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가을이야기] “국민유격수?…난, 2루수 루키” 34세 박진만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0-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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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박진만.

‘가는 세월은 막지 못한다’고, 삼성 박진만(34·사진)이 말합니다. 대한민국 유격수의 대명사였던 그가 “나는 이제 루키이자 새싹”이라며 웃습니다.

신인이 가장 차지하기 힘든 포지션이 유격수와 포수라고 합니다. 경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만큼 경험이 중요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는 신인이던 1996년부터 줄곧 주전 유격수였습니다. 그만큼 월등했으니까요. 인천고 1학년 때, “3학년에 유격수가 없으니 네가 해봐라”는 권유와 함께 시작된 유격수 인생입니다. 그 후 19년이 흐른 지금, 박진만이 그 영광의 자리를 떠나는 겁니다. “전광판을 보는데, 이름 앞에 ‘4’자가 붙어있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이상하던지…. 마치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기분이네요.”

2군행 통보를 받았던 6월부터, 예감이 안 좋았습니다. “벤치에서는 몸이 둔해졌다고 판단했나봐요. 처음에야 기분이 좋지 않았죠. 부상이 아닌 이유로 2군에 간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깨·허리·무릎·종아리…. 매년 풀타임을 소화하고 국제 대회까지 빠짐없이 나서면서,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졌던 그입니다. ‘재정비부터 하자, 다시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자, 내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다 한 달 전, “3루 수비 훈련을 하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겁니다. “가족과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마음을 다스리자고, 현실에 순응하자고. 몇 년을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포지션을 가더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의미있는 노력을 해보자고요.”

엔트리가 확대된 9월, 3개월 만에 1군에 올라온 그는 마침내 3루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의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포스트시즌은 사실 생각도 못 했어요. 경기 감각이 너무 없었고, 3루수 연습을 한 달 했으니까. 그런데 플레이오프 합숙 훈련에 합류하자마자 2루수 훈련을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주어진 시간은 딱 일주일. 게다가 처음 2루수로 나선 경기는 정규 시즌도 아닌 플레이오프 1차전 9회말입니다. “편해 보인다고요? 제가 얼마나 긴장하는데요. 정신도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한 고백이 이어집니다. “유격수 쪽 타구가 나오면 나는 1루 백업을 가야 하는데, 자꾸 몸이 반대쪽으로 향해요. 멈칫 하다 반대로 뛰어가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죠.”

한 때는 박진만의 부상 하나에 국가대표팀이 들썩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그는 이제 “더 많이 경기에 나서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며 편하게 웃습니다. 그동안 그라운드에서 숱한 환희와 기쁨을 안겼던 ‘국민 유격수’. 이제는 그가 국민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받을 차례입니다.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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