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남풍 맞은 ‘방어 대가리 구이’ 뼈까지 쪽!쪽!

입력 2011-12-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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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 방어는 회도 맛있지만 대가리를 직화로 구워 먹는 맛이 또한 일품이다. 하루 종일 추바람과 싸우며 페달링을 한 허영만 화백이 잘 구워진 방어 대가리를 들고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 허화백 오른쪽은 제주도 투어 첫날 차량 지원을 맡아 준 제주도민 이종량씨(동국대 산악부 OB)

16. 제주도

■ 모슬포항에서 맛본 ‘방어회쌈·방어 대가리 구이’


폭우와 강풍속에 투어 감행
해안도로 끊겨 오락가락 숨바꼭질


칼바람에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터’로 피신

모슬포항서 지인이 안내한 물꾸럭 식당
두툼한 방어회쌈은 ‘황제의 만찬

직화로 구운 ‘대가리 구이’ 맛에 탄성이…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이것저것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캐리어가 장착된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다녀오던 여느 때와는 달리 자전거를 육지와 동떨어진 섬, 제주도까지 가져가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경제성, 편의성 등 앞뒤 잴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심지어 제주 현지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방법까지 고려했으나 몸에 맞지 않는 대여용 자전거로 200km 넘게 달리는 것이 찜찜해 좌고우면하다 결국 막판에 각자 집에서 자전거를 분해포장해서 제주도로 택배를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 준비부터 고달픈 제주도 일주 라이딩…날씨도 우리 편이 아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 또는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는 속담은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 신세와 정확히 일치했다. 전날까지 따스하고 청명하던 날씨가 마치 우릴 기다렸다는 듯 표변, 장마철을 방불케 하는 폭우에 이어 풍랑주의보급의 우악스런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비를 맞는 것쯤이야 집단가출 자전거전국 일주에서 흔히 겪는 일이어서 이골났지만 문제는 최고 초속 15m의 강풍이었다.

풍향은 서(西). 풍향을 고려한다면 바람을 등지고 제주시에서 김녕 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하지만 모슬포, 화순에서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지인들이 있어 당초 계획처럼 반 시계방향의 투어를 감행했다.

제주도는 비교적 해안도로가 잘 이어져있는 편이지만 군데군데 주택, 공장, 양식장 등에 의해 끊겨있는 곳도 꽤 많다. 물정 모르는 외지인으로서 제주도 도로 사정에 어두운 우리들은 무조건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가 길이 막히면 1132번 일주도로로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주행거리도 3배 가까이 늘어나는 암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고내해안도로 당근밭 옆에 주저앉아 지도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니 정답이 나왔다.

고내, 애월 한림 등 해안도로라는 표지판이 붙은 곳은 진입해도 문제없으나 바다가 보인다고 무작정 들어갔다가는 일주 라이딩 완성은 하세월이었던 것이다.

애월에 들어서자 풍향이 서에서 북서로 빠르게 변하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1년간 집단가출호를 타고 요트 항해를 하며 체득한 짧은 지식에 의하면 서풍이 북서풍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히 방향의 문제만은 아니다. 북서풍은 우리나라 겨울철의 대표적 계절풍으로 서풍에 비해 풍속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기온이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십여 분 후 훈풍이 차가운 바람으로 바뀌며 위력적인 속도로 불어대기 시작한다. 검은색 화산암 해안절벽에 하얗게 부딪혀 깨지는 파도와 먹구름 하늘 아래 바람에 몸을 맡기고 휘청대는 억새밭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모슬포에서 한라산쪽으로 10km쯤 올라가면 나타나는 무릉리의 한 감귤밭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집단가출 멤버들.


잠시 작품 활동을 멈추고 협재에서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터를 운영 중인 만화가 메가쇼킹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기념 사진을 찰칵.



