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싱Q|쇼핑 호스트의 A to Z] 정윤정 “숨가쁜 콜 전쟁…60분만에 5억 벌었어요”

입력 2010-10-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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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시청자들의 소비심리를 적절하게 자극해 연매출 100억원을 올려 ‘홈쇼핑의 스타’로 인정받는 GS샵 정윤정 쇼핑 호스트의 생방송 모습.

‘매진의 마법사’ 쇼핑 호스트의 세계…GS샵 간판 쇼핑 호스트 정윤정에게 듣는다

째깍 째깍 째깍…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특별구성은 오늘이 마지막…
주문전화 꽉 차 있습니다
자동 주문전화 이용하세요

매진 임박…

완판 메시지 뜨면 가장 흐뭇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으로 다시 구매하시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홈쇼핑 채널을 보다 이런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 적이 한 번쯤 있으리라. ‘올 해 마지막 특별 구성’이라는 말에, 또는 ‘매진이 임박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고 주문을 하게 만드는 마법의 말솜씨를 가진 사람들. 바로 쇼핑 호스트다.

현재 국내 홈쇼핑 채널에는 200여 명의 쇼핑 호스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1년에 혼자서 100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홈쇼핑의 스타’들이 있다. 홈쇼핑 채널 GS샵의 간판 쇼핑 호스트 정윤정(34)도 그 중 한 명이다.

정윤정은 올해로 쇼핑 호스트로 나선지 9년째다. 그동안 쌍빠 수면팩 론칭 140억 판매, 원더브라 70억 판매와 최다 매진 기록 등을 세웠다. 이런 뛰어나 실적 때문에 지난 해는 GS샵에서 ‘Value no.1(밸류 넘버원)’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성적을 세운 정윤정을 따라 쇼핑 호스트들의 세계에 기자도 입문했다. 고객들의 콜 수(주문) 하나 하나에 울고 웃는 숨 막힐 듯한 60분 생방송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금요일·주말은 대박…닫힌 지갑이 열려요
눈치 100단 주부들…화장품 시연땐 민낯으로
금기어? ‘우리 제품이 최고’…과장광고는 안돼!
방송중 짧은 광고 나오면 홈쇼핑 황금시간대
대본이요? 하하…순발력·재치 없으면 못해요



● 방송 1시간 전-요일·날씨·기온이 관건

정윤정 쇼핑 호스트가 아침 10시10분부터 한 시간 동안 판매할 상품은 30, 40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 39만8000원짜리 비타민 화장품 세트.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주부들이 조금 한가해 질 시간에 편성된 고가의 화장품이다. 판매가 잘 될까 싶어 걱정스레 물었더니 정 쇼핑 호스트는 “오늘은 금요일에 날씨도 좋고, 기온도 괜찮네요”라며 조금은 엉뚱한 대답을 한다.

요일, 날씨, 기온?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정 쇼핑 호스트는 “상품을 판매하는 건 심리싸움이죠. 요일, 날씨에 따라서 구매 욕구가 달라져요. 월요일은 돈 쓰기 힘든 날이고, 금요일이과 주말은 지갑이 잘 열리는 날이죠. 그걸 파악해서 고객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얘기를 꺼내는 게 쇼핑 호스트가 할 일이에요”라고 말하며 분장실로 갔다.

분장실로 들어간 지 불과 몇 분 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썹과 입술 화장만 했는데 준비가 끝났다는 것. “다 마친거예요?”라고 물으니 “오늘 화장품 팔잖아요. 시연해야 하니까 맨 얼굴로 나가야 해요. 그래야 아줌마들의 공감을 얻죠”라고 설명했다.


● 방송 20분 전-“바쁘다 바빠”리허설도 실전처럼

방송 20분전, 담당 PD와 쇼핑 호스트, MD(머천다이저, 상품 기획자), 촬영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판매할 상품에 대한 정보를 마지막으로 점검한뒤 PD의 지시가 떨어진다. “윤정씨, 오늘은 ‘오늘 하루만’이랑 ‘방송 중에만’은 절대 말하면 안돼요.”

홈 쇼핑 방송은 심의가 엄격하고 경쟁사가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하기로 유명하다. 따라서 방송에서 쓰면 안 되는 말들이 있다. 가령 ‘우리 제품이 최고’라는 식의 단어는 절대 쓸 수 없다. 객관적으로 검증이 불가한 단어를 쓰면 심의당국의 제제를 받는다.

회의가 끝나자 스튜디오가 더 분주해진다. 촬영 스태프는 화면을 점검하고, 진행 스태프는 상품 진열에 바쁘다. 성우도 생방송 준비를 위해 부스에 앉는다. 자료 화면을 제외하면 100% 생방송이다. 정 쇼핑 호스트도 진행석에서 거울을 보며 화장품을 시연할 각도를 확인하고, 보조 쇼핑 호스트, 게스트들과 말을 맞춘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대본이 보이지 않았다. “대본 어디다 놓고 오신거 아니에요?”라고 물으니 그가 깔깔 웃었다. “홈쇼핑 방송은 대본이 없어요. 상품 정보랑 PD의 스크립트, 고객 상품 평만 보고 하는 거예요. 순발력과 재치가 정말 필요한 직업이라니까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방송 1분전. 다시 모든 스태프의 손이 바빠졌다.


● On Air-스튜디오는 전쟁터

“안녕하세요, 쇼핑 호스트 정윤정입니다. 이제 두 달 만 있으면 나이도, 피부도 한 살이 더 먹게 되죠.....”

음, 첫 마디부터 주부들의 가슴에 꽂힌다. 노화를 두려워하는 주부들의 마음을 살짝 꼬집은 정 쇼핑 호스트의 마법이 시작됐다.

스튜디오에 놓인 모니터 스크린에는 방송하는 동안 자동주문, 상담, 대기 고객들의 콜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쇼핑 호스트가 바라보는 프롬프터에는 PD의 요구 사항이 수시로 올라온다. “SB(Station Break, 방송 중의 짧은 광고) 없는데 콜 꾸준하네요 ^^”

정 쇼핑 호스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상품의 특징이 소개되고 직접 시연도 보인다. 자동 주문 콜 수가 100이 넘어가고 “주문 전화 꽉 차 있습니다”라는 PD의 메시지에 정 쇼핑 호스트의 목소리도 덩달아 고조된다.

“물건이 400개도 안 남았습니다. 선택할 시간 드릴게요. 물량이 없어요”라는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콜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 마감 10분 전-매진 임박! 오늘 최고 콜 아싸!

방송 마감 10분 전이 되자 프롬프터에서 ‘매진 임박’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남은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매진이 예상되니 화면 자막을 준비하겠다는 조정 부스의 메시지였다.

“추가 주문이 힘들 것 같으니까....”라는 정 쇼핑 호스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 한번 콜 수가 밀려든다. ‘오늘 최고 콜 아싸!’라고 흥분한 PD와 MD의 메시지가 다시 프롬프터 화면에 떴다.

마침내 마감. 정 쇼핑 호스트의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60분의 다이나믹했던 생방송이 끝이났다. 방송이 끝나자 정 쇼핑 호스트가 환한 얼굴로 “사실 아까는 말 못했지만 아침 방송이라 좀 걱정했거든요. 아침엔 아줌마들이 지갑을 잘 안열어요. 자, 이제 얼마 팔았나 보러 갈까요?”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해당 상품의 판매 실적이 확인된다. 이 날 정 쇼핑 호스트는 준비된 1300세트를 모두 판매해 5억200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60분 만에 5억 매출이라. 그녀는 진짜 ‘마술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사진제공|GS SHOP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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