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이고 안들리는 '헬렌 켈러'용 스마트폰 나오나

입력 2012-04-12 17: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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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고, 선생님은 내 손을 펌프 밑으로 가져갔다. 차가운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동안 선생님은 다른 쪽 손에 ‘물’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썼다. 그 순간, 나는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자각했다. 언어의 비밀이 열린 것이다. 나는 물이라는 단어가 내 손을 타고 흐르는 이 차가운 물질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생생한 단어는 내 영혼을 깨우고 광명, 희망, 기쁨, 자유를 선사했다. - 헬렌 켈러, The Story of My Life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그래서 말까지 배울 수 없었던) 헬렌 켈러가 처음으로 언어를 깨닫는 순간은 실로 감동적이다. 모두 가정교사 앤 설리번의 헌신적인 가르침 덕분이었다. 이후에도 설리번은 한평생 헬렌 켈러 옆을 지켰으며, 설리번이 죽은 이후에는 폴리 톰슨이 그 역할을 넘겨받았다. 설리번과 톰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헬렌 켈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각과 청각 모두를 잃은 장애인이 의사소통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은 불가피하다.


헬렌 켈러가 눈을 감은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청각장애인들은 통역 도우미 없이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시각장애인은 음성으로 대화를 하거나 점자를 쓸 수 있고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쓰거나 글자를 볼 수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은 이름도 생소한 ‘촉수화’나 ‘손가락 점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모두 전문 통역 도우미가 필요한 언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혼자서는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음성통화나 문자 메시지 모두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이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원거리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시청각장애인 전용 모바일 기기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개발중인 이 ‘모바일 점자 장갑’에는 수십 개의 센서가 달려 있는데, 이 센서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메시지를 작성할 수 있다. 블루투스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 메시지는 물론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손등 부분에 진동 모터가 달려 있어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도 자동 번역되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장갑을 끼고 있다면 내 말을 전할 수도, 상대방 말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현재 시청각장애인의 언어는 매우 생소해서 일반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통역 도우미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청각장애인마다 각각 통역 도우미 한 명씩 전담시키기도 힘든 노릇이고, 그렇다고 통역 도우미에게 앤 설리번 같은 ‘평생 봉사’의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설령 전담 통역 도우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청각장애인의 개인 사생활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시청각장애인도 통역 도우미도 불편할 따름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시청각장애인이 혼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마 이 장갑을 처음 쓰게 될 때의 감동은 헬렌 켈러가 물을 느꼈을 때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이 장갑의 시제품은 독일 점자만 지원하고 있는데, 상용화가 되었을 때는 한국의 촉수화나 손가락 점자도 지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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