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 “통편집 되면 어쩌나 걱정했죠”

입력 2012-05-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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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리아’에서 북한 탁구 국가대표 유순복 역으로 눈길을 끌며 가능성을 예고한 한예리.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제2의 전도연? 영화 ‘코리아’의 될성부른 신예 한예리

시사회 날까지 불안감에 ‘노심초사’
10년 외길 한국무용 접고 연기전향
알고보면 단편영화제 휩쓴 실력파
“지원·두나언니 같은 배우가 될래요”


‘배우 발견’은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뜰 것 같은’ 배우가 눈에 들어오는 짜릿함, 의외의 배우가 나타나 소름 돋는 연기력을 과시할 때 안겨주는 만족감은 영화 관람의 진짜 맛이다.

1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코리아’(감독 문현성·제작 더타워픽쳐스)는 그런 점에서 영화 보는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한다. 극중 탁구 남북 단일팀을 이룬 하지원·배두나를 중심으로 10여 명의 남녀 배우가 포진한 덕분이다.

‘떼’를 이룬 이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길을 잡는 주인공은 한예리(28). 영화 속 이름은 유순복으로, 국제대회에 처음 출연한 북한의 탁구 국가대표다. 실전에선 주눅이 들지만 점차 자신감을 얻어 훌쩍 성장하는 인물이다. ‘코리아’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남북 단일팀 금메달 신화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 유순복의 성장기를 곁들어 다채로운 이야기를 완성했다.

한예리는 이름도, 얼굴도 낯선 배우. 하지만 ‘코리아’ 속 유순복을 만나 폭발력 있는 연기로 단숨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를 두고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제2의 전도연 같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상업영화에 처음 출연한 한예리의 이색 이력은 영화 속 유순복만큼 흥미로운 스토리다.


● 10년 넘도록 한국무용…영화는 ‘나’를 봐주었다

한예리는 한국무용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생후 28개월 때 처음 발레를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무용을 배워 국립 국악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충청북도 제천이 고향인 그가 한국무용을 택한 건 “기숙사 있는 서울의 무용학교로 가기 위해서”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전통예술원에 진학할 때까지 ‘재수’ 한 번 하지 않았다. 한예리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오직 무용만으로 살았다”며 “경쟁 치열한 입시의 연속이었다”고 돌이켰다.

연기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한예종 2학년 때인 2006년 영상원에서 안무를 짜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안무가로 영상원 졸업작품에 참여한 게 출발점이다. 3학년부터는 연기도 했다. 영상원 졸업작품 ‘기린과 아프리카’는 그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곧바로 독립영화 ‘푸른 강은 흘러라’ 출연 섭외를 받았다. ‘배우’ 한예리의 시작이다.

“영상원에서 찍은 두 편이 연달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교내에 ‘예리랑 영화를 찍으면 미쟝센에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어요. 하하! 매일 무용 무대에만 서다가 영화를 만들며 감독, 배우가 시나리오를 붙잡고 늘어지며 늘리고 줄이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죠. 영화하는 친구들은 ‘나’를 궁금해했고 ‘나’에 대해 물었어요. 무용과는 달랐죠.”

한예리는 출연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작품수를 늘렸고 박찬옥 감독의 ‘파주’, 드라마 ‘로드넘버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러다 만난 영화가 ‘코리아’다. 한예리에겐 첫 상업영화이자 다양한 관객과 만나는 첫 번째 무대. 하지만 설렘보다 불안함이 앞섰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탁구 연습을 시작하고 나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죠. 더 좋은 배우가 나타나서 하겠다 하면 어쩌나…. 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태 같았어요. 영화에서도 혼자 성장하는 이야기라서 편집하기 딱 좋죠. 시사회에서까지 ‘다 잘렸으면 어떡하지’ 불안에 떨었죠.”(웃음)



● “무용할 때 키 콤플렉스처럼 연기할 때도…”

한예리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꺼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많이 들었던 말은 ‘키가 작아 안 된다’는 지적.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선 노력뿐이었다. “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오기로 더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예리는 “지금도 부족한 게 많아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기도 무용처럼 즐기고 싶다”고도 했다.

한예리는 ‘코리아’에 함께 출연한 하지원·배두나의 이름을 두 번 꺼냈다. “두 언니를 보며 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다.

“언니들처럼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은 아니니까 그 위치에 오르기 전에 빨리 여러 가지를 해봐야 해요. 더 부딪쳐보고 싶어요. 그래야 언니들처럼 단단한 배우가 되겠죠? 적어도 10년쯤 필요할 것 같아요.”

한예리는 무용과 연기를 함께 할 계획이다. “춤을 출 때는 제 것들을 차곡차곡 쌓는 기분이라면 연기할 때는 제 안에 쌓인 모든 걸 부수는 느낌이에요. 둘이 만나 좋은 에너지를 낼 것 같아요.”

한예리는 ‘코리아’에 이어 차기작을 일찌감치 정했다. 보석을 알아보는 눈은 비슷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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