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썸씽로튼’ 신재홍·황석희 “뮤지컬이 처음이라 무서운 줄 모르고 시작”

입력 2019-06-19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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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재홍 엠트리뮤직 대표, 황석희 번역가.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30년간 가요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과 10년간 영화 번역을 하던 사람이 엉뚱하게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만나게 됐다. 신재홍 엠트리 뮤직 대표와 황석희 번역가의 이야기다. 전혀 인연도, 만날 계기도 없었던 이들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날아온 뮤지컬 ‘썸씽로튼’(Something Rotten)이라는 작품을 통해 제작자와 번역가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작품성과 흥행을 인정받은 ‘썸씽로튼’에 도전했다. ‘썸씽로튼’은 낭만의 르네상스 시대, 당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제작하게 된 ‘바텀’형제의 고군분투기를 그린 이 작품이다.

신재홍 대표와 황석희 번역가는 ‘썸씽로튼’으로 뮤지컬 시장의 첫 발을 내딛었다. 시쳇말로 ‘뮤지컬’의 ‘뮤’자도 몰랐던 이들이 이 공연 한 편을 무사히 올렸고 덕분에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선 입소문을 타고 흥행 날개를 펼치고 있는 중. 소감을 물어보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뮤지컬이 처음이라~ 무서운 줄 몰랐죠. (웃음)”

<이하 신재홍 엔트리 뮤직 대표와 황석희 번역가 일문일답>

Q. 서로 알던 사이가 아니라고 들었다. 제작자와 번역가로 어떻게 인연이 닿은 건가.

신재홍 : 수소문해서 어렵게 모셨다.(웃음) 영화를 좋아해서 외화를 보던 중 번역가를 유심히 봤는데 황석희 번역가였다. ‘썸씽로튼’을 국내로 가져오면서 여러 번역가 분들을 추천받았는데 번역이 정말 중요한 작업 중 하나여서 고민을 하던 중 황석희 번역가에게 요청을 했다.

황석희 : 언젠간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왔었다. 하지만 내 영역이 아니다보니 잘해낼 거란 확신이 없고 괜히 민폐가 될까 겁이 나기도 했다. 영화 의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작품을 고르진 않는다. 내 작업 순서는 작품 스케일에 상관없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진행한다. 그러던 중 뮤지컬 자막 번역 의뢰가 들어온 거다.

좋은 기회였지만 결정하기까지는 용기가 많이 필요했다. 이미 그 시장에 자막 번역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초보인 내가 섣불리 나서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의뢰를 승낙했다. 그런데 감당이 안 되더라. 대사와 노래도 다 들어봤는데 라임(운율)과 펀(말장난)이 많더라. 영화에서도 그런 ‘펀’은 (작업하기)너무 힘들다. 번역가인 아내도 꽤 듣고 다녔는데 “이거, 많이 힘들겠다”라고 했다.

Q. ‘썸씽로튼’은 새 작품인데다 내한공연이다.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 가져오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신재홍 : 뮤지컬 산업을 잘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가져오려고 했던 프로덕션이 많았는데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수지타산을 생각하면 가지고 오는 게 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뮤지컬 제작을 시작한다면 ‘썸씽로튼’을 첫 번째로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일을 추진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황석희 : ‘썸씽로튼’이 뮤지컬계의 문익점이라는 평도 봤다. (웃음)

신재홍 엠트리 대표.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그런데 뮤지컬 제작을 어떻게 결정하게 된 건가.

신재홍 : 과거에 뮤지컬을 하고도 싶어서 창작뮤지컬도 소소하게 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뮤지컬 환경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작곡가보다 제작자라는 옷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영국에 회사를 차리게 됐다.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과 해외 아티스트들의 교류와 음악 퍼블리싱을 위해서 2016년에 영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엠트리뮤직을 세웠다.

그러던 중 브로드웨이에서 ‘썸씽로튼’을 보게 됐고 꼭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다. 영국 회사의 임원들의 소개로 ‘썸씽로튼’의 프로듀서인 케빈 맥컬럼을 만나게 됐다. 이 작품을 한국으로 가지고 오려 했지만 몇 번 결렬이 됐었는데 맥컬럼은 선뜻 승낙을 해줬다. 내가 한국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한 것처럼 맥컬럼 역시 프로듀서로 있다가 뮤지컬 제작자가 됐다고 하더라. 우리 사이에 음악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았다. 또 K-POP의 영향도 큰 것 같았다.

Q. 황석희 번역가는 어렵게 뮤지컬 번역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나.

황석희 : 뮤지컬 클립이나 대본을 봤을 때 ‘우와, 재미있어!’와 ‘아~ 이건 못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번역가로서 ‘썸씽로튼’은 좌절감을 느끼는 대사가 빽빽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도전 의식이 생겼다. 그것도 좋은 말인지, 괜한 오기가 생기더라. ‘펀’과 ‘라임’을 제대로 살려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따. 물론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지만 그럴 땐 패배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여러 시도를 거쳐 결과물이 ‘짜잔’하고 나왔을 때는 혼자 웃는다. 변태 같은 습성 같기도.(웃음) 물론 이렇게 세세한 작업을 거쳐도 모든 관객들이 다 알아차리시진 못한다. ‘썸씽 로튼’ 첫 곡은 세익스피어의 ‘대소동’을 패러디한 대사가 ‘스윽’ 지나간다. 아주 짧은 자막이 툭 던져지는데 그걸 눈치 채주시는 관객들이 있고 미묘한 어감을 알아차리시는 분이 있으면 보람차다.

