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부시,첫데이트도‘온그린’…골프를사랑했던권력자들

입력 2008-09-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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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정치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재미있고 배우는데 돈이 많이 들고 같이 활동하는 동반자가 필요하며 잘못하면 손가락질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지녔다는 면에서 골프와 정치는 가장 닮았다.  골프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 부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슬라이스 때문에 고생이다. 그는 아내 로라 여사와의 첫 데이트 때도 골프장을 찾을 만큼 골프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악성 슬라이스만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핸디캡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현재 핸디캡이 15에 멈췄다. 아버지 부시는 진정한 골프마니아다. 예일대학교 야구선수 출신의 아버지는 미국골프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백악관에 살던 시절에는 정원에 연습용 퍼트 그린을 만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 중 골프를 가장 잘 쳤던 대통령이다. 싱글 핸디캡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확한 타수는 비밀로 알려졌다. 한국에도 왔던 제럴드 포드는 막무가내 골퍼로 유명하다. 그는 볼을 찾아 숲의 이곳저곳을 헤치는 탓에 골프클럽을 몇 개나 부러트렸다. 이 정도 실력이면 “초보 수준이 아닐까?”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핸디캡 12로 취임식 다음날 당대 최고의 골프스타 아널드 파머, 잭 니클로스, 개리 플레이어와 함께 골프를 쳤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골프사랑은 유명하다. 보기 플레이어 정도의 실력에 불과했지만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골프장에서 몇 번이나 80타대 스코어를 기록했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하지만 오거스타의 17번홀 페어웨이 왼쪽에 자리한 20m짜리 큰 소나무는 그의 플레이에 항상 걸림돌이었다. 그는 나무를 잘라버리기 위해 운영회의를 신청했지만 오거스타의 초대회장 클리포드 로버츠는 “코스를 훼손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1분 만에 그 안건을 기각시켜버렸다. 나무와의 대결에서 진 대통령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오거스타를 탈퇴하지 않고 쉬쉬했다. 뒷날 그 나무는 아이젠하워 나무라고 이름 붙여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멀리건’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많이 멀리건을 남발했는지 혹자들은 ‘빌리건’이라고 했다. 스코어를 창조적으로 적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분명 트리플 보기를 저질렀음에도 그의 스코어카드에는 보기로 적혀있다. 당장 퇴장감이지만 감히 누가 대통령에게 그럴 수 있겠는가.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쳤지만 즐기지는 않았다. 여행을 떠날 때 골프클럽을 챙길 정도였다. 우드로 윌슨은 뛰어난 골퍼는 아니지만 ‘개척자’로 통한다. 윌슨보다 더 깊이 골프에 빠진 대통령이 많았지만 겨울 골프에 꼭 필요한 것을 발명하진 못했다. 윌슨은 한겨울 눈 덮인 코스에서도 골프를 칠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고심은 컬러볼을 탄생시켰다. 흰색의 볼에 빨간색이나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이것이 흰 눈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컬러볼의 시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골프실력은 신기에 가깝다. 만일 북한 방송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김정일은 지금 당장 타이거 우즈와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실력이다. 생애 첫 라운드에서 11개의 홀인원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진짜 실력이라면 타이거 우즈는 동네 연습장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골프에 대한 주관이 극명하게 갈린다.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한 골프일화는 많다. 청와대에 골프연습장을 만들었고, 군자리코스(현 어린이대공원 위치)를 만들어 자주 라운드했다. 그는 공을 그린에 올리면 무조건 ‘OK’를 받고 홀아웃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허리를 굽히는 것을 싫어해서 퍼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라운드 하면서도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한양, 뉴코리아, 군자리코스 등을 자주 다녔는데 수행원 중에서 막걸리 통을 들고 따라 다닌 사람이 별도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지만 서슬 퍼런 그 시절에 안 되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 전두환과 노태우 대통령은 골프장 건설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골프를 무척 좋아해 시간이 나면 골프장을 찾은 반면, 노태우 대통령은 드러내 놓고 골프를 즐기지 않았다. 평소 성격대로였다. 수십 개에 불과하던 골프장은 5공과 6공화국 시기에 몇 배가 증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공무원의 골프 금지령’까지 선포해 골프와 담을 쌓고 살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 놓았던 청와대의 골프연습장도 없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골프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1999년 제80회 전국체전 공식행사 자리에서 “골프는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의 스포츠다. 퍼블릭코스를 개발해 서민도 함께 할 수 있는 종목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골프대중화’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골프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원동력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취임 초기 청남대와 충북의 한 골프장에서 측근들과 함께 여러 차례 라운드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평균 스코어는 보기플레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직 대통령과 비교하면 자주 라운드 한 편이다. 장비에도 관심이 많아서 클럽을 여러 번 교체하기도 했다. 부인 권양숙 여사도 골프를 좋아했는데 실력 면에서는 노 대통령보다 낫다는 후문이다. 정치인들이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관리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중독성 때문에 간혹 본업을 제쳐두고 골프에 몰두했다가 구설수에 오르는 정치인들이 허다하다. 전국은 물난리로 정신이 없는데, 속 편한 정치인들끼리 ‘굿샷’을 연호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맡은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골프 때문에 여론의 질타를 받고 목이 날아간 고위공직자 정치인은 부지기수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누구와 골프를 쳤느냐가 몇 타를 쳤는지 보다 더 중요하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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