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관객 안 웃을까 ‘식은 땀’나고 연기하다 웃음 터질까 ‘조마조마’해요”

입력 2018-12-19 09:55:00
프린트

(왼쪽부터) 이정주, 호산, 손종기.

●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주역 호산‧이정주‧손종기 인터뷰

이 연극 오디션 공고에는 조건이 있었다. 가장 어렵다는 코미디 연기가 돼야 하며 무너져 내리는 무대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신체 움직임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뭔 말인가 싶겠지만 이 무대에 오르려면 단순히 연기만 잘해선 안 된다. 관객석에 뛰쳐나가는 적극성과 발에 손이 밟혀도 소리를 내지 않는 인내심, 기울어지는 2층 세트에서 의자와 테이블 정도는 손과 머리로 받칠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이 무시무시한 조건에도 1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기상천외한 오디션에서 11명의 배우가 살아남아 공연을 무사히(?) 올리고 있다

2012년 런던에서 단 4명의 관객으로 시작한 ‘더 플레이 댓 고우즈’롱은 2년 만에 웨스트엔드로 진출한 연극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신시컴퍼니가 합심해 그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이 무대 위에는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 배우들이 대부분이지만 극장에 나갈 때는 그들의 존재감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이 중에서 ‘로버트’, ‘데니스’, ‘크리스’ 역을 맡은 배우 호산, 이정주, 그리고 손종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하 배우 호산‧이정주‧손종기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

(왼쪽부터) 이정주, 손종기, 호산.


Q. 결코 평범하지 연극이에요. 대본을 보면서도 ‘이게 뭐지?’라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공연 소개를 보면 오디션도 독특했다고 들었어요.

호산 : 무대를 모르는 상황에서 대본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상상하면서 읽으니까 오히려 그 부분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세트 움직임이 대본 지문에는 완벽히 명시가 돼있지 않아서 더 궁금하기도 했고요. 무대 위에서 연습할 때 ‘아 이렇게 드라마가 쌓이면서 재미있어지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종기 : 일단 대본에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연기하는 것이지, 절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쓰여 있긴 했어요. 지문 하나가 세세해서 무대가 들어오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긴 했어요.

이정주 : 일종의 게임 같은 형식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지원자들이 원형으로 서서 게임을 하는 건데 순발력이나 집중력도 보고 개인의 성향도 볼 수 있는 그런 오디션이라고 해야 하나? 미션이 추가되기도 하고 규칙이 바뀌기도 하고 계속 변화됐어요. 대본 받고 연기하는 오디션과는 또 다르게 재미가 있더라고요. 아주 정신이 없었지만 독특했어요.

손종기 : 전 재미있었어요. 일반적인 오디션보다 워크숍 식으로 하다보니까. 일주일동안 재미있게 논 기분이었어요. 서바이벌 게임 같은. 그럼 우린 우승자인가? (웃음)

배우 호산.


Q. 대사도 재미있는데 슬랩스틱도 있잖아요. 가끔은 정말 아플 것 같은 연기도 있어요.

호산 : 영국에서 4년 반을 장기 공연을 하고 있어서 부상이나 상해에 대한 대비는 굉장히 잘 돼 있어요. 관객이 보기엔 불안하지만 굉장히 안전해요. 손 밟히는 것도 카펫이 푹신푹신해서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요. 그래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고 감당해야 해요. 그냥 힘든 거죠.

손종기 : 그런데 호산 형이 2층에서 매달리는 거 볼 때 가끔 진짜 힘들겠다는 생각은 해요. 연기를 하면서도 ‘저거 진짜 힘든 건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주 : 이입이 돼서 울컥할 때가 있어요. 저흰 아래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연기해요.

호산 : 그런데 간혹 그 물건들을 놓쳐서 발로 잡아서 끌어 올릴 때도 있어요. 연습할 때 션 터너에게 잡고 있는 거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네가 알아서 해야지”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표정이 진짜 임이 드러날 때가 있어요.

이정주 : 저는 의자를 드는 데 좀 무거워요. 안 그래도 퍼킨스 집사 캐릭터가 늘 주눅이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연극 하면서 어깨에 담이 왔어요. 어떤 날은 목이 빳빳이 굳어서 목을 제대로 가누지를 못하겠더라고요. 협력연출도 ‘퍼킨스’ 역할 배우들이 목이 굳는다고 한다며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손종기 : 저는 계속 소리를 질러야 해서 목이 좀 아파요. 보통 작품은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미 연극의 시작이 ‘위기’이기 때문에 워밍업을 하면서 끌어올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어요.

배우 손종기.


Q. 무대에 올리기 전에 관객이 웃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이정주 : 대놓고 웃기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서가 맞을지 잘 몰랐어요. 우리 극은 실수를 감추지 않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손에 쓴 대사를 대놓고 보잖아요. 이런 점들을 관객들이 좋아할지 의문이 들었어요.

