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총기 사건]金상병 “기수열외 참을 수 없었다” 자필 진술

입력 2011-07-0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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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인천 강화군 해병 2사단 장병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사건은 후임병들에게서 ‘기수열외’라는 집단따돌림을 당한 김모 상병(19)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 범죄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상병은 5일 군 조사에서 “너무 괴롭고 죽고 싶다. 구타와 왕따, 기수열외가 없어져야 한다”고 자필로 진술했다고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전했다. 김 상병은 범행 직후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하다 얼굴과 성대에 중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김 상병은 ‘왕따 시킨 게 누구냐’는 질문에 “○○○ 주도로 (후임병들이) 선임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기수열외는 해병대 병사 문화로 후임병이 선임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A 병사가 부대 적응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경우 A의 선임병들이 다른 후임병들에게 A를 선배로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김 상병은 나이가 다른 후임병들보다 적어 기수열외 대상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김 상병은 지난해 7월 해병대에 입대한 뒤 훈련소 인성검사에서 정서불안과 성격장애 등의 문제가 발견됐으며, 같은 해 9월 현 부대로 배치된 뒤에도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사건 2주 전에도 소대장(중위)과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영재 해군 수사대장(대령)은 “과거 (정신적) 병력은 없었지만 평소 언행과 근무 자세도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부대에서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의 관물함에선 3쪽 분량의 메모지와 유서 형식의 일기가 발견됐다. 김 상병은 메모에서 ‘내가 싫다. 문제아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등 자학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김 상병은 또 유서 형식의 일기에서 ‘X 같은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고 썼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김 상병은 올해 4월 서울 신촌 인근에서 고교생 몇 명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들을 타일러 경찰에 인계했고, 경찰이 소속 부대에 김 상병을 “훌륭한 해병”이라고 칭찬했던 사실이 있어 의협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상병은 범행 당일 소초 상황실에 들어가 간이탄약고에서 실탄 75발과 수류탄 1발이 든 탄통을 훔친 뒤 인근 복도의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까지 절취했다. 당시 상황실엔 아무도 없었고 간이탄약고도 열려 있었다. 군 수사 관계자는 “규정상 총기보관함의 자물쇠는 2명이 분리 보관해야 하는데, 1명이 관리하는 등 총체적 부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 상병이 훔친 소총과 실탄으로 범행을 하기까지 약 1시간 40분 동안 아무도 총기 탄약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4일 오전 10시경 김 상병은 소초 상황실에서 실탄과 K-2 소총을 훔친 뒤 본격적으로 범행을 준비했다. 오전 10시 반 김 상병은 술에 취해 얼굴이 상기된 채 비틀거리며 동료인 정모 이병에게 “○○○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이병이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지만 김 상병은 오전 11시 40분 소초 상황실에서 이승렬 상병을,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이승훈 하사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김 상병은 군 조사에서 “이 상병을 보자 순간적으로 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이승렬이다.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상병은 김 상병의 대학 선배다.

이어 김 상병은 생활관에 들어가 잠자던 권승혁 일병(사망)과 박치현 상병(사망)을 쏜 뒤 권혁 이병에게 총을 조준했지만 권 이병은 총부리를 잡고 저항하며 김 상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쳐냈다.

군 수사 관계자는 “김 상병은 K-2 소총을 단발로 조정해 동료들에게 2, 3발씩 쐈으며 사망자 검시 결과 난사가 아닌 조준사격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범행 뒤 김 상병은 부대 내 체력단련장 옆 창고로 도주했고, 잠시 뒤 ‘꽝’ 하는 수류탄 폭음이 울렸다. 소초장 등 부대 관계자들은 창고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신음하는 김 상병을 붙잡았다. 창고에선 빈 소주병 2개가 뒹굴고 있었다.

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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