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베이스블로그]목에힘빼고야구장찾는‘회장님’들

입력 2009-08-1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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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일할 때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다저스타디움에서 야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서재응을 만나려고 클럽하우스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앞을 지나쳐가더군요. 프랭크 매코트 LA 다저스 구단주였습니다. 비바람을 모조리 맞고 야구를 본 증거가 물방울 묻은 점퍼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흠뻑 젖었어도 다저스가 이겨서 마냥 기쁜 듯 클럽하우스를 지키는 경비원과 잠깐 담소를 나누더니 밖으로 나가더군요.

‘구단주가 이럴 수 있다니…,’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저스타디움엔 구단주 지정석이 아예 따로 있더군요.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는 8월 초 LG와의 목동 3연전 때 해설자로 깜짝 출연했지요. 인터넷 중계 도중 ‘특별 게스트’로 등장해 해설도 하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팬들의 질문에 응해주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김시진 감독이 6일 SK전에서 통산 100승을 했을 때 이 대표는 야구장에 못 왔는데요. 이 때도 프런트에게 경기상황을 휴대폰 문자로 물어왔답니다. 이 대표를 두고 밖에선 말이 많지만 히어로즈 사람들이 왜“베이스볼 키드”라며 그 진정성을 신뢰하는지 수긍이 갔습니다.

그 다음날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사직구장을 첫 방문(7일 삼성전)했습니다. 어느 롯데 사람의 말처럼 “창단 이래 가장 중요한 경기”였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군부대 사단장 시찰 못잖게 준비했는데 승리도 얻었고, 관중도 2만 6000명이 넘게 왔지요.

#압권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와 스카이박스에서 관전하던 신 부회장이 돌연 ‘주홍색 비닐봉지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순간이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부랴부랴 구해왔는데 신 부회장이 여느 롯데 팬처럼 그 봉지를 머리에 쓴 것입니다. 스티븐스 대사도 동참했고요. 파도타기 응원까지 따라하는 모습은, 바깥에서 들리던 소탈함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밖에 SK 최태원 회장은 2007-2008년 한국시리즈 때 VIP석을 마다하고, 관중석에서 비까지 맞아가며 서서 야구를 봤죠.

삼성 이재용 전무의 실질적인 공식 석상 ‘데뷔’도 야구장에서 이뤄진 셈입니다. 삼성전자 상무보 시절인 2004년 플레이오프였는데요, 한국시리즈 진출 확정 직후 덕아웃까지 내려가 김응룡 감독과 악수를 나누던 사진이 대서특필됐었죠.

LG의 경우엔 ‘로열패밀리’의 야구장 방문이 아예 뉴스도 안 되죠. 구본준 구단주는 물론, 구본무 회장이 불시에 야구장을 찾아오곤 합니다. 언젠가 잠실 본부석에서 관전하던 구 구단주가 “LG 없으면 못 살아∼”를 외치는 1루 관중석을 응시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룹 수뇌부의 야구장 방문은 언론을 통해 자연스레 친화적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그 대중적 호감은 홍보비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겠지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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