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드라마작가김수현,왜국내용인가

입력 2008-10-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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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문화비평
TV 드라마 작가 김수현의 위상이 한결 드높아졌다. 최근작 ‘엄마가 뿔났다’마저도 각종 사회현상을 일으키며 문화 중심에 서더니, 2008 서울 드라마페스티벌 어워즈 부대행사 ‘대한민국 대표작가 김수현과 예비작가들의 만남’에서는 한국 드라마계 전체를 상징하고, 진단하는 위치에까지 섰다. 김수현은 확실히 전설적인 존재가 맞다. 지난 40년 간 그녀가 써낸 작품들은 한국 TV드라마의 근간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변화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드라마 주창, 치열한 빈부격차 묘사=흥행 키워드가 되는 대중 정서 예측, 자극적 소재와 보수적 결론 콘셉트의 적중, ‘출생의 비밀’을 비롯 각종 드라마 투르기 장치 개발 등, 그녀의 업적은 무궁무진하다. 한국 드라마가 어딘지 잘 풀린다 싶으면, 그 공로는 김수현에게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뭔가 문제가 생겼다 싶을 때도 대부분 원인은 김수현이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김수현에게도 딜레마는 있다. 한국 드라마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는 인물이 맞긴 하지만, 정작 한국드라마에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준 한류 측면에서는 별반 성과가 없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정도가 수년 전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산아제한으로 대가족제에 동경을 품고 있는 중국인들 심리를 건드렸을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자국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김수현 드라마는 결국 ‘자국용’으로만 그치고 마는 걸까. 이유는 한류 중심에 선 ‘겨울연가’ 윤석호 PD 작품들과, 제 2차 한류붐을 일으킨 ‘대장금’과의 비교를 통해 생각해보면 쉽게 풀린다. 먼저, 김수현 드라마는 ‘대사’ 중심이라는 게 문제다. 번역을 통과했을 때 언어의 묘미가 사라진다는 건 문화적 상식이다. 더군다나 김수현 대사의 매력은 한국이라는 국지문화권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게 많다. 댓구식 대사,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쾌감, 노골적 단어와 일상적 단어의 재배치, 감정의 고조를 목청이 아니라 단어와 대사 길이로 표현하는 테크닉 등은 번역과정에서 ‘살아남을 리 없는’ 장점들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 콘텐츠 세계화에 있어 기본적으로 감안되는 요소다. 미드에 있어 대사의 묘미로 승부하는 시트콤보다 장르드라마 쪽 반응이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 코미디의 영웅 주성치도 초기에 대사 위주 코미디로 자국범위 내에서만 인정받다, ‘소림축구’부터 비주얼 코미디로 전향해 마침내 세계적 입지를 구축했다. 이에 반해 ‘겨울연가’는 확실히 ‘대사의 묘미’에 의존한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대사 중심에서 현격히 멀어진, 영상 중심의 콘텐츠다. 애초 상황과 감정을 단순 전달하는 밋밋한 대사들이어서 번역과정에서 딱히 매력이 상실될 것도 없고, 대신 일상에서 멀리 벗어난 한국의 자연풍광 등을 담아 해외인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아랍국가 등지에서도 ‘겨울연가’ 매력에 대해 남이섬 로케 등을 꼽기도 했다. ‘대장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사 자체는 현대어와 고어투를 뒤섞어 밋밋하게 재구성한 한국 사극 전형이다. 대신 궁중을 비롯, 한국의 고전 가옥양식과 의복, 무엇보다 화려한 요리들로 시각적 즐거움을 꾀했다. 정확한 세계화 모델이 됐다. 다음으로, 김수현 드라마의 ‘국지적 사회성’ 묘사를 들 수 있다. 자국시장에서는 오히려 셀링 포인트로 작용하는 요소다. 그러나 해외로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른바 ‘만국공통어’적인 요소들이 중심이 되어야 기본정서가 바로 넘어가게 된다. 예컨대, 김수현이 자주 묘사하는 사회 기득권층의 위선, 서민층의 애환 등은 사실상 가장 치열한 사회현실 묘사에 속한다. 각 시대마다 미묘하게나마 그려지는 형태도 다르고, 그때그때마다 자국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다. 