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기자가간다] LIG배구단실미도캠프입소체험

입력 2009-06-1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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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자신있었는데….’ 장대들 사이에 파묻힌 채 최선을 다해 7km 구보를 시도해봤다. 그러나 역부족. 숨기고픈 ‘저질 체력’은 이번 체험에도 역시 발목을 잡았다. 나름 열심히 뛰어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외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실미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구보도중KO!“나의위치를알리지말라”
어릴 적부터 군대에 관심이 많았다. 전쟁 관련 서적은 닥치는대로 읽었고, 군대 영화나 외국 드라마도 죄다 섭렵했다. 무기와 현대 전쟁사 역시 어느 마니아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늘 2%% 아쉬움이 있었다. 경험하지 못한 특전사, 공수부대, 해병대는 항상 미지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차, 우연하게 기회가 찾아왔다.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남자 배구단이 5월25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실미도 해병대 IBS 캠프에 입소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서둘렀다.

물론, 데스크도 OK! 진짜 사람(?)이 돼 돌아오라는 격려도 받았다. “저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체험기로 다뤄보고 싶은데.”

장홍석 LIG 손해보험 지원과장의 주저없는 대답. “물론이죠. 힘들텐데 괜찮겠어요? 세면도구만 가져오세요.”

일사천리로 진행된 체험 섭외. 곧 닥쳐올 1박2일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마냥 설레기만 했다.
통성명 거절한 교관에 시작부터 기죽고
휴대폰·MP3 압수 ‘심상찮은’ 기운 감지

○선착순 뺑뺑이에 땀 줄줄…오랜만의 제식 훈련에 쩔쩔

 이 때만 해도 좋았다.



LIG손보 배구단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는 영종도 잠진도 선착장. 아침부터 발걸음이 유독 가볍다. 일찌감치 도착해 잠시 쉬고 있으려니 선수단 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박기원 감독과 김장현 사무국장이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왜 이런 걸 하려고 해? 이걸 어째?”

이번 훈련에는 부상과 대표팀 차출 등으로 빠진 이경수, 김요한, 하현용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참여했다. 프런트 2명과 코칭스태프 7명을 포함해 모두 21명. 대부분 기업체나 단체들은 1박2일 혹은 2박3일 코스를 희망하지만 이례적으로 LIG 배구단은 가장 긴 4박5일 코스를 택했다. 그만큼 ‘다시 한 번 해보자’는 각오와 의지가 엿보였다.

짭짤하고 비릿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배로 10분여를 타고 들어간 실미도. 훈련을 총괄하는 장성일(41) 책임교관이 선수단을 마중나왔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명함 교환은 커녕, 간단한 통성명조차 거절한다. “일과 끝내고 받겠습니다.” 기가 금세 죽는다. 이미 한 수 내주고 시작한 셈. 웃고 떠들던 선수들도 휴대폰과 MP3 등 일부 소지품을 압수당하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용해졌다.

 반갑다! 해병대 캠프!


훈련장과 단상이 있는 백사장. 3척의 고무보트(IBS) 중앙에 마련된 사열대 뒤에는 ‘LIG 손해보험 선수단, 정상에서 다시 만납시다’란 글귀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산악 및 P.T훈련을 담당할 정수인 교관과 제식을 담당하는 남승용 교관, 갯벌생존 코스를 맡은 정지웅 교관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 해병대 부사관 출신.

곧바로 시작된 제식 훈련. ‘우로 돌아, 좌로 돌아, 뒤로 돌아’까진 그럭저럭 따라했지만 이후부터 실수연발이다. 제식을 처음 접한 대부분 선수들도 마찬가지. 곧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정신차리지 못하고 헤매다가 아무 것도 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왜 이곳에 왔는지 각자 생각해 보십시오. 목표는 저기 보이는 노란색 해변 경고 표지판. 사열대까지 돌아오는데 선착순 2명, 뛰어 갓!”

‘오 마이 갓’ 정말 싫어했던 ‘뺑뺑이’다. 몇 차례 모래사장을 반복해서 뛰다보니 땀이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흐른다. 순위도 차츰 밀렸고. 17위, 18위, 급기야 선수단 최고령자 박 감독을 빼고 맨 꼴찌. 그렇게 ‘저질’ 체력은 고갈되고 있었다.

제식훈련·PT 실수연발 ‘모래밭 뺑뺑이’
얼차려 받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해병대식 P.T 체조… 만만치 않았던 점호


 해병대 PT 다르긴 다르네!


