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스타군단해태-톱니바퀴KIA‘맹호본색’

입력 2009-08-1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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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유니폼만 봐도 기싸움부터 어딘가 주눅드는 게 있었다.” 1990년대 최고의 투수로 명성을 날렸던 정민태 현 히어로즈 투수코치가 추억하는 프로야구 역대 최강팀 해태다.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 동안 해태는 무려 9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KIA로 주인이 바뀐 2001년 이후 타이거즈는 더 이상 강팀이 아니었다. 2001년 이후 지난 시즌까지 KIA의 최고 성적은 2002년과 2003년 3위. 2005년과 2007년에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당시 성난 광주팬들은 “해태에서 KIA로 바뀐 후 변하지 않은 것은 낡은 광주구장과 붉은 색 유니폼, 이종범 뿐이다”고 외칠 정도였다.

그러나 올 시즌 KIA는 연승행진과 함께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에 올랐다. 해태 올드 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순위 ‘1’. 하지만 KIA에게는 무려 6년 11개월 만의 단독 1위다.

2003 시즌 이후 6년 만에 강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KIA는 과연 해태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는 해태시절 우승멤버, 그리고 과거 해태와 KIA 모두와 상대해 봤던 코칭스태프, 선수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전성기의 해태와 2009년 KIA,무엇이 다르고 어디가 비교포인트일까?

○화려한 스타의 팀 해태·끈끈한 조직력의 KIA

현장을 지키고 있는 대부분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톱스타들이 즐비했던 전성기 해태는 지금 KIA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팀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시즌 KIA가 팀 방어율 1위라는 높은 마운드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해태는 1993년 선동열, 조계현, 송유석, 김정수, 이강철, 이대진 등 역대 최고 기록인 한 팀에서 10승 투수만 6명을 배출한 최강 팀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해태와 KIA를 함께 지켜본 응답자들은 ‘지금의 KIA에게는 과거 해태가 갖고 있지 못했던 분명한 장점이 있다’는 의견도 잊지 않았다.

해태시절 영광과 KIA의 시련을 직접 겪은 이종범은 “예전 해태가 훨씬 강했다”며 그 이유를 “워낙 팀에 스타들이 즐비했다. 경기에 이기는 걸 당연한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 윤기두 KIA 매니저는 “해태시절에는 스타선수들의 파워가 워낙 뛰어났다. 선발 라인업 10명 모두 톱이고 스타였다”고 기억했다.

해태시절은 선수로, 지금은 KIA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김종모 코치는 “해태는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1위를 달렸고 그 자리에 익숙했다.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강한 타자들이었고 선발 라인업도 늘 고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조계현 삼성 투수코치도 “해태는 이기자고 하면 이겼다. 연패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형철 SK 2군 감독은 “해태가 워낙 강팀이었지만 특정 선수를 계속 뛰게 했다. 지금 KIA는 선수층이 두껍다”고 지적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도 “해태가 개성과 프라이드가 강한 무서운 선수들이 응집력을 발휘하면서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였다면, 최근 KIA는 전체적인 팀 짜임새를 강조하는 ‘하나의 팀’이라고 봐야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가난한 해태·부잣집 KIA

해태는 역대 최강 팀이었지만 가난한 구단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선수단에 전해진 구단 선물이 ‘해태제과 종합선물세트’였을 정도였다. 선수들은 구단의 ‘서울보다 광주 집값이랑 물가가 훨씬 싸지 않냐?’는 ‘논리’앞에 타 구단선수보다 훨씬 낮게 책정된 연봉을 받아들여야했다. 현역시절 삼성 에이스로 해태를 상대했던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당시 해태는 헝그리 정신이 돋보였다”고 기억했다.

해태가 낳은 최고의 스타 선동열 삼성 감독은 “지금 권혁, 정현욱이 노예 소리를 듣는데, 나도(해태시절) 노예였다. 20승 못하면 연봉 깎는다고 했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나도 웃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KIA는 선수단 전체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장성호 등 프랜차이즈 스타와 해외에서 돌아온 서재응, 최희섭을 붙잡기 위해 큰 돈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아낌없는 지원이라는 당근, 신인선수들의 체계적인 육성과 관리를 통한 두꺼운 선수 층은 해태시절 찾아볼 수 없는 강점이다.



○엄격한 규율이 탄탄한 팀워크로 진화

과거 해태는 워낙 톱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질서로 선수단을 통제했다. 아마추어시절부터 스타로 인정받았던 이종범도 신인시절 홍현우와 캐치볼 도중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에게 ‘물리적’ 꾸지람을 받을 정도였다.

해태출신 한 코치는 “군대보다 몇 배 더 하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김응룡 감독이 카리스마로 완전히 통제했다. 스타군단이었지만 팀워크가 탄탄했던 이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KIA는 변화를 택했다.

최고참 이종범이 중심에 서서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고 활기찬 팀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딱딱했던 선후배 관계는 사라졌고 탄탄한 팀워크는 그대로 남았다.

이순철 MBC-ESPN 해설위원은 “일단 분위기가 달라졌다. 해태에는 리더가 있었고 희생정신, 신뢰가 강했다. 지금 KIA에 그런 타이거즈 전통이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부사 김응룡·인내의 야구 조범현

해태는 페넌트레이스 뿐 아니라 단기전에도 강했다. 삼성이라는 막강한 라이벌이 있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해태를 이길 수 없었다. 이강철 KIA 투수코치는 “포스트시즌에만 들어가면 선배들의 강한 ‘포스’가 느껴졌다. 눈빛과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아 이거구나’하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해태가 단기전에서 위력을 발휘한 건 승리를 위해 모든 걸 아낌없이 거는 김응룡 감독의 용병술도 큰 역할을 했다. 김응룡 감독은 선수들을 자극하기 위해 탁자를 때려 부수고, 승리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하나 남겨둔 선발투수를 아낌없이 교체하는 등 승리에 대한 집념을 몸소 강조했다.

반면 조범현 감독의 KIA는 데이터를 중시하고 확률 높은 야구를 한다. 특히 선수보호에 관해서는 철저하다. 시즌초반 6인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체력안배와 불펜휴식 보장을 한 게 후반기 들어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해태의 영광·KIA의 미래

이종범은 “지금 KIA는 좋은 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몇 해 리빌딩 과정을 거치며 KIA는 체질을 계선했다. 그러나 해태시절의 자긍심은 선배에서 후배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종범이 있다. 조범현 감독은 “이종범이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 큰 배움이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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