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린터, 신뢰가 최우선이다” - 한국오키시스템즈 유동준 대표 인터뷰

입력 2011-08-10 14:05:25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일본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굉장히 어려운 시장입니다. 자국과 문화가 비슷할 것 같지만 막상 접근해보면 완전히 다르죠. 또 토종 거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진입이 쉽지 않아요. 그만큼 테스트 마켓으로서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죠.”

자타가 인정하는 ‘기업용 프린터 베테랑’ 유동준 한국오키시스템즈 대표에게도 한국 시장은 어렵다. 코리아제록스에서 15년, 한국엡손에서 7년, 현재 한국오키시스템즈에서 6년, 총 28년을 일본계 프린터 기업에서 근무중인 유 대표지만 아직도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다. 모기업인 오키프린팅솔루션은 북미, 유럽 등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유명한 프린터 기업이지만, 한국오키시스템즈는 삼성전자와 HP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일본 프린터 기업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사람 나이로 치면 이제 겨우 6살, 척박한 국내 프린터 환경 속에서도 한국오키시스템즈는 연평균 30% 가량 성장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 프린터 기업 전문가, 하지만 전공은 영어?

유 대표가 프린터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1984년이다. 정확히 말하면 프린터 업계라기보다는 복사기 업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PC가 대중화되기 이전이었으니 당연히 프린터를 도입한 기업도 거의 없을 때였다. 따라서 유 대표는 처음 몇 년간 복사기 마케팅을 담당하다가 1990년대 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유 대표의 현재 전문 분야인 기업용 프린터 마케팅을 담당하게 됐다. 프린터의 도입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 했으니, 한국 프린터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유 대표는 왜 일본 기업을 택했을까. 당시는 토종 기업이 활약한 시기가 아니었다. 당시 복사기 시장은 코리아제록스, 신도리코, 롯데캐논 3대 일본계 기업이 주도하고 있었고, 유 대표가 택한 곳은 이 중 하나인 코리아제록스였다. 즉, 유 대표가 코리아제록스로 간 이유는 특별히 일본계 기업을 선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택의 폭이 일본계 기업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코리아제록스는 완전한 일본계 기업이 아니었다. 한국의 동화산업과 일본의 후지제록스가 5대5로 합작한 회사로, 1998년 후지제록스가 100% 지분인수를 하고 한국후지제록스로 사명을 변경하기 전까지는 한국계 회사나 다름이 없었다. 대표를 포함한 직원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으며, 당연하게도 한국어와 영어가 공용어였다. 유 대표는 “내 전문 분야는 영어 마케팅”이라며 “코리아제록스에서 근무하는 동안 영어를 쓰면 썼지, 일본어를 쓸 일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1996년 설립된 한국엡손은 진짜 일본계 기업이다. 당연히 일본 현지에서 온 주재원들도 많이 있었고, 회사 내에서 일본어를 많이 썼으며, 일본어를 전공한 직원들도 많았다. 이에 영어 마케팅 총책임자를 맡았던 유 대표도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오키시스템즈 역시 다를게 없었다. 처음 공용어는 영어였지만 직원들 대다수가 일본어에 능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통용됐다. 유 대표도 사내 회의에서는 일본어를 쓸 정도로 일본어 구사 능력이 많이 늘었다. 일본계 기업에 오래 근무하면서 본사 사람들을 통해 일본계 기업 특유의 생리에도 밝아졌다. 이제 유 대표는 영어 마케팅 전문가면서 동시에 일본 프린터 기업 전문가이기도 하다.

일본계 기업의 대표 자리를 한국인인 유 대표가 맡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통상적으로 외국계 기업의 대표 자리는 본사에서 온 외국인이 맡는다. 한국오키시스템즈 역시 설립 초기에는 일본인이 대표직을 맡았지만, 본사에서 보직을 순환운영하면서 유 대표가 현지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됐다. 한국 정서에 능한 한국인이면서도 본사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일본 프린터 기업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합리성, 일본은 신뢰를 중시