영화와 시스템은 다르다. 우선 라이브 공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이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본대로 번역을 하지만 최종본은 드레스 리허설을 보며 수정을 시작한다. 어떤 배우는 대사를 한 번에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배우는 그렇지 않아서 자막을 올리는 타이밍을 조절할 때도 있다. 또 리허설을 하며 애드리브를 넣는 과정도 있어서 그 때마다 또 수정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영화와는 매우 다르다. 신기하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웃음) 그런데 뮤지컬 자막 번역 작업이 좋았던 건 ‘팀 작업’이었다는 점? 영화 번역은 매우 외롭다. 방 안에 혼자서 하는 작업이니까. 뮤지컬은 함께 한다는 점에서 활력을 많이 받았다.

(왼쪽부터) 황석희 번역가, 신재홍 엠트리뮤직 대표.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영화 자막은 화면과 함께 볼 수 있지만 뮤지컬은 무대 특성상 그럴 수 없다. 관객들이 옆에 있는 자막을 보고 무대를 본다. 그런 시간조차 신경을 써야 했을 텐데.

황석희 : 뮤지컬을 공부하려고 ‘라이온 킹’을 보러 갔는데 도저히 즐길 수가 없더라. 무대는 안 보고 자막만 봤다. 화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최대 몇 자, 몇 줄인지, 또 자막이 떠 있는 시간은 얼마인지 체크하느라, (웃음) 보통 영화는 자막이 떠 있는 시간이 1~2초, 최대 3초인데 뮤지컬은 처음이다 보니 담당자에게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며 작업을 해왔다. 번역 작업 자체는 영상 번역을 오래 해온 터라 어떤 대사를 살려야 하고 버려야 할지 선택의 기준을 잘 알고 있어서 크게 어렵진 않았다.

신재홍 : 첨언하자면 관객들이 자막에 만족하고 있다. 보기에 간결하고 단 번에 이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황석희 번역가가 원작에 굉장히 충실했기 때문에 ‘썸씽로튼’에 언급되는 세익스피어의 작품 속 대사 등이 잘 살았다. 또한 정형화된 뮤지컬 자막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 관객들이 잘 보고 계신 듯 하다.

황석희 : 대표님께서 직역을 바라셨기 때문에 의뢰를 응한 것도 있다. 처음에 의뢰를 받았을 때, 최근 뮤지컬 자막에 신조어나 유행어를 많이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런 번역을 바라시면 능력이 안 돼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직역을 해서 구어로 푸는 방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신 대표님 역시 내 스타일의 번역을 원하셨기 때문에 이번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황석희 번역가.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썸씽로튼’은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세익스피어 작품 뿐 아니라 브로드웨이 작품들이 틈틈이 들어가 있으니까.

황석희 : 인터넷과 전자책이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썸씽로튼’에는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소네트’ 등 세익스피어 인용구가 많았다. 대사나 넘버에 나오는 문구 중에 모르는 표현은 검색을 하며 작업했다. 웬만한 건 정말 다 찾아봤던 것 같다. 사소한 대사인데 고어(古語)처럼 보이면 다 세익스피어 작품에서 나온 말이어서 일일이 다 찾아봤다. 뮤지컬 레퍼런스는 ‘레딧’(Reddit)과 같은 곳에서 잘 찾으면 아주 잘 정리돼 있는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보다는 좀 수월한 점이 있다면 참고할 자료가 꽤 많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무조건 최초공개이지 않나. 그래서 찾을 수 있는 자료가 많진 않다. 사실 번역 작업에 ‘검색’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책이다. 하하.

가사 번역은 1년이 좀 넘게 워너뮤직과 함께 하고 있는 작업이 있어서 크게 어렵진 않았다. 또 워낙 음악을 좋아한다. 쌓인 경험치가 좀 있어 힘든 점은 없었다. 단지 옛날 말을 살리면서 운율도 맞추는 작업이 좀 까다로웠다. 오기가 생겨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해봤는데 완벽하게 하진 못한 것 같아 아쉽긴 하다.

Q. ‘썸씽로튼’이 라이선스로 한국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 때도 두 분의 협업을 볼 수 있는 건가.

신재홍 :라이선스 공연도 황석희 번역가와 하게 될 것 같다. 다행히 오리지널팀에서 ‘썸씽로튼’이 한국에서 토착화가 잘 되게끔 융통성을 발휘해주고 있다.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년에 한국 공연을 올리고 싶다. 또 제작자로 한 걸음 내딛었으니 앞으로 좋은 작품을 가져오고 창작뮤지컬을 해외에 알리고 싶다. 하지만 일단 ‘썸씽로튼’ 내한 공연이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

황석희 : ‘썸씽로튼’ 한국 공연을 작업한다면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자막을 번역하는 것과 배우가 실제로 말하는 대사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아내가 더빙 번역을 하고 있는데 정말 다르다. 내게 그런 경험은 굉장한 자산으로 남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또 뮤지컬 첫 발을 뗐으니 다음 작품 의뢰가 들어온다면 더 좋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강점인 ‘어깨 너머로 배우기’를 잘 활용해야겠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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