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김성근사인만20가지‘온몸이사인판’

입력 2009-07-15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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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사직에서 열린 한화-롯데전. 롯데 포수 장성우가 사인을 내고 있다. 포수는 가장 많은 선수들과 사인을 교환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쪼그려 앉아 있느라 무릎이 아픈 것은 물론이고, 머리까지도 쥐가 난다.사직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사인으로시작사인으로끝!…야구사인의세계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시작되는 스포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 이전에 사인으로 시작된다. 홈팀 선발투수가 1회초 첫 타자에게 초구를 던지기에 앞서, 포수의 사인을 받고 구종과 코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야구만큼 사인이 많은 스포츠도 없다. 머리, 눈, 코, 입, 귀, 얼굴, 가슴, 어깨, 팔, 손가락, 손등, 엉덩이, 허벅지, 무릎, 심지어 거시기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사인판이다. 복잡한 듯하면서도 간단하고, 간단한 듯하면서 복잡한 종합예술. 사인으로 시작해 사인으로 끝나는 야구에서 그 오묘하고도 비밀스러운 사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비밀스런 암호 ‘사인’, 보여지는 신호 ‘시그널’

야구에서 ‘사인(Sign)’은 비밀스러운 약속된 움직임이나 제스처, 소리를 뜻한다. 보통 약속된 몸짓으로 사인을 주고받지만 숫자나 단어 등 암호로 사인을 교환하기도 한다. 포수가 투수에게 손가락의 조합으로 특정 구종과 코스를 요구하고, 3루코치가 모자와 어깨, 팔, 가슴 등을 만지며 감독의 작전을 전달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시그널(Signal)’은 말그대로 ‘신호’다. 넓은 의미에서 시그널도 사인에 포함된다. 그러나 야구에서 사인과 시그널은 구분하고 있다. 안타가 터졌을 때 3루코치가 2루주자에게 ‘고(go)’와 ‘스톱(Stop)’의 신호를 보내고, 감독이나 수비코치가 야수들에게 수비 시프트를 지시하는 동작들은 시그널에 해당한다. 심판이 몸동작으로 수많은 판정을 내리는 것도 시그널이다.

○투수·코치·감독·야수와 사인 교환… ‘사인 덩어리’ 포수

포수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곤한 포지션이다. 몸에 장비도 가장 많이 걸치지만 사인의 스트레스도 가장 많다. ▲투수와의 사인교환 ▲배터리코치와의 사인교환 ▲감독과의 사인교환 ▲수비코치와의 사인교환 ▲야수간의 사인교환이 필수적이다. 종류와 형태도 제각각인 모든 사인을 외우고 있어야 한다. 또한 타자로 나서면 ▲3루코치와의 사인교환도 해야한다. 그 모든 사인을 외워야하며, 절대 착각해서는 안 되는 포수는 그만큼 영리해야하는 포지션이다. 포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수와의 사인교환. 보통 1경기를 소화하면 팀당 150개 안팎의 투구수가 기록되는데 공 1개마다 구종과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주자 없을 때와 주자 1·3루시, 주자 2루시 등 모든 상황에 대비해 포수는 보통 하루에 5종류의 사인을 준비한다. 주자가 사인을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3루코치, 타자·주자간 사인시 신체부위 15-17차례 만지작

3루코치는 팬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요란한 몸동작을 펼친다. 보통 3루코치는 한번 사인을 낼 때 15-17차례 신체 부위를 만진다. 20차례 이상 만지는 코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진짜 사인’은 단 1개. 타자의 집중력을 고려해 보통 4-5차례 이내에 ‘진짜 사인’이 나오지만, 첫 번째 혹은 마지막 동작이 진짜 사인일 수도 있다. 선수의 혼동을 막기 위해 ‘키 사인’과 ‘취소 사인’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5번째에 취소사인을 낸 뒤, 8번째에 키 사인을 만지고, 그 다음 3번째 만지는 것이 진짜 사인인 경우도 있다. 3루코치는 작전이 없어도 한결 같이 15번 안팎으로 신체를 만진다. 진짜 사인이 나올 때를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14일 사직에서 열린 한화-롯데전에서 롯데 이철성 3루 코치가 사인을 내고 있다. 사직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야수들도 사인교환·때로는 가짜 사인… 사인의 백태

보통 센스 있는 베테랑 유격수나 2루수가 야수들을 진두지휘하지만 1루수나 3루수, 포수가 사인 플레이어가 될 때도 있다. 피치아웃을 통해 2루주자를 견제할 때 유격수나 2루수 중 베이스커버를 하는 선수도 사인으로 결정한다. 이럴 때 유격수나 2루수는 엉덩이 뒤쪽에 손을 대고 중견수에게 사인을 전달해야한다. 중견수가 앞으로 달려나와 악송구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큰 손동작으로 야수들에게 시프트를 지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진수비는 1번, 중간수비는 2번, 정상수비는 3번과 같은 사인으로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때로는 가짜 사인으로 상대를 혼동시키기도 한다. 선동열 감독은 “과거 한 투수는 포수의 사인에 수 차례 고개를 흔들고, 수 차례 자신의 몸을 만진 뒤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투수는 직구와 커브밖에 던질 줄 몰랐다”며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보안 필수! 스프링캠프부터 사인훈련… “초보는 서툴러요”

초등학교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익히는 사인. 그 생명은 보안이다. 그러나 아군이 혼동해서는 화를 초래한다. 그래서 각 팀은 매년 스프링캠프 때 새로운 사인을 고안해 숙지한다. 사인 훈련도 스프링캠프부터 이루어지는 셈이다. 시즌 중에 선수의 트레이드가 이뤄졌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사인 체계를 모두 바꿔야한다.

초보들은 어색하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감독이 된 뒤 사인을 내는 데, 진짜 사인 때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볼카운트나 아웃카운트상 상대 배터리가 피치아웃을 시도할 상황이 아닌데 도루 사인을 받은 주자가 피치아웃에 걸려 아웃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사인내는 게 겁나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는 “잠실, 문학, 사직구장 덕아웃 구조는 감독 자리에서 사인을 낼 때 상대에게 보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벽쪽으로 최대한 붙게된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 사인 최다… 로이스터 사인 종류 적어

팀마다 코치마다 유형이 다르지만 감독들의 사인도 천차만별이다.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작전이 많지 않은 만큼 사인의 종류도 많지 않다. 반면 SK 김성근 감독은 국내 감독 중 가장 많은 사인을 만들어 사용한다. 종류만 20가지가 넘어 온몸이 사인지역이다. 번트 사인만 드래그번트, 푸시번트, 세이프티번트, 위장 스퀴즈번트 등 6가지 정도 된다고 한다. 3루주자만 들어오는 작전, 1루주자가 고의로 걸리는 작전 등 헤아릴 수가 없다. SK 코치와 선수들도 그만큼 숙지해야할 사인이 많은 셈인데 김 감독은 80년대 OB 감독 시절부터 많은 사인을 애용한 사령탑으로 꼽힌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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