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영동 1985’ 이경영 “스크린 속 내 모습은 ‘괴물’이었다”

입력 2012-11-23 11:0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고문기술자 이두한 역을 맡은 배우 이경영.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여기저기서 고생하고 방황하던 탕자가 집으로 가기 두려워하며 고향을 향하고 있을 때,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으며 얼굴에 뽀뽀를 하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배우 이경영(52)에게 ‘영화’가 그런 존재다. 10년 간 움츠리고 있던 그를 얼싸안고 반겨준 곳이 영화였다. 그러기에 영화는 이경영에게 따뜻한 엄마의 품이다.

최근 이경영은 영화 ‘남영동 1985’, ‘26년’ 등을 통해 충무로로의 복귀를 당당하게 선언하며 누구보다 활기찬 활동을 하고 있다.

‘남영동 1985’에서 김종태(박원상 분)의 담당 고문기술자인 이두한 역을 맡은 이경영을 만났다.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가 낯설기도 할 텐데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 “‘정면 돌파’하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두려움 깨고 나왔다”

- 박원상이 설득해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혼자 인터뷰하려니 힘든 거다.(웃음) 혼자보단 둘이 하면 의지가 되니까. 혼자 하는 거 보니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 결정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불편함을 갖고 있다면 잘못된 거다. 이 무거운 영화 이야기를 편하게 풀고자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26년’팀에겐 좀 미안하다.

- 왜 미안한가.

“아무래도 영화 개봉시기가 비슷하다보니 무대인사 등 스케줄이 겹친다. 그런데 거긴 진구나 (한)혜진이, (임)슬옹이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 여기는 원상이가 너무 고생하지 않나. 혼자서 고군분투중이다.”

- 최근 토크쇼에 출연했다. 개인사를 털어놓기 힘들진 않았나.

“사실 속내를 이야기를 하는 건 싫다. 하지만 주위에서 ‘정면 돌파를 하라’고 용기를 많이 주더라. ‘네가 두려울 게 뭐냐’라며 말씀해주셨다. 배우인 나로서도 영화는 우선순위였고 영화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출연하기로 했다.”

- ‘아들’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원상이가 원흉이다. (웃음) 원상이가 인터뷰에서 ‘사춘기 아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크쇼에서 내가 박원상 이야기를 하다보니 저절로 내 아들 이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10년 동안 아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MC 백지연씨 아들도 내 또래여서 그런지 공감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라.”

배우 이경영.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 “촬영 내내 우린 집단 최면에 걸렸다”

- 영화이야기를 해보자. 이두한을 찍으며 ‘괴물’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나.

“촬영 때는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아 괴물이었구나’라는 걸 느꼈다. 잘못된 애국심이 낳은 괴물들. 직접적인 가해자는 이두한이었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가해자는 잘못된 애국심을 조장한 세력들이라고 생각한다.”

- 고문을 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모두 다 최면에 걸린 듯 했다. (박)원상이를 물고문 할 때 그가 몸에 힘을 주면 멈추는 걸로 입을 맞췄는데 원상이가 힘을 준 것도 연기로 착각해서 몸을 더 눌렀다. 고통스럽지만 제대로 해야 해서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기한 건 원상이는 점점 고문에 익숙해지는 데 정작 가해자들의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정신적인 피로가 더 커졌다.”

- 보시는 감독님도 편치 않으셨다고 들었다.

“당연하다. 처음에 정지영 감독님도 왜 아픈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연기자들이 고문 받는 모습을 보는 감독님도 고문 받는 기분이 든다고 하셨다. 하지만 감독님 말씀 중 공감하는 건 ‘평생 아파하신 김근태 의원님도 계시는데 그 고통 속에 계셨던 분들의 삶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 아픈 건 견딜 만 하지 않나’ 였다.”

-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의 ‘휘파람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영화의 ‘백미’다. 사실 이두한은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게 아니라 김종태의 트라우마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가. 어우~그 시나리오를 봤을 때 소름이 돋았다.”

- 이두한의 실제 모델인 이근안은 故 김근태 의원에게 용서를 빌었나.

“김근태 의원님께서 이근안을 면회 갔을 때, 이근안이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것 같지 않아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만큼은 애매모호하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걸 통해서 관객들이 울분을 좀 가라앉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영화는 엄마 품…현장은 소풍이었다”

- 최근 영화 말고도 드라마에도 많이 출연했다.

“특별출연 등이 많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최근에 너무 많이 나오니까 이미지 소모를 하는 게 아니냐라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난 10년 동안 못 나왔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 그래서 그런지 요즘 기분이 늘 좋은 것 같다.

“현장에 가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초등학생이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을 생각에 두근두근 거리는…. 비현실세계와 현실세계 중간인 ‘영화’가 내 세계인 것 같다. 아직까지 현실은 나에게 아픈 곳이다. 영화 속은 즐겁고 설레기에 늘 기다리는 곳이다.”

- 이경영에겐 ‘영화’란 정말 특별한 것 같다.

“엄마 품이다. 나를 길러준 곳도 영화고 50세가 되서 날 다시 받아준 곳도 영화다. 처음엔 영화가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으면 어쩔까하는 막막한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먼 길을 돌아온 나를 안아준 건 영화였다. 이젠 영화에게 미안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 그동안 이경영이란 배우를 지지한 분들도 많다.

“김수현 작가님도 늘 안타까워 하셨고 ‘푸른 안개’ 이금림 작가님도 날 위해 삼천배를 하셨다. 지금 정지영 감독님도 밖에 나오기 꺼려하는 날 불러서 관계자들을 만나게 해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 이경영의 또 다른 시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40대는 혹하지 않은 ‘불혹’이라고 하지 않나. 하지만 내겐 50대가 ‘불혹’이다. 이제 혹하지 않고 실수했던 부분들을 더 이상 틀리지 않으려고 할 거다. 나에겐 10년이란 세월이 없어진 만큼 더 열심히 해서 전진하고 싶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