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화마가 삼킨 72년 ‘10대 가수 청백전’ 53명 사망·문주란은 복합골절 입원

입력 2010-12-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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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2월2일 ‘10대가수 청백전’이 열리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민회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53명이 사망하고 가수 문주란과 김상희가 부상을 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스포츠동아DB

“2층 객석이 무너져 철근만이 앙상하게 걸려 있고 복도와 출구에는 서로 뛰어나가려다 놓친 신발과 핸드백, 오바 등 주로 여자들의 물건들이 수북히 쌓였다. 비상구와 계단 복도 등에는 연예인과 악단의 가방에서 떨어진 악보도 흩어져 있었으며 화환과 꽃다발이 복도에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9시40분경 불길이 치솟는 8층 유리창 안에서 한 명이 나타나 ‘살려달라’고 필사의 구원을 요청, 소방사다리차가 접근했으나 불길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어 구조하지 못하자 10시경 유리창에 어른거리던 이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1972년 12월3일자 동아일보 호외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1972년 오늘, 밤 8시27분. 서울 도심 한복판, 종로구 세종로 81번지 서울시민회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서울 충무로 대연각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모두 165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탄절의 비극이 채 잊혀지지 않은 1년 뒤였다.

토요일이었던 이날, 국내 최대 공연장이었던 이 곳에서는 MBC ‘10대 가수 청백전’이 열렸다. 화마는 무대에 막이 내려진 7분 뒤 덮쳐왔다. 무대 뒤 조명장치의 과열 및 합선으로 인한 불이었다. 4000여명의 관객이 막 공연장에서 빠져나오던 순간이었다. 1500명 가량의 관객이 여전히 내부에 있었고 불은 순식간에 무서운 속도로 번져갔다.

소강당을 빼고 9900여m²(3000여평)을 모두 삼켜버린 화마는 1000여명의 소방관과 경찰관, 군 병력이 동원된 작업 끝에 2시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남용 서울시민회관 관장을 비롯한 53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불을 피해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이 계단에 걸려 잇따라 넘어지고 쓰러지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또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부상자 가운데 당시 인기 가수 문주란과 김상희가 있었다. 이들은 이날 생중계된 무대에서 베트남 파병 부대 위문공연을 떠난 나훈아를 빼고 김상진, 남진, 이상렬, 이용복, 정훈희, 조미미, 하춘화 등 ‘10대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펼쳤다. 신인상 수상자 김세환과 정미조, 특별상을 받은 김추자,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도 참여했다. 영하 2도의 추운 날씨를 녹여내는 화려한 무대 공연이 끝난 직후 이들이 떠나려던 찰나 불길이 달려들었다. 김상희와 문주란, 하춘화는 대기실에서 뛰어나왔지만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문주란은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리다 제2요추 복합골절의 중상을 당했다. 문주란의 손을 잡고 빠져나오려던 김상희는 다행히 왼손과 왼발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하춘화 만이 지옥 같은 현장에서 무사했다. 이후 문주란은 상당 기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대형 참사가 떠안기고 간 정신적 고통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문주란과 김상희는 참사의 비극 속에서 살아남아 대중과 오래도록 호흡하는 가수로서 감성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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