호산 : 협력 연출인 션 터너가 사람의 실수를 확장해서 보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실수한 사람은 그 순간이 얼마나 영겁과도 같겠어요. 우리 연극은 그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실수를 과감하게 보자는 것이죠.

Q. 무대 위 배우들은 연극을 하지만 확실한 웃음 포인트가 있잖아요. 그런데 관객들이 웃지 않으면 당황할 것도 같아요.

호산 : 명확한 포인트가 있지만 어떤 날 관객들이 안 웃으시면 무대 위에 귀신이 한 번 쓱 지나간 것 같아요. (웃음)

손종기 : 하지만 그 부분을 뺄 수가 없잖아요. 견뎌야 합니다.

이정주 : 언젠간 웃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하하.

Q. 연기를 하다 진짜 웃겨서 웃음이 터진 적은 없나요?

손종기 : 제일 힘든 게 웃음 참는 거예요. 원래 잘 안 웃는데 호산 형이 나오는 부분 중 한 장면이 미칠 듯이 웃겨요. 그래서 형 눈을 제대로 못 보겠어요. 그 장면은 쓰러진 산드라도 다 웃어요. 배우들은 다 등지고 웃고 있어요.

호산 : 특정 장면은 연습할 때도 너무 웃었어요. 안 웃고 시작할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공연 들어가서는 다행히 한 번도 없었는데 너무 웃기면 퇴장할 때 ‘배시시’ 웃어요.

배우 이정주.


Q. 이 연극은 관객의 참여가 있는 편이에요. 특히 크리스 역은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을 연출자라서 공연에 앞서 관객들에게 악수하며 인사를 하죠.

호산 : 프리쇼에서 관객들 중 한 분을 불러서 촛대를 들게 하잖아요. 어떤 분이 ‘우리 남편 연극 데뷔했다’라며 SNS에 올리신 걸 본적이 있어요. 그런 관객참여가 극과 관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 같아요.

손종기 : 제가 공연의 연출 역이다 보니 관객들에게 악수를 청하는데 할 때마다 어색하고 민망하긴 해요. (웃음) 그런데 예상보다 관객들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어떤 분은 농담을 같이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래서 힘이 많이 나요. 공연 시작하고 커튼 앞에서 제가 공연을 소개할 때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요. 그래서 되도록 많은 분들에게 인사를 청하려고 있어요.

이정주 : 이 극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극장에 일찍 들어오시는 걸 추천해요. 사실 공연장 문이 열리면서 극이 시작된다고 봐야 해요. 거기서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오셔서 같이 웨스턴(2막에 등장해야 하는 개)도 찾아주시고 트레버의 ‘듀란듀란’ CD도 찾아주세요. 하하.

Q. 이 공연은 망해야 성공한 거잖아요.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서 결국 세트가 말 그대로 ‘와장창’ 무너지기까지 하는데.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면 안 되는 무대 사고가 있기도 했나요?

호산 : 장치적인 실수에 대처하는 법과 공연을 중단해야 하는 설명서가 다 있어요. 상황마다 대처하는 법이 다 다르긴 한데 꼭 수습을 해야 한다는 결과는 같아요.

Q. 이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 실수를 하신 적도 있나요?

이정주 : 다른 작품에서 실제로 대사를 까먹은 적이 있어요. 첫 공연에서 선배와 15~20분 동안 연기를 하고 있는데 순간 백지가 된 거예요. 그래서 2~3분 동안 계속 “음~”, “아~”만 했었어요. 정말 죽을 것 같았죠. 이 사건 이후에 대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퇴장하는 문에 대사를 써놓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호산 : 배우들에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백지병’이에요. 그런데 웃긴 건 어려운 대사는 절대 틀리지 않아요. 틀리는 건 “그래?” 같은 대사예요. 그러면 진짜 한없이 초라해져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배우인지 생각이 들죠.

(위에서부터) 호산, 손종기, 이정주.


Q.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해주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손종기 : 편하게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연극’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렵고 심각한 주제를 생각하시고 오시는데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말 순수한 ‘재미’를 느끼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호산 : 저는 연말에 부모님들과 많이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님께서 제 공연을 보러 오시면 늘 ‘수고했다’고 하시는데 이 연극을 보시곤 “정말 재미있었어”라고 하셨거든요. 큰 웃음 ‘빵빵’ 터지는 연말 보내시길 바란다면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보러오세요.

이정주 : 이 연극에는 멋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다들 하나같이 안쓰럽고 불쌍해요. (웃음) 그런데도 연극 하나 제대로 올려보겠다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큰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쟤네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드실 거예요. 활기찬 마음을 가지고 돌아가시길 바라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스페셜

이전 다음

뉴스스탠드

최신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