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역 노숙인들, 다 어디로…?

입력 2011-07-21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코레일 “음주 소란 많아 내달부터 강제로 내보낼 것”
노숙인들 “폭염에 쉼터 부족… 갈곳 마련해달라”

20일 오후 서울역 입구에 모여 있는 노숙인들과 현장 상담을 하고 있는 다시서기지원센터 상담사 노경준 씨(가운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최근 서울역 안에 노숙인이 머무르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오르내린 20일 오후 서울역. 평소 같으면 더위를 피해 서울역 대합실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있을 노숙인들이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2층 대합실은 물론이고 3층 대합실에서도 노숙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주로 역사 주변 그늘이나 인근 지하도로 자리를 옮겨 있었다. 노숙인 노모 씨(62)는 “지난주부터 대합실에 있는 노숙인들을 밖으로 내몰았다”며 “다음 달부터는 밖에 있는 노숙인들도 역 근처에서 쫓아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 8월부터 역사에서 노숙인 퇴출

코레일이 7월 중순부터 노숙인이 역사 내에 머물지 않도록 수시로 안내하고 있다. 이달까지는 계도기간이지만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인 ‘실력행사’를 할 예정이다. 계속되는 노숙인의 음주 소란으로 민원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코레일의 설명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서울역을 찾는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노숙인 때문에 나쁜 인상을 받고 있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름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폭염으로 탈진하거나 열사병을 앓는 노숙인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노숙인 박모 씨(43)는 “딱히 갈 곳이 없는데 무작정 뙤약볕 아래로 내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시는 역에서 생활하다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들을 최대한 인근 보호시설로 인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노숙인들이 공동체 생활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 다른 곳에서 노숙생활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노숙인들을 지원하는 다시서기지원센터의 이정규 상담팀장은 “서울역 인근에 마련된 보호시설에 총 300∼35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한 달에 20일 이상 머물기 어렵고 보호시설을 꺼리는 노숙인이 많다”고 말했다.


○ 서울역에 몰려 있는 노숙인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역과 그 주변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200명 안팎의 노숙인이 상주하고 있다. 서울시내 600여 명의 노숙인 중 3분의 1이 이곳에 몰려 있는 것이다.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빌딩과 이어지는 지하도를 비롯해 인근 지하도에 있는 노숙인까지 합하면 수는 300명으로 늘어난다. 이미 노숙이 생활화돼 쉼터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이들은 장기 노숙인으로 분류된다.

 

시가 14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0시까지 4시간 동안 서울시내 지하철역 6곳을 조사한 결과 총 101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는 43명이 있었다.

노숙인들의 범죄도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노숙인 이모 씨(26)는 5월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공원역 승강장에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승객들을 향해 소화기를 뿌려 구속됐다.

노숙인이 무관심 속에 방치돼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올해 1월에는 60대 노숙인이 서울역 주변에서 이불을 덮고 숨진 채 발견됐다. 보호시설을 찾지 않은 채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인은 항상 범죄와 질병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규칙적 생활 못 견뎌 쉼터 나와”

서울시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일자리와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통상 노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면 자활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해 한 달에 15일을 일하고 38만 원을 받는 자활근로에 참여한다고 한다. 첫 월급을 받은 후에는 쪽방촌이나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겨 직접 월세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 노숙인들은 쉼터나 보호시설의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노숙과 탈노숙을 반복한다.

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노숙인 현장상담을 5년째 계속하고 있는 노경준 씨(64)는 “다른 노숙인의 텃세를 견디지 못해 거리로 나오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며 “술에 취해 문제를 일으키거나 결핵 같은 질병에 걸려 보호시설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장기 노숙인에 대한 꾸준한 상담과 설득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팀장은 “인력이 부족해 모든 노숙인을 만나서 상담을 할 수 없다”며 “건강 문제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해 병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결국 노숙생활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