∼배문중∼배문고

▲프로경력=크라운맥주(1965)∼해병대(1966∼1968)∼한일은행(1969∼1972)

▲지도자경력=배문고 감독(1973∼1977)∼상문고 감독(1978∼1980)∼동국대 감독(1982∼1985)∼해태 수석코치(1986∼1989)∼쌍방울 감독(1990∼1992)∼두산 감독(1995∼2003)∼한화 감독(2004∼2009)

▲감독 통산=980승 1032패 45무

▲대표팀 감독 경력=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2006년 WBC 4강∼2009년 WBC 준우승∼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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