사회제도와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미혼모 문제, 불륜 문제, 그리고 ‘엄마가 뿔났어’에서 보여준 주부안식년 이슈까지, 한국의 국지상황에서 벗어나면 좀처럼 이해되기 힘든 요소들이 많다. 같은 이슈라도 개별 국지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요소들이어서 동질감을 갖기 힘들다. 반면, ‘겨울연가’는, 정확히 말해, 무대가 한국이 아니어도 관계없을 정도로 국지적 색깔을 뺀 드라마다. 인간 간에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연민, 슬픔과 환희를 담았다. 이렇듯 치열한 현실묘사를 뺀 까닭에 국내 인기도는 높지 않았지만, 이런 ‘자국 내 취약점’이 한류 코드로서는 최적으로 발현됐다. ‘대장금’ 역시 ‘조선시대’라는 이국색 짙은 무대배경을 제외하면, 각종 갈등요소나 플롯 전환점은 지극히 일반적인 코드로 점철돼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 나올 수 있는 구조에,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먹히는 단순 흑백 선악 구도를 담았다. 따로 이해가 필요치 않다. 이런 식의 발상을 처음 시도해 지금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이 바로 할리우드다. 현 시점 할리우드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덜 ‘미국적’이다. 그렇게도 즐기는 표상인 ‘성조기’가 마지막으로 블록버스터 영화 화면에 등장한 게 2002년 ‘스파이더맨’이다. 사상적으로도 미국식 개척주의 등을 표방한 영화는 잘 안 나온다. 근래 들어서는 아예 무대까지도 미국을 벗어나 ‘반지의 제왕’ 등 각종 팬터지 영화로 세계화 코드를 잡았다. 국지 현실 반영률을 극단적으로 낮췄다. 범세계적으로 통용될 만한 가치, 갈등, 해소만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수현 드라마는 ‘스타’를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아니다.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하더라도 그런 효과가 안 나온다. 스타로서 표방해야 할 신화성, 비현실성, 통일성을 김수현은 안에서부터 파괴해 버린다. 그래서 김수현 드라마는 꾸준히 ‘평범한 배우를 명연기자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은 맡고 있어도, 무명의 배우를 스타로 만드는 역할은 못 하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 자체의 퀄러티 보장으로서는 분명 득이다. 그러나 해외로 넘어가면 이 같은 발상이 오히려 독이다. 세계 각국이 받아들이는 ‘미국 외’ 해외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스타 파워를 동력으로 삼는다. 신화성을 바탕으로 한 배우의 스타성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야 콘텐츠가 넘어가 위력을 발휘한다. 배우를 ‘뛰어난 배우’로 만들기보다 ‘배우 이상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야만 한류 효과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겨울연가’는 이에 가장 적합한 경우다. 배용준이 맡은 ‘이민형’은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이다. 인물의 신화성, 비현실성을 충분히 갖췄고, 부조리한 면 없이 통일된 형태의 캐릭터로 굳어있다. 사실상 ‘살아있는 인물’조차 아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면 이런 만화적 인물상에 더 큰 파괴력이 생긴다. ‘대장금’ 역시 같다. ‘콩쥐’ 역을 맡은 전래동화 속 인물에 가깝다. 이런 단면적 캐릭터들은 드라마 자체에 깊이는 덜할지언정, 스타파워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강해준다. 드라마 속 인물을 뛰어넘어 배우 개인에 대한 관심을 북돋운다-드라마 속 인물에 대해 ‘외모’ 이상의 관심을 갖기 힘들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 동안 한류를 노린 ‘슬픈 연가’ 등의 콘텐츠가 연달아 실패하자 ‘한류 드라마’라는 단어는 곧장 웃음거리로 전락한 바 있다. ‘안에서 끓어야 밖으로 넘친다’는 격언에 따라 우리가 봤을 때 좋아야 해외에서도 좋아한다는 통설이 난무했다. 이제 그런 통설을 접어야 한다. 한국에서 팔리는 콘텐츠와 해외에서 팔리는 콘텐츠는 전혀 다르다. ‘슬픈 연가’ 등의 실패는 세부적인 전략상의 실패였을 뿐, ‘해외용 드라마’라는 콘셉트 자체는 정답이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면밀하고 정교한 해외시장 전략이다. ‘해외용 김수현’ 모델을 기획해봐야 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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