일반적으로 미국계 기업들은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판단과 진행이 빠르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놓고 판단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계 기업은 상대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일본계 기업도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중간 과정 역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일본계 기업들은 어떻게 보면 답답할 정도로 신중합니다. 준비 과정이 철저하죠. 체크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일일이 점검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문제가 일어나도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이미 해당 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과가 나쁘더라도 관계자들이 납득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은 아니다. 유 대표는 일본계 기업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호간 신뢰도가 높을 때는 성과가 좋지 않아도 이해하지만, 한 번 신뢰가 무너지고 나면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린다는 것. 미국계 기업은 파트너와 결별한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다시 손을 잡기도 하지만, 일본계 기업은 해당 파트너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한 번 신뢰를 잃고 나면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1,000대를 납품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숫자가 맞지 않는다던지, 제공받은 정보를 통해 전략을 짰는데 알고 보니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던지 등이 신뢰를 잃게 되는 예죠.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끼리는 어느 정도 서로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받아들입니다. 일본계 기업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나면 일본계 기업은 바로 뒤돌아서게 되는 거죠.”

반대로 말해, 일본계 기업과 두터운 신뢰만 유지한다면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한국오키시스템즈와 총판들 역시 자체 사정으로 계약을 포기한 한 곳 빼고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파트너십을 유지중이다.


약한 쪽은 무리 안해, 강한 쪽에 집중할 것


현재 한국 프린터 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반독점한, 다소 기형적인 상태다. 한국에 진출한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시장 일부분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보니 후발주자들은 끼어들 자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한국오키시스템즈는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착에 성공했고, 지난 6년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자신 없는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자신 있는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한국오키시스템즈가 자신 있는 부분은 기업용 프린터 시장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대상으로 한 인쇄출력쪽 A3 프린터에 강하다. 이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내용을 출력한 샘플로 제안 작업에 들어가는데, 인쇄속도나 제작단가에 매우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인쇄품질이 낮아서는 안되지만 지나치게 높을 필요도 없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색상을 그대로 표현할 정도의 품질이면 된다. 빠른 인쇄속도, 저렴한 비용, 적정 수준의 품질, 이것이 이들이 프린터에게 요구하는 부분이고, 한국오키시스템즈의 프린터가 이를 충족시켰다. 그 결과 현재 한국오키시스템즈의 A3컬러프린터 부문 시장점유율은 약 20%로, 3년 전보다 무려 2배 가량 성장했다.

“솔직히 한국오키시스템즈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또 소비자 시장은 기존 기업들이 꽉 잡고 있죠. 이제 와서 그들을 따라잡겠다고 치고받고 싸우기는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을 취급하는 충무로, 금융 기업쪽 비즈니스, 관공서 조달 시장처럼 우리가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부분에서 브랜드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진입장벽에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 소비자들은 한국오키시스템즈를 모르겠지만 정보통신, 금융 부문에서는 우리를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개인용 프린터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오키시스템즈는 2010년 초에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한 보급형 프린터를 일부 출시하기도 했다. 물론 시장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놓은 것이지만, 사실 뚜렷한 판매 실적을 올리기보다는 일반 사용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쪽은 기업용 시장입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는 개인용 프린터 시장에서 승산이 없어요. 자체엔진을 개발해 차별화로 승부해야 하죠. 일본 본사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자체 엔진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고요. 만일 기술적으로 차별화한 개인용 프린터가 개발된다면 그 때는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전개할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판매 채널을 늘리는 데 집중할 예정

한국오키시스템즈의 LED 프린터는 주로 총판과 딜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현재는 특히 수도권에 판매채널이 밀집되어 있는데, 지방에도 주요 거점(지사)을 만들어 채널을 늘리는 게 우선 목표다. 또한 이렇게 준비중인 채널의 개선점을 찾아서 구조를 더 공고하게 만들 계획이다. 최근 비중이 커지고 있는 관공서 조달 분야에서는 기존에 총판을 거치는 방식과 병행해 직접 제품을 전달하는 방식을 강화하는 등 판매책을 다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유 대표는 전체 시장점유율만 따지는 한국 프린터 업계의 관행에 아쉬움을 털어놨다. 일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해 더 이상 변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부분적인 지각변동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사시사철 그대로인 것 같은 상록수에도 수없이 많은 낙엽이 떨어지고 새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반독점 상태의 전체 시장점유율을 따져봤자 현재로서는 의미없는 수치만 나올 뿐입니다. 그게 참 아쉽죠. 좀 더 시장 자체를 세분화해서 들여다본다면 (한국오키시스템즈가 이룬 것과 같은) 다양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온전한 기사는 IT동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IT저널 - IT동아 바로가기(http://it.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