● 만화가 메가쇼킹의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터’서 해풍을 피하다

페달링을 격렬하게 하다보니 몸에서 열이 펄펄 나 찬바람은 엔진(?)을 냉각시켜주는 순기능으로 작용했으나 반대방향으로 부는 바람은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요소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은 제주 북부해안을 서쪽으로 달리는 자전거를 뒤로 밀어낸다. 맞바람에 내리막길에서도 페달에서 힘을 빼면 자전거가 멈춰버리는 상황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와 씨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외로이 파도를 견뎌내고 있는 비양도를 바라보며 해안 커브를 따라 한림에 다다르자 이번엔 바람이 오른쪽 뺨을 때리며 자전거를 옆으로 밀어붙인다. 쉴 곳을 찾다 마침 생각난 곳이 협재의 쫄깃센터. ‘애욕전선 이상없다’로 유명한 만화가 메가쇼킹이 최근 협재해변 부근에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터가 바로 코앞이었던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 스타일로 질끈 묶은 머리에 울긋불긋 ‘몸빼바지’ 차림으로 청소를 하고 있던 메가쇼킹 작가는 대선배 허영만 화백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자 그야말로 쇼킹해 하면서도 반갑게 환대했다.

올레길에 자리 잡은 쫄깃센터는 방에 침대를 층층이 배치한 문자 그대로 게스트하우스다. 고기를 굽지 못한다거나 밤 11시 이후엔 무조건 취침 등 학교 기숙사 같은 엄한 내규에도 불구하고 주인장의 댄디한 캐릭터 덕분에 제주를 찾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필수 방문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쫄패(쫄깃센터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따뜻한 배웅 속에 유일한 2인실에 ‘애기공장’이라는 팻말이 붙은걸 보고 슬며시 웃으며 다시 나선 길, 바람은 더 심해져 있었다.

하지만 길이 남쪽으로 휘돌기 시작한 한경면 용당리, 고산리부터는 거의 뒷바람. 서쪽으로 진행할 때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운 속도로 신도바당을 끼고 거침없이 내달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모슬포에 닿았다.

대부분 평지이고 아스팔트가 매끈하게 깔린 가운데 지나는 자동차도 드물어 한적하고 아름다운 한림 해안도로에서 우리는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떠밀려 30분마다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보충해야했다.



● 모슬포에서 맛본 방어회쌈과 우럭매운탕, 방어대가리구이

모슬포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집단가출 멤버 중 홍석민은 등반, 스키, 카약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인스트럭터급 실력을 갖고 있으며 골프 티칭프로이기도 한데 그가 한때 지도했던 학생의 아버지 백문기씨가 “선생님이 오셨으니 한 턱 쏘겠다”고 마중을 나온 것이다.

백씨가 안내한 곳은 모슬포항 물꾸럭 식당. 물꾸럭은 제주어로 문어를 뜻하는데 준비된 메뉴는 문어가 아니라 요즘 한창 제철인 방어였다. 오전엔 비를 맞고 오후엔 바람에 시달리며 80여km를 달려온 일행들은 바람이 불지 않는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방어는 돔류에 비하면 살이 비교적 퍽퍽한 것이 사실이지만 엄청난 열량을 소비한 집단가출 멤버들의 입에는 인절미처럼 쫄깃했다. 창밖에는 바람소리가 요란하고 바다는 아우성으로 울부짖는 궂은 날씨에 따스한 식당 안에서 제주산 청경채와 배춧잎에 두툼한 방어살을 올려 역시 유명한 제주 마늘 한 쪽에 매운 고추를 얹고 집된장을 떼어 넣은 방어회쌈은 제왕의 만찬보다 더 호화로웠다.

잠시 후 보글보글 찌개 끓는 냄새가 나더니 찬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우럭 매운탕이 나왔고, 피날레는 방어대가리구이가 장식했다. 대형 방어의 머리를 직화로 살짝 태워 불맛이 나게 구운 방어대가리는 회와 탕으로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도 뼈를 쪽쪽 빨아먹을 만큼 절묘한 미각을 선사했다.

글·사진|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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