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이 말하는 김호곤감독 그라운드선 ‘철퇴왕’…집에선 ‘딸바보’

입력 2012-11-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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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정복한 울산 현대 김호곤 감독(가운데)은 ‘용장’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한 없이 자상한 남편이고 아버지다. 김 감독이 부인 최문실 씨(왼쪽), 딸 정연 씨와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울산|남장현 기자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못가 미안한 아빠
우승후 관중석 달려가 아내·딸에게 ‘뽀뽀’

딸 머리스타일 맘에 안들어 토라지기도
지인과 식사땐 먼저 지갑 여는 멋진 가장


울산 현대를 201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김호곤(61) 감독은 ‘용장’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따스하고 속정(情)이 깊은 사나이다. 집에선 ‘딸 바보’의 전형이다. 여느 아빠들처럼 자식 특히 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석에서 김 감독은 “내 딸이 이런저런 문자를 보내줬다”며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은근 자랑한다. 그래서 추진했다. 김 감독 가족들과의 만남을. 기대이상이었다. 가족 인터뷰가 남편이자 아빠에 대한 부인 최문실(53) 씨와 딸 정연(28) 씨의 뒷담화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11일 김 감독의 가족과 함께 했다.


○가족의 힘

알 아흘리(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아시아 클럽 정상에 오른 10일 울산문수경기장 인터뷰 룸에 들어선 김 감독은 ‘우승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을 꼽아달라는 취재진의 물음에 주저 없이 가족이라고 답했다. “가족들에게 가장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랬다. 우승 세리머니가 한창일 때 김 감독은 경기장 본부석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스카이박스의 두 여인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 한결같은 응원을 보낸 부인과 딸이다.

“(가족은) 내 삶, 존재의 목적”이라던 가장의 말에 부인은 “뭉클했다. 비난이나 슬픔들이 우승 세리머니의 종이 꽃가루와 함께 사라졌다. 그간의 아픔을 한 번에 보상받는 듯 했다”고 털어놨다. 결전 전날(9일) 잠을 제대로 못잔 딸은 “큰 대회에서 (아빠와 울산이) 이기면 너무 벅찰 것 같아 밤잠을 설쳤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래도 우승에 대한 확신이 섰다. 부인의 새벽기도가 제대로 먹혔다.

“이긴다는, 우승한다는 믿음은 확실했어요. 나중에 우리 팬들이 승리를 확신할 때 부르는 ‘잘∼가세요, 잘∼가세요’란 노래가 장내에 울려 퍼진 장면은 평생 남을 듯해요.”(부인)

딸도 거들었다. 축구 지도자 아빠가 비로소 인정받았다는 흐뭇한 안도에서다. 딸은 “ 2004아테네올림픽 8강도 인정받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행정(전무)을 하실 때도 비난이 쇄도했다. 이번 대회로 아빠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호곤 감독은 우승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으로 주저 없이 가족을 꼽았다. 김 감독이 우승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아빠 스타일

모든 기준을 팀 일정에 맞추는 스포츠 인. 김 감독도 똑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땀내 물씬 풍기는 현장을 누벼야 한다. 마지막 가족 여행은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지금도 아빠는 미안하다. 그래서일까. 끊임없는 전화 통화는 김 감독의 취미다.

“아빠한테 불만 많죠. 회식 때도 아빠가 전화해요. ‘어디 있냐?’고. 덕분에 회사에서 별명이 신데렐라가 됐어요. 12시 땡 치면 집에 간다고. 내 나이가 몇인데.”(딸)

부인도 “어지간하다. 전화에, 문자에. 가족 위치 파악이 끝날 때까진 잠도 안 잔다”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들(성헌·29)도 예외 없다.

‘호인’ 이미지는 가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문자가 없으면 삐치는 아빠에게 딸은 결승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칭찬 자주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데, 아빠는 결승전 하프타임 때 한바탕 야단을 쳤다. 정신 바짝 차린 선수들은 후반에 확실하게 상대를 밟아줬다.

내친김에 부인은 하나를 추가했다. 남편의 확 바뀐 스타일이다. 부인은 요즘도 직접 남편을 코디한다. 청바지를 보고 펄쩍 뛰던 김 감독은 이제 비싼 옷을 직접 사올 정도로 자신에게 신경 쓴다. 결과도 좋았다. 젊고, 세련된 제자들과 조금씩 동화되고 있으니.


○늘 지금처럼

부인은 또 불만이 있다. 아무 말 없다가도 갑작스레 이뤄지는 약속 때문이다. “밥상 차리고, 술상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제는 용납하지 않는다.”

딸에게는 자주 토라지고, 간섭 많은 아빠다. 작년 앞머리를 자르고, 생전 처음 염색했다가 부녀지간 대화가 단절될 뻔 했다.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종일 말도 안 걸다니….”(딸)

하지만 가족에게는 최고의 아빠임에 틀림없다. 부인은 “다행히 남자다운 면이 있다. 지인들과 식사 때도 먼저 지갑을 연다. 딸도 아빠 같은 남편감을 원하더라”며 웃는다.

결국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늘 꾸준한 모습, 한결같은 열정 때문이다. 부인과 딸은 “좋아하는 축구 인생, 계속 즐기며 힘이 닿는 한 꾸준히 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그제야 남편이 한 마디 끼어들 틈이 생겼다. “내 건강 염려해주고, 걱정해줘 항상 고마워. 계속 열심히 할 테니 믿고 지켜봐.”

울산|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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