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인터뷰] 차인표 “45도 폭염 촬영, 그래도 가장 행복한 기억”

입력 2017-10-14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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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작한 영화 ‘헤븐퀘스트’를 들고 아시아필름마켓을 찾은 배우 차인표(왼쪽)와 리키 김. 17일까지 마켓에서 해외 바이어에게 영화를 직접 알린다. 해운대(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배우 차인표가 카메라가 집중된 레드카펫이 아닌 영화를 사고파는 필름마켓으로 향했다. 꿈을 상상으로만 끝내지 않고, 도전해 이루는 그의 적극적인 면모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인표가 영화 ‘헤븐퀘스트’를 들고 14일 시작한 아시아필름마켓에 나섰다. 17일까지 마켓 참여하는 그는 해외 바이어에게 작품을 직접 소개하고 구매 상담도 맡는다. 올해 마켓을 찾는 해외 바이어는 31개국 435명이다.

마켓 시작 첫 날 오전 벡스코 제2전시장 ‘헤븐퀘스트’ 부스에서 만난 차인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몇 차례 왔지만 레드카펫의 반대쪽은 처음 경험한다”며 설렘과 기대의 빛을 보였다.

13일 오후 부산에 도착해 손수 마켓부스를 설치한 그는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우리(배우)가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차인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남다른 인연을 맺어왔다. 2006년 영화제 폐막식 진행을 아내인 배우 신애라와 함께 하기도 했다. 줄곧 배우로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영화 제작자 입장이다.

영화 수입과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배급사 등을 통하지 않고 그가 직접 마켓에 부스를 차린 데는 “몸으로 부딪히고 싶다”는 의지가 작용했다. 영화에 함께 출연하고, 프로듀서까지 맡은 배우 리키김도 마켓에 함께하고 있다.

차인표는 올해 3월 미국에서 ‘헤븐퀘스트’ 제작진과 만나 출연과 공동 제작을 결정했다. 할리우드 활동을 크게 모색해온 배우가 아닌데다, 영화 제작까지 맡는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그의 도전을 두고 여러 궁금증이 일었다.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차인표는 “사실 한국에서 혼자 오랫동안 고민해온 일”이라고 했다.

“사람을 위로하는 영화, 선한 메시지를 주는 가족영화나 종교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만에 하나 내가 돈을 대 만든다고 해도 과연 극장에서 틀 수 있을까, 관객에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됐다. 미국에는 그런 영화들이 제작돼 개봉하고 제작비 회수도 가능한 시장이 있다.”

올해 3월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현지에서 배우와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 리키김이 출연하기로 한 ‘헤븐퀘스트’ 제작진과 만나 같은 뜻을 나눴다. 영화사 TKC픽쳐스를 설립하고 미국 킹스트리트픽쳐스와 공동제작까지 나선 과정이다.

‘헤븐퀘스트’는 기독교 고전인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을 각색한 영화다. 매트 빌런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미국과 호주, 멕시코, 덴마크 배우들이 출연한다. 현재 미국에서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필름마켓에서 공개하는 2분30초 분량의 ‘헤븐퀘스트’ 예고편은 상당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굳이 종교적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매력적인 액션 판타지 영화로 손색없을 정도다.

영화는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트 등 미국 영화전문지에 소개되면서 현지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후반작업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를 자처한 할리우드 전문가들도 여럿. 대부분 ‘레버넌트’ 등 할리우드 대작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다.

영화가 매체를 통해 소개된 직후 차인표는 몇몇 미국 배급사로부터 연락도 받았다. ‘배급을 맡고 싶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였다.

“미국 배급사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건 세계 판권이다. 그렇게 되면 개봉하고 며칠 극장에서 상영한 뒤에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 되는 방식인데, 우리가 생각한 뜻과는 맞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 가족영화나 종교영화가 개봉할 수 있는, 그래서 관객이 꾸준히 찾는 시장이 형성되길 바란다. ‘헤븐퀘스트’가 교두보가 되길 바라고 있다.”

배급사의 도움을 일단 미뤄두고, 차인표와 리키김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마켓에 부스를 차린 이유다.

“어찌 보면 무모할 수 있지만 직접 부딪히면서 작품을 알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보고 싶었다. 일단 와서 앉아있어 보려고 왔다. 하하!”

차인표와 함께 하는 리키김은 “필름마켓 배지를 받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처음으로 연기자가 아닌 입장으로, 큰 용기를 내서 왔다”는 그는 “부산에서 시작해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 앞으로도 우리가 바라는 영화를 다양하게 내놓고 싶다”고 했다.


● “45도 폭염 속 촬영, 한국식으로 사람 챙겨”

‘헤븐퀘스트’는 올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다. 당시 기온이 45도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 적은 예산으로 제작하다보니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보조 출연자들은 촬영장 인근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한 청년들이 맡았고,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도 적은 금액만 받고 촬영에 나섰다.

차인표는 “인디 스피릿으로 똘똘 뭉친 현장이었다”면서도 “25년간 연기하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리키와 나는 ‘낮은 자세를 갖자’고 매일 다짐했다. 촬영장 분위기는 한국식으로 했다. 전부 모여 회식하고 계산도 내가 했다. 사람들 챙기는 것도 한국식으로. 하하! 더운 날 하루 종일 들판을 뛴 엑스트라 청년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지갑을 열어 내가 가진 돈을 전부 나눠준 적도 있다.”

“늘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는 차인표는 “선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를 만드는 만큼 작품의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선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아시아필름마켓 이후 차인표는 11월1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인 아메리칸필름마켓에 참여해 다시 한 번 ‘헤븐퀘스트’를 알린다. 몸으로 부딪히겠다는 그의 도전은 부산을 넘어 미국으로 이어진다.

차인표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헤븐퀘스트’ 2편 촬영을 진행할 계획. 동시에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컴패션을 창설한 에버렛 스완슨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도 기획하고 있다. 현재 목사의 유족과 영화화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보다 아내 신애라가 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많은 관객에 선한 메시지의 영화를 보이는 게 목표다. 우리가 미국으로 간 이유이기도 하다. 제작비를 회수해 꾸준히 영화를 만들려면 미국의 가능성이 좀 더 크다. 앞으로 10년간 정말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국내 작품 활동을 멈출 생각은 없다.

“미국에서 지내는 줄 알아서 인지 작품 제안이 거의 없다. 사실 대부분 한국에서 지내는데.(웃음) 1년에 한편씩은 꼭 출연할 생각이다.”

옆에 있던 리키김도 “나 역시 한국에서 연기활동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해운대(부산)|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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