잠시의 휴식 뒤 이어진 해병대 P.T 체조. ‘피가 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나? 육군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막상 낯선 체조를 하려니 헷갈린 것은 당연지사. 원체 뻣뻣한 몸이 말을 통 듣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던 김상우 코치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멋쩍어 슬며시 웃음을 교환했다. “죽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역시 교육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역시 정 교관의 쉰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전체 어깨동무 실시, ‘앉았다 일어서기’ 100회!” 마지막 구호는 외치지 않는 게 군대만의 전통. 잠시 정신을 팔고 있다가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번호를 외치게 된다. 당연히 얼차려는 반복되기 마련이고. 박 감독이나 선수단을 인솔하는 김 국장도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리더들의 솔선수범에 선수들도 꼼짝없이 따라갈 수밖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저녁 식사 후 한 시간 가량 시청각 교육을 받자 그토록 기다렸던 순검(해병대는 ‘점호’를 순검이라 부른다) 시간이 돌아왔다. 취침이 다가왔다는 증표. 피곤에 절어 잔뜩 일그러져 있던 선수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감돈다.

하지만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다. 잠도 허락이 필요한 군대. 각 내무실(?) 위생 상태까지는 통과했지만 교관들이 외우라고 나눠준 ‘LIG인의 긍지(해병의 긍지를 각색한 것)’ 4대 항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나는 불가능을 모르는 전천후, 최강 선수임을 자랑한다. 나는 책임을 완수하는 충성스런….”

 악으로! 깡으로! 동료와 어깨동무


우물쭈물하자 다시 얼차려 반복. 푸시-업(팔 굽혀펴기) 100여회를 하고 30분 뒤 2차, 3차 순검이 이뤄질 때까지도 여전히 통과는 쉽지 않다. 글자 하나라도 틀리면 곧바로 “불합격”을 외쳐 시간은 계속 길어진다. 해변까지 나와 다시 한 번 정신교육도 받고. 선수들에게 든든한 ‘맏형’으로 통하는 김 코치가 후배들을 다그치는 소리도 여러 번 들려왔다. “내 한 몸 편하려다 모두가 피곤해진다. 그게 조직이야.”

이튿날 무장구보 1km 못가 낙오병 신세
지옥의 IBS 훈련…다든 보트에 손만 살짝

○7km 무장구보…소대장의 힘? 결국 낙오자로

저질 체력…이건 내가 아니야!



이튿날 오전부터 시작된 무장구보. 모래가 담긴 배낭을 메고 산길을 넘어 바닷가 코스를 뜀박질하는 훈련이다. 숨막힐 듯 뜨거운 날씨에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른다. 비닐봉지에 각자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모래를 담으란다. 슬쩍 주위를 살피려니 다들 가득 담는다. 첫 날 훈련의 효과가 벌써 드러나고 있다. 누구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눈치보지 않았다. 배낭을 등에 짊어질 때도 서로를 돕는다. 동료애가 조금씩 나오는 모습을 보며 박 감독도 싱긋 웃는다.

드디어 출발선. 맨 앞줄에서 세터 황동일과 나란히 섰다. 잘생기고 훤칠한 그와 함께 있으려니 괜히 설렌다.(오해마시라!) “체력 좋으실 것 같은데요. 다 뛰실거죠?” 솔직히 자신은 있었다. 지구력 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강원도 철원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이후 4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조깅조차 제대로 안했던 지난 날은 생각지도 않은 채. “특별할 게 있겠어요? 뜀박질은 잘해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막상 시작되자 1km도 가지 못해 다리가 천근만근, 금세 지친다. 사방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누구도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육군 소대장의 구호 ‘나를 따르라’는 커녕, 맨 뒷줄로 빠져나왔다.

열외 병력은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는데. 함께 구보에 참여한 장성일 교관이 “그것밖에 못합니까”라고 놀려대도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다. 근처 경관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오직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 뿐. 나중에는 아예 터벅터벅 걸어버린다. 입안에는 타이어 내음이 난다.

하지만 끝났어도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IBS 체험 훈련. 일찍 철수해야하는 일행을 위해 교관들이 특별히 마련해준 코스.

해병대 병영에선 100kg이 넘는 보트지만 이곳에선 일반인들을 위해 80kg(?)짜리 특수제작 보트를 활용한다. 그래도 무겁다. 거인 속 난쟁이처럼 다들 어깨에 보트를 올려놓을 때 홀로 두 팔을 들어올려야 했다.

키작아 미안…니들이 고생이 많다


8명이 한 조가 돼 보트를 메고 이동하는데 일반적 계산이면 10kg씩 나눠들면 되지만 기자가 편성된 팀은 그게 아니다. 손만 살짝 걸쳐놓을 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조직의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최고의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일정으로 인해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도전할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13m 암벽 레펠은 꼭 해보고 싶었는데.

박 감독은 “서로가 가장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단결심을 키우고, 협력하며 동료애를 키울 수 있으니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몸은 괜찮으시려나?
실미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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