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 사커에세이] 우월의식·병역 해결돼야 제2 ‘삿포로 쇼크’ 막는다

입력 2011-08-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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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의 ‘삿포로 악몽’ 이후 과연 어떤 분석들이 쏟아질까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앞으로의 한일전에 대해 필자만큼 불길한 느낌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번 한일전(8월10일)에서 한국축구는 ‘예고된 참패’를 넘어 ‘확인사살’을 당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빈곤한 처지를 명품 몇 개로 어찌 어찌 가려오다가 속살이 한꺼번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은 낭패감이랄까.

이청용 지동원이 빠져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다거나, 새로운 대표팀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 정도로 치부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이러다간 앞으로의 한일전은 이번보다 더 심각한 쓰나미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한일전을 지켜보는 내내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의 중요한 구조적 문제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는, 일본축구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의식이다. 지금의 세대는 한일전에 기성세대와 같은 비장한 애국심을 기대해선 안 된다. 타고난 운동능력과 정신력은 분명 한국이 우위에 있지만 일본축구는 이런 경기외적인 요인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뛰어 넘었다.

실력차를 분명히 인정하고 이젠 따라잡는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선수들이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대일 우월의식에 젖어있는 사이 일본은 정해진 청사진에 따라 차곡차곡 준비해 오늘의 반전을 만들어냈다.

둘째는, 병역의무가 한국축구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암울한 현실이다. 카가와, 혼다, 하세베 등이 한국인이었다면 과연 지금의 그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이 축구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이 박주영을 비롯한 한국선수들은 늘 병역문제로 머리를 싸매야 했다. 병역은 대한민국 남자의 신성한 의무이기에 누구도 회피해선 안 된다. 다만 운영의 묘를 살리는 지혜가 아쉽고, 문제해결을 위한 관련 기관, 단체의 적극적인 노력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항을 겪고 있는 박주영의 이적문제는 한국축구, 아니 한국스포츠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규정에 따르면 박주영은 2013년 1월까지 무조건 귀국해 병역의무를 필해야 한다.

그의 이적료로 600만 유로(90억원)가 거론되고 있다는데, 고작 1년 6개월을 쓰려고 이 금액을 투자할 구단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필자는 박주영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무척 궁금하다. 박주영보다 한 살 많은 정조국(27.오세르) 역시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박주영의 이적은 이미 유럽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아니, 중동에서도 ‘한국선수는 병역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다. 매년 적잖은 일본선수를 받아들이는 유럽 클럽들이 반대로 한국의 유망주들에게는 차츰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반쪽짜리’로 전락한 한국선수는 몸값도 일본선수에 비해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대 후반, 축구의 절정기에 해외생활을 끝내야 하는 현재의 병역법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가장 좋기로는 은퇴 이후 병역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물론 대상은 국위선양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한 대표 선수급 해외파들에 국한해야 할 것이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와 과감한 개혁 움직임이 병행될 때 이번 ‘삿포로의 악몽’은 한국축구에 소중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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