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정미] 중국발 한류스타 수난시대

입력 2009-12-05 16:0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우 겸 가수 장나라와 가수 이정현의 경우

가수이자 배우인 장나라는 대종상 시상식을 전후로 한국과 중국에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원인은 복잡한데 중국에서는 특히 "제작비가 없을 때면 중국에서 공연한다"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이는 장나라가 직접 말한 내용도 아니고 자막으로 처리됐을 뿐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중국 포털사이트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에 자극받은 상당수 중국 팬들은 장나라의 공격자로 돌아섰다.

지난 가을 SBS ‘강심장’에 등장한 장나라. 의도하지 않은 자막처리로 중국에서 곤욕을 치렀다.



이로 인한 중국 누리꾼들의 '안티 장나라' 열기는 아직도 식을 줄을 모른다. 그녀와 소속사는 어떤 비법으로 누리꾼들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유머가 문제가 된 장나라와 이정현

이번 중국 비하 발언으로 중국에서 장나라의 위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드라마와 노래로 반짝 얻은 인기를 발판삼아 넓은 대륙에서 쉽게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연예인들은 이제 달라진 중국을 인정해야 한다.

장나라처럼 중국에서 비난받는 한류 연예인으로는 가수 이정현을 꼽을 수 있다. 이정현은 올 6월 한국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 중국서 버스를 타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던 중 산적을 만났고, 히트곡 '와'를 불러주자 산적들이 알아서 물러났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웃겼다.

이 '중국산적' 발언은 즉각 중국 온라인으로 퍼져나가 누리꾼들의 분노를 샀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정현이 현지인들에게는 잊혀진지 오래여서 그나마 파장이 적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발언의 근저에는 '중국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다.

한국에서 한류 스타가 내뱉은 말은 중국 팬들에게 즉각 전해진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중국 팬들은 온라인상에서 '퇴출 여론'을 조성할 정도로 눈높이도 높아졌다. 전 세계 스타들이 이제는 중국 시장을 먼저 두드릴 정도로 대체 자원도 충분한 상황이다.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이들의 불성실한 자세에 많은 중국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열린 중요 행사에서 립싱크로 일관하는 가수는 가창력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흘러간 히트곡 몇 개를 가지고 중국에서 한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자세는 "한국 가수들은 새로움이 없고 늘 비슷하다"는 고정 관념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로 적지 않은 가수와 연기자들이 대륙의 문을 두드렸지만 행사 차 방문이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꾸준히 입지를 넓혀가며 여러 영역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연예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중국에 진출한 한류 스타들은 현지 연예인에 비해 별반 다른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들의 입지는 좁아져만 간다.


▶만약 그녀가 할리우드 진출 스타였다면?

미국 연예계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 스타들은 몇 년간 두문불출하며 영어 공부를 하고 몸을 만든다. 하지만 중국 진출을 위해 몇 년간 공을 들였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연예인들 치고 사전에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

'한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하고 무모한 믿음으로 중국에 뛰어들어 실패하는 이가 태반이다. 혹은 한국과 비슷한 대우를 요구하며 간간히 행사에 참여하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이에 반해 중국 시장을 노리는 할리우드 스타들은 중국어 실력을 연마하고 현지 인기 관리 전략도 치밀하게 세운다.

‘중국 산적’ 발언으로 중국에서 설화를 겪은 가수 이정현.



한국 연예인들은 중국 진출을 너무나 쉬운 일로 여긴다. 장나라나 이정현의 문제의 발언도 중국을 만만하게 본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된다. 만일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들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 현지인이 이들을 반길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 시장을 노리는 한국 연예인들은 이 같은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 시장 진출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결과임을 후일담으로 가슴 벅차게 전달하곤 한다. 중국 진출 연예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현지 반응과 완전 동떨어진 한국 언론의 해석

'제작비 없으면 중국서 공연' 발언이 나온 후인 11월 25일 상해에서 장나라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이에 대해 한국 포털 사이트들은 '맘고생 심했나보다'는 제목으로 장나라가 중국 팬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간담회의 내용보다는 정숙한 옷차림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장나라의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 얼핏 보기에 진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간담회를 지켜보는 시선은 이와는 딴판이었다.

이 소식을 다룬 한 중국 포털의 제목 "'간담''이 아니라 행사하러 온 '김에' 사죄해서 계속 돈벌이할 심산?"은 간담회를 보는 현지 여론을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 포털은 장나라에 대해 "사죄를 받아들여준다면 고맙겠지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 일색이었다"고 평가하며 "그녀는 사죄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겠지만 '안티 장나라'가 번지는 것이 소속사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중국 팬들의 감정과 언론의 평가를 한국에서는 알기나 하는 걸까. 같은 한국인으로 장나라를 위로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 분위기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시하지 말아야할 혐한(嫌韓) 감정

중국이 언제부터 한류에서 혐한으로 돌아섰는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필자는 얼마 전 한국이 중국에서 신종 플루 백신을 빌려간 것에 대해 "한국 같은 나라에서 그거 살 돈도 없나"라는 주변 중국인들의 비아냥을 듣고 몹시 놀랐다. 대놓고 한국이 싫다는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의 어려운 상황에 내심 고소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필자는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에서는 한국보다 더 많은 언론과 누리꾼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한국 연예인들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튀어나오는 중국 비하 발언은 그야말로 불난데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배우 장나라는 중국 시청자들과 장기간 스킨쉽을 유지해 온 흔치않은 배우다. 영화 ‘하늘과 바다’의 한 장면.



하루아침에 백조에서 미온 오리 새끼가 돼버린 장나라에 대해 중국의 한 누리꾼이 팬사이트에 올린 글이 생각난다. 장나라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장나라씨는 예쁘고 착하고 또 (중국에서) 기부도 많이 했잖아요. 너무들 하신 것 같아요."

이처럼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연예인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 연예인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이 장나라의 좋은 모습만 봐준다면 다행이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모멸감을 느끼면 쉽게 돌아설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은 쉽다', '중국에서는 통한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개인사업이든 연예활동이든 은근슬쩍 시류를 타고 묻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할리우드보다 더 큰 시장이 될 수 있는 대륙시장을 겨냥해 '준비된'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

칼럼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