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銀여자역도윤진희“4년뒤엔바벨TOP완성”

입력 2008-09-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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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아보는 사람도 제법 생겼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 여자역도 53kg급 은메달리스트 윤진희(22·한체대)는 “내가 유명해진 것보다 역도라는 종목이 많이 소개 된 것이 더 기쁘다”고 했다. 29일부터는 원주 치악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다. 가장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역도를 즐기는 법.” 이쯤 되면 거의 역도 전도사 수준이다. “목표가 없던 평범한 학생에게 열정을 심어줬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역도라는 점을 찍은 뒤 윤진희의 인생은 바뀌었다. “오늘도 하나의 점을 찍으며 내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윤진희를 만났다. 점들의 종착지는 당연히 2012년 런던이었다. ○다재다능(多才多能), 하지만 역도가 가장 좋았다 윤진희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 하지만 그녀의 재능만큼은 부유했다. 야구선수 출신의 오빠만큼 운동을 잘했다. 중학교 때 100m기록이 13초대. 화가인 외삼촌의 피를 타고 났는지 그림도 자신 있었다. 댄 브라운과 시드니 셀던의 글을 좋아하던 소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태릉에 들어오기 전까지 소설 습작을 했다. 역도대표팀 오승우(50) 감독은 “판타지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동료들에게 선을 보이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역도가 아니었어도 다른 종목 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몸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가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처럼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2학년. 역도 입문 1년도 안돼 출전한 첫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록 느는 재미에 빠졌다. 그림, 소설. 다른 꿈들의 크기가 작아지는 만큼 그녀의 역기는 더 무거워졌다. ○독기로 든 역기 오승우 감독은 “(윤)진희는 독기가 서려 있는 선수”라고 했다. 윤진희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합계 213kg(인상 94kg, 용상 119kg)을 들었다. 4월 포항에서 열린 왕중왕대회에서 작성한 본인의 한국기록에는 한참 못 미쳤다. 윤진희는 당시 합계 222kg(인상 99kg, 용상 123kg)을 들어 올렸다. 금메달을 획득한 태국의 프라파와디의 기록이 합계 221kg(인상 95kg, 용상 126kg)여서 아쉬움이 남았다. 심각한 왼 무릎 부상이 문제였다. 윤진희는 “올림픽을 위해 몸을 갉아 먹으며 운동을 했다”고 표현했다. 왕중왕 대회 이후 한 달간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당시 윤진희의 체급(58kg급)은 한국의 출전체급조차 아니었다. TV로 지켜본 올림픽. 이후 “4년간 칼을 갈았다”고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바벨을 잡았지만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자 다른 부위에 과부하가 걸렸다. 골반과 척추까지 이상이 생겼다. 윤진희는 “베이징올림픽에서의 컨디션은 하향곡선에서도 최저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배영의 투혼이 용상 세 차례시기에서 발휘됐다면, 윤진희의 독기는 무려 4개월에 걸쳐 뿜어져 나왔다. 사실 처음 역도를 시작했을 때부터 정신력이 남달랐다. 중학교 시절. 훈련을 하다 20kg 짜리 디스크에 손을 찧은 적이 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손. 달랑거리던 손톱. 그 손으로도 연습을 계속했다. 8년 뒤 베이징에서도 그 오기로 역기를 들었다. ○세계기록이 목표 몸이 아프면 역도를 즐길 수 없고, 선수 생명도 짧아진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당분간은 재활훈련에 전념할 계획. 환영행사 때문에 미뤄왔던 일들도 해야 한다. “부산과 춘천에는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부산에는 고(故) 김동희 코치가 안치된 납골당이 있다. 4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 코치는 생전에 윤진희를 친자식처럼 아꼈다. 춘천 선산에 있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도 “꼭 메달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목표를 물었다. 윤진희는 “난 아직 (장)미란(25·고양시청) 언니에게 한참 모자라다”고 했다. 장미란이 근육이 잘 자라는 스타일이라면 윤진희는 어렵게 근육을 만들어도 쉽게 빠진다. 부단한 운동은 필수. 세계기록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여자53kg 세계기록은 인상 102kg, 용상 129kg, 합계 226kg. 특히, 자신이 강한 인상은 첫 번째 과제다. 오승우 감독은 “(윤)진희는 영리해서 어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했다. 문제는 몸 관리. 당장 내년에는 고양세계선수권이 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리핑(중국)과의 진검승부도 기다리고 있다. 리핑은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이 여자 53kg급을 참가종목에서 제외해 출전하지 못했다. 4년 전 윤진희처럼 절치부심하고 있을 것이다. 메달이라는 훈장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윤진희는 자기 자리를 잘 알고 있었다. “스포츠인은 스포츠를 할 때 가장 빛난다”며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한 쪽 팔에 깁스를 한 상태지만 하체훈련을 거르지 않기 위해서다. “4년 뒤 런던에서는 세계정상에 서겠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태릉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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