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다이어리]‘광주돔구장’얼마나간절했으면…

입력 2009-10-16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광주구장에 가보셨습니까. 처음 광주를 찾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먼저 사직구장 부럽지 않은 관중의 뜨거운 열정에 깜짝 놀랐습니다. KIA가 하위권에 머물던 때지만 ‘타이거즈’는 언제나 광주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사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열악한 구장환경에 더 크게 놀랐습니다. 여성 관중은 부족한 화장실 때문에 인근 축구장까지 뛰어가야 하고, 부족한 주차장 때문에 경기 후에는 매번 ‘교통지옥’이 반복됩니다. 딱딱한 인조잔디 때문에 선수들 무릎도 시립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KIA 주장 김상훈이 “솔직히 최고의 경기 한국시리즈를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광주구장에서 치러 팬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합니다. 팬들이 편안하게 야구를 관람하고 선수들도 마음껏 뛸 수 있는 경기장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고 고백했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돔구장 건설을 호언장담했습니다.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팀과 야구를 깊이 사랑하는 관중에게 걸맞은 구장이 생긴다니, 그것도 돔구장을 짓는 답니다.

그러나 광주시민과 KIA 선수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특히 새 구장 건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분노했습니다. 한국시리즈를 하루 앞둔 15일 광주구장에는 대형 현수막 2개가 좌우에 설치됐습니다. 커다란 글씨로 ‘돔구장 건설 짱님 감사해요’, ‘돔구장 짱님 감사합니다’가 써있었습니다. 이 현수막은 광주의 한 시민단체가 시의 허가를 받아 구장에 설치했습니다. 현수막의 주인공 ‘짱님’은 박광태 시장이라고 합니다. ‘시장님 감사합니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낯이 간지러워 ‘짱님’이라고 고친 걸까요.

박 시장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 시민은 “그동안 시장이 약속을 지켰으면 이미 광주에 새 야구장이 10개도 넘게 있어야 한다. 선거만 돌아오면 야구장이다”라며 차갑게 웃었습니다.

한 선수는 “시장이 직접 예산을 구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확인할 수 없는 민자투자 소문만 흘린다”며 현수막을 설치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짱님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은 빨리 접어 곱게 보관한 뒤 새 구장 3만 관중 앞에서 떳떳이 펼쳤으면 합니다.

광주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