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련댄스프로젝트‘풍류,사구의노래’

입력 2009-03-10 16: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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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t, Dust… Ashes to Death. 낮은 저음의 독백 아래, 바닥에 살짝 누운 사람의 등 위로 슬며시 다가온 타인의 배가 겹친다. 인간의 육체가 먼지처럼 풀풀 날리고 있다. 무용수들은 바람 따라 공중에 떠돌며 부대낄 뿐, 정지하지 않는다. 6,7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풍류(風流), 사구(砂丘)의 노래’는 바람 따라 스러지는 모래 언덕처럼 영원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보여줬다. 강한 전자음, 마치 뼈를 빻는 것 같은 으스스한 강한 비트의 음악이 흘렀고, 무수히 무용수들의 몸은 뒤엉켰다. 비스듬히 서면 곧추 세워주고, 다가온 찰나 다시 멀어진다. 허망하고 또 허망하다. 강혜련 댄스 프로젝트의 ‘풍류, 사구의 노래’는 춤과 무대 3면으로 비치는 무용수들의 그림자가 외로움을 극대화시켰다. 그림자는 계속 자취를 그리며 배경을 만들어냈다. 바닷가 누런 모래를 손에 쥐어본 사람들은 안다. 한 움큼 모래를 손바닥에 쥐어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모래시계처럼 스르르 흘려보낸다. 손바닥 안에 까끌까끌 모래가 남으면 그것조차 깨끗이 털어버리고 만다. 인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모래를 쥐었냐는 듯 흘려버려지는 모래가 되기도 하고, 흘려보내는 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끝없이 관계를 맺어간다. 켜켜이 쌓인 모래 언덕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자취도 없이 사라지듯, 인간의 감정은 휘발성이다. ‘풍류, 사구의 노래’는 찰나의 감정, 이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표현했다. 어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인정해야 하는 인간의 오묘한 감정들은 무용수의 신비로운 몸짓과 푸른 조명에 그대로 드러났다. 마치 초록빛 밤 물가에 떠도는 영혼이라도 풀어놓은 양, 얇은 천이 펄렁거리는 의상은 각기 단절된 무용수들의 동작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특히 공연 마지막 천장에서 쏟아지는 모래알들은 소멸되는 것의 극치를 보여줬다. 소멸은 결국 죽음이다. 죽으면 한 줌 재일뿐, 그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 모래비가 내리는 장면은 극히 허무한 장면을 표현했다. 허무라 해서 부정적 결말은 절대 아니다. 외로움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체를 타인에게 뻗어간다. 끝없이 떠도는 육체가 역설적으로 생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포개지지 않지만, 섞이기 위해 부유하는 몸짓 그 자체가 아름답다. 결국 홀로 남을지언정, 옅고 짙은, 하얗고 검은 수묵화의 터치로 흔적을 남긴다. 쫓기듯 쉴 새 없이 부딪치고 피하고… 다시 만나는 인간들, ‘풍류, 사구의 노래’는 사람 사이의 허무함을 춤사위로 고스란히 드러냈다.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허무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몸짓은 먼지를 툭툭 털고 비상을 꿈꾸기에 아름다웠다. 윤동주는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는 어둔 방에서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그의 마음이 영혼이 병들어가는 ‘백골’인지, 이상적인 가치를 향한 ‘아름다운 혼’일지 고민하며, 결국 ‘백골 몰래 또 다른 고향에 가자’고 읊조린다. ‘풍류, 사구의 노래’를 보는 순간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허무, 인간의 외로움은 결국 바람에 몸을 맡기고 ‘또 다른 고향’으로 떠나는 몸짓만이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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