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프리토킹]맨유‘로테이션시스템’은시한폭탄

입력 2009-05-21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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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래!”퍼기에반기든테베스…왜?
퍼거슨의 딜레마가 만들어낸 리그 3연패였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홈경기 아스널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그 역대 18번째 우승을 자축하는 자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언론과 팬들은 디펜딩 챔피언 맨유가 프리미어리그(EPL) 타이틀을 또다시 방어했다는 사실 못지않게 시즌 후 맨유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테베스에 큰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후반 22분 테베스가 박지성과 교체되어 나오자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바로 테베스를 교체하는 퍼거슨에게는 야유가, 테베스에게는 맨유에 남아달라는 호소가 스타디움을 뒤덮은 것이다.

적어도 맨유 팬들은 올드 트래포드의 터줏대감 퍼거슨의 결정에 반감을 가질 만큼 테베스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모를 리 없는 퍼거슨은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 퍼거슨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맨유 2개 이상의 주전급 스쿼드로 리그 3연패 성공

퍼거슨은 맨유가 EPL의 왕좌로 군림하면서도 유독 챔피언스리그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맨유 스쿼드가 두텁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주전급 스쿼드를 운영할 수 있는 팀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리고 이런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일례로 맨유의 3군을 내보냈다는 FA컵 준결승 에버턴전에서도 연장까지 접전을 펼칠 만큼 맨유 스쿼드는 두터워졌다. 히딩크도 첼시가 맨유와 경쟁을 원한다면 맨유와 같은 두터운 스쿼드를 만드는데 투자를 더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한 맨유가 바르셀로나와의 챔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주전급 선수들을 헐 시티전에 대거 결장시킬 것으로 보이자, EPL 잔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강등권 팀들의 시기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헐 시티의 매니저 필 브라운도 맨유의 두터운 선수층을 예로 들며 맨유전은 누가 나오든 힘든 경기라고 반박했다. 강등권을 자력으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챔피언 맨유를 이기는 방법밖에 없는 필 브라운은 심지어 맨유에는 EPL에서 통할 수 있는 3개의 팀도 만들 수 있는 최고 레벨의 충분한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EPL을 주름잡으면서도 챔스리그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퍼거슨의 뼈저린 체험에서 터득한 2개 이상의 주전급 스쿼드 운영이라는 구상은 이제 리그 3연패 달성과 챔스 리그 2연패를 목전에 두고 만개한 느낌이다. 이번 시즌 맨유에 유일하게 두 번의 패배를 안긴 라이벌 리버풀의 베니테즈는 맨유의 리그 우승에 대해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말도 거부할 만큼 최근 퍼거슨과 관계가 악화돼 아스널의 웽거를 능가하는 새 앙숙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스쿼드가 맨유의 스쿼드에 견줄 만큼 대등한 수준이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런 베니테즈의 다분히 퍼거슨을 의식한 코멘트는 19년 만에 최강의 멤버로 우승에 근접했지만 역부족으로 끝나고만 리버풀의 부족했던 2%%를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리버풀이 부족했던 1%%는 맨유에 비해 빈약한 선수 층이고, 나머지 1%%는 주전과 비주전들 사이의 갭이 컸었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맨유는 EPL, 챔스리그와 모든 컵 대회에 3개의 스쿼드를 만들고도 남는 34명의 선수를 운용한 반면 리버풀은 28명이 그쳤다. 이 격차는 EPL만 놓고 보면 더욱 벌어지는데, 맨유가 EPL에 31명을 출전시킨 반면 리버풀은 23명에 머문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숫적인 열세가 아닌 질적 문제인 것이다. 맨유는 호날두, 루니, 베르바토프, 테베스 중 누구를 선봉에 세우더라도 EPL 최고의 공격력이라 평가되지만 리버풀은 토레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를 노출했다. 이런 얇은 선수 층과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 심화는 경고누적, 퇴장, 부상, 체력저하라는 암초를 만난 리버풀이 맨유에 역전우승을 허용한 빌미가 되었다.

○주전경쟁으로 출전 횟수 준 테베스 반발…퍼거슨의 딜레마

퍼거슨은 맨유가 다음 시즌도 우승하여 리그 4연패와 19회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이라는 신기원을 세워 리버풀을 멀찌감치 따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만일 리버풀과 첼시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맨유에 걸맞는 선수보강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에도 퍼거슨의 맨유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맨유의 강점에 퍼거슨의 고민이 있다. 두터운 선수층은 치열한 주전경쟁과 퍼거슨의 선수 운용의 폭을 넓혀 주었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의 출전횟수에 불만을 가진 테베스와 같은 선수들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수석 코치 마이크 펠란은 그것이 축구의 본질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믿는 일부 선수들을 이해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퍼거슨은 베르바토프를 영입한 후 호날두를 제외하고 루니, 베르바토프, 테베스를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운영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는 테베스가 주전경쟁에서 탈락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테베스의 분노를 산 것이다.

그러나 선수운용 등 감독의 권한에 반기를 드는 것이 호날두든 테베스든 퍼거슨이 10년 전부터 보낸 경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퍼거슨은 만일 그 어떤 플레이어가 감독의 통제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단 하나의 대답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것은 ‘굿바이’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퍼거슨의 신화가 현재 진행형인 이유다.

요크(영국) | 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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