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집중분석] ‘소피마르소’처럼 늙는다는 것…‘디어 미’

입력 2011-04-25 17: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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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 영화 '디어 미'의 매력 포인트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희노애락, 그리고 꿈

영화 \'디어 미\'. 고향에서 찾아온 낯선 변호사의 방문을 받는 \'마가렛\'

◆ [영화정보]
- 개봉 : 2011년 4월28일
- 장르 : 로맨스(프랑스, 벨기에)
- 감독 : 얀 사뮤엘
- 출연 : 사뮤엘소피 마르소, 마튼 초카스.

소피 마르소가 연기한 주인공 '마가렛'은 대략 마흔 정도의 나이, 출중한 외모에, 잘 나가는 직장, 그리고 잘 생긴 남자친구까지 갖춘 여성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마가렛의 고향 마을에서 수더분한 변호사가 찾아와 편지꾸러미를 전달하더니, 별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7살의 마가렛이 40살의 그녀에게 써 놓았던 편지를 보낸 것이다. 과연 그 편지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디어 미. (Dear Me)"

누구나 어렸을 때 한번쯤은 나에게 편지를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0년 혹은 20년 후,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 때 바라본 나의 모습은 의사이거나 선생님이거나 대통령이거나 과학자이거나 또는 외교관이었다. 정확히 이 직업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던 '훌륭한 사람'의 범주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것은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졌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영화 '디어 미' 속 주인공 마그릿은 좀 다르다. 일곱 살 난 이 소녀는 미래의 자신에게 이와는 정반대의 편지를 쓴다. 어른이 되더라도 내 자신을 잊지 말라고. '디어 미! 이 편지를 읽을 때면 너도 근사한 생일을 맞았겠지? 어른이 되어서 잊지 말라고 내가 똑똑할 때 이 편지를 써 두는 거야. 넌 커서 무엇이 되었니?'

일곱 살 마그릿은 제안한다. 소중한 물건을 모아 보물상자를 숨겨놓을 것, 물 웅덩이를 뛰어 넘고 못을 똑바로 박는 것을 연습할 것, 종이 비행기를 멀리 날리고 모나리자 그림도 다시 그릴 것, 초콜릿으로 저녁밥을 짓고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타 볼 것…

40대의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마가렛은 자신이 7살 때 보낸 편지에 큰 충격을 받는다.



■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 해본 '자아찾기' 영화

도대체 이런 것으로 무엇을 기억하라는 걸까.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1분 1초를 아껴 살아가고 있는 어른 '마가렛'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곱 살 때의 자신이 어른에게 훈수를 두니 우스울 뿐이다.

그런데 슬금슬금 호기심이 든다. 편지가 올 때마다 하나하나 따라 해 본다. 그리고 '말도 안돼!'라고 중얼거리던 그는 어느 새 '마그릿'의 다음 편지를 기다리게 된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의 '자아 찾기'에 대한 영화다.

불행했던 과거를 완벽히 잊고 부와 성공만을 위해 살아온 한 여자가 잊고 있던 자신을 찾는 과정이 한 편의 동화처럼 그려져 있다. 성인 여성의 자아 찾기는 꽤 오랫동안 영화 속 화두로 다루어져 왔지만, 그 답을 과거의 자신이 알려준다는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이다.

그렇다면 '마그릿'이었던 이름을 '마가렛'으로 바꾸면서까지 그가 잊고자 했던 과거는 무엇이었을까.

알록달록 환상의 세계에 살던 일곱 살의 어느 날, 마그릿의 아버지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나면서 집도, 차도, 가구도 함께 사라졌다. 엄마는 수돗물이 나오는 집은 부자라고 했지만 수돗물도 금세 끊겨 버렸다. 마그릿은 클라리넷을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했지만 이것 역시 먹을 것을 사기 위해 팔아야 했다. 일곱 살 소녀의 핑크 빛 세계는 단숨에 현실에 짓밟히고 말았다.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단짝 첫사랑과도 이별한 후, 마그릿은 엄마와 동생을 두고 기숙학교로 향한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면서. 일곱 살 마그릿의 편지는, 먼 훗날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변해있을 것을 예감한 바로 이 시점 시작되었다.

어른 마가렛은 현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모습이다. 멋진 남자친구, 인정받는 커리어, 그림 같은 집과 폼 나는 직장… 모두들 가지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지만 결코 쉽게 거머쥘 수 없는 것들을 그녀는 모두 이루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성공'을 한 셈이다.

영화 '디어 미'는 중년이 된 소피 마르소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희로애락, 그리고 꿈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는데 왜 굳이 어린 시절을 돌아봐야 하는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때 꿈을 찾아 일탈한다는 것은 그저 배부른 사람들의 여유에서 오는 사치 아닐까. 꿈은 무슨 꿈.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 답은 마가렛의 책상 서랍 속에 있다. 그 곳에는 마리아 칼라스, 마더 테레사, 코코 샤넬,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여자들의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

마가렛은 상급자와 기 싸움을 하거나 사업 파트너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때, 또는 업무 상 저녁을 먹을 때 등 중요한 순간이 오면 늘 이 여성들 중 한 명을 고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따라 한다.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그때그때 다른 누군가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좋아했던 일, 하고 싶었던 일은 어느 새 세상과의 타협 속에 잊혀지고, 하루하루 천편일률적인 성공의 고지를 향해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어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꼭 알아야 하는 비결'이나 '상대를 사로잡는 백한 가지 화술' 같은 성공 제일주의적 베스트셀러 속에 묻혀 버리고, 우리 모두의 지상과제는 어떻게 하면 '100만 원으로 10억 만들기'를 할 수 있을까가 아니던가?

어린 마그릿은 이런 냉정한 현실의 한 가운데서 자신을 잃어버렸을 먼 훗날의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라고 편지를 쓴다. 겉으로만 포장된 행복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심 어린 격려를 마지막 편지에 실어 보낸다.

"마그릿, 너를 사랑해…"


■ 40대의 소피마르소를 보는 재미도 쏠쏠

물론 단순하고 기초적인 메시지다. 정서상 좀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단 한번이라도 진심을 다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해 본적이 있는가 반문해 보자. 어쩌면 마가렛처럼 인생의 나침반을 돌리게 될 깊은 울림이 전해질 지도 모른다.

'디어 미'는 이러한 주제를 매우 쉽고 간결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는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밀도 높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오락물에 가깝다.

애니메이션과 CG가 동원된 일곱 살 마그릿의 세계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가득하고 어른 마가렛의 세계 역시 아름다운 파리를 과시하듯 화려하게만 펼쳐진다. 전작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로 톡톡 튀는 미적 감각을 보여 준 적 있는 얀 사뮤엘 감독의 미장센은 '디어 미'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반면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 주는 지루함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 천연색의 아기자기한 화면이 가끔씩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과장된 장면이 넘친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지나친 억지설정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할 정도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하루하루 무기력해지고 있는 청춘들이라면, 무미건조한 일상에 지치고 직장인들이라면,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것인지 회의가 든다면, 한 번쯤 이 영화를 보고 어릴 때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봐도 좋을 것이다.

한 때 모든 남학생들의 책상 위를 점령했을 뿐 아니라 여학생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던 소피 마르소.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물론 빼 놓을 수 없는 재미다.

정주현 | 영화감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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