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조사단’ 동행해보니…
이경호 씨(가명)가 지내는 서울 강북구 수유3동의 주차장 내 창고.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이곳에서 혼자 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는 낮에는 술에 취해 자고 밤에 재활용 폐지를 모은다. 가끔 공사판에서 일을 돕기도 해 월 10만∼20만 원을 번다. 이러니 월세 10만 원은 낼 때도, 거를 때도 있다. 인근 교회에서 쌀이나 반찬을 지원받아 근근이 생활한다. 한때는 사업이 번창했다. 하지만 층계에서 구르는 사고를 당한 뒤 서서히 모든 것을 잃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의사소통이 어려울 만큼 언어장애가 왔다.
10여 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산다. 주민등록은 오래전에 말소된 상태. 이 씨는 정부가 지난달 23일부터 ‘복지사각지대 조사단’을 꾸려 극빈층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이웃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정부 지원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사람 만나기도 창피하고 가족을 볼 면목이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가족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씨는 “병간호에 지친 아내가 떠났다. 짐만 되느니 차라리 지금이 홀가분하다”고 말을 이었다.
조사단은 이 씨의 주민등록을 살리고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도록 안내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쌀과 반찬을, 강북구는 주민들이 모은 성금 30만 원을 전달했다.
복지 사각지대 조사는 △창고 움막 공원 지하철 거주자 △찜질방 고시원 여관 당구장 PC방 거주자 △학대 아동 노인 장애인 및 정신질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조사는 시군구별로 공무원과 민간단체 사회복지사가 참여한 가운데 15일까지 계속된다. 강북구 조사단이 2일 이 씨의 집을 비롯해 강북종합시장 미루나무공원 은모루공원을 점검할 때 동행해 봤다.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가정이 해체된 경우다. 원경선 수유3동 주민센터 직원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열흘간의 조사로 정부와 민간의 복지 혜택에서 소외됐던 1721명을 찾아냈다. 이 중 230명(13.4%)에게는 긴급 생계비, 기초생활보장급여 안내 등의 지원을 시작했다. 71명(4.1%)은 민간단체 차원의 지원을 받도록 연결해 줬다.
노숙인을 위한 시설 ‘겨자씨들의 둥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김에스더 씨(여)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나 도박 중독자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길거리 생활을 한다. 가족이 떠나고 돌아갈 집이 없으면 자활의지가 점점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