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미겔 카브레라, 2연속 ‘트리플 크라운’ 정조준

입력 2013-03-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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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야구강국 베네수엘라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도 통과하지 못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2006년 제1회 대회 때는 2라운드에서 도미니카공화국과 쿠바에 밀려 4강에 오르지 못했고, 2009년 제2회 대회에선 한국과의 준결승에서 2-10으로 대패했다. 최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서거한 뒤 이번에는 반드시 WBC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지만, 라이벌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의 벽에 막혀 일찌감치 짐을 꾸리는 신세가 됐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45년 만에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홈런·타점 3관왕)’을 달성한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는 지금까지 WBC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중심타자로 이번 WBC에 나섰지만 이미 탈락이 확정된 스페인전에서 홈런 1개를 비롯해 5타수 3안타 3타점을 올렸을 뿐,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는 7타수 1안타에 그쳤다. 또 2009년 한국과의 준결승에서도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무안타에 잔루를 4개나 기록하며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비록 WBC 우승의 꿈은 무산됐지만, 조국의 부름에 3회 연속 기꺼이 응했던 카브레라는 이제 사상 첫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 달성과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도전한다.


■ 2037억원의 사나이…디트로이트 간판타자


장타력·정확성 갖춘 ML 11년차 ‘타격천재’
디트로이트서 8년간 1억8530만달러 잭팟
지난시즌 타격·홈런·타점 3관왕+AL MVP

유격수 1루 3루 외야 등 전천후 멀티맨 장점
작년 준우승·올해 WBC 예선탈락 아쉬움도



○될성부른 떡잎에서 최고 타자로 성장

현역 메이저리거 중 카브레라의 수상 경력은 가장 화려하다. 지난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것을 비롯해 홈런왕, 타점왕, 타격왕을 2차례씩 차지했다. 올스타에는 내셔널리그에서 4차례, 아메리칸리그에서 3차례 등 총 7번이나 뽑혔다. 전문가들은 장타력과 정확성을 모두 갖춘 카브레라가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월드시리즈 우승도 루키시즌인 2003년 플로리다(현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으로 이미 경험했다. 시즌 중반부터 메이저리그로 승격됐지만, 뛰어난 타격재능을 인정받아 약관의 나이에 팀의 4번타자를 맡아 말린스가 뉴욕 양키스를 4승2패로 물리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특히 4차전에서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와 생애 처음 대결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1회 공격에서 클레멘스가 던진 시속 92마일(148km)짜리 강속구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는데, 이는 월드시리즈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던 애송이를 향한 백전노장의 경고였다. 간신히 피한 뒤 한참이나 마운드를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운 카브레라는 클레멘스의 바깥쪽 공을 밀어 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아치를 그리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6개 포지션 거친 ‘유틸리티 맨’

야구에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를 일컬어 ‘유틸리티 맨’으로 표현한다. 뛰어난 방망이 실력에 가려졌지만, 카브레라는 지금까지 6개의 포지션을 거친 전천후 선수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의 첫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루키리그를 거쳐 2001년 싱글A로 승격된 그는 당시 팀 메이트 아드리안 곤살레스(LA 다저스)와 함께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게임’에 출전했다. 박찬호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뽑혔던 해로, 퓨처스게임은 월드팀과 미국팀으로 나눠 대결을 펼쳤다. 당시 월드팀 선발투수가 서재응(KIA)이었다. 서재응은 삼진 2개를 잡아내며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7번째 투수로 나선 송승준(롯데) 역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 8번 지명타자로 나선 카브레라는 2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2002년 카브레라는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이 해에도 퓨처스게임에 나선 그는 2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실력을 맘껏 뽐냈는데, 최희섭(KIA) 추신수(신시내티) 송승준이 월드팀 동료들이었다. 이때까지 카브레라는 마이너리그에서 489타수 동안 고작 9개의 홈런만 기록했을 정도로 파워가 뛰어나지는 않았다.

다음 해인 2003년 더블A에서 좌완투수 돈트렐 윌리스와 팀 메이트가 된 카브레라는 메이저리그로 승격되기 전까지 타율 0.365, 10홈런, 59타점을 기록했다. 2003년 6월 21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카브레라는 연장 11회말 끝내기 2점홈런을 터뜨리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1900년 이후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결승 홈런을 때린 것은 카브레라가 3번째였다.

말린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카브레라는 2004시즌 팀의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하는 한편 포지션을 외야수로 변경했다. 비록 9개의 에러로 내셔널리그 최다실책 공동1위의 불명예를 안았지만 생애 첫 올스타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2005년 메이저리그 최연소로 두 시즌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시즌 타율도 3할을 처음으로 넘겼다. 2006년에는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타격왕 경쟁을 펼쳤다. 조 지라디 감독의 배려로 최종전에 1번타자로 출전했지만 0.339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프레디 산체스(0.344)에게 간발의 차로 1위를 빼앗겼다.

2007년 0.320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도 홈런(34개)과 타점(119개)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카브레라는 12월 6일 돈트렐 윌리스와 함께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됐고, 8년간 1억8530만달러의 조건에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 3루수로 시즌을 출발한 카브레라는 4월 23일부터 짐 릴랜드 감독의 지시에 따라 카를로스 기옌에게 3루수 자리를 넘겨주고 1루수로 옮겼다. 그러나 리그 변경과 잦은 포지션 이동에도 그의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다. 0.292로 4년 연속 3할 타율에는 실패했지만, 37개의 대포를 쏘아 올려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등극하는 한편 생애 최다인 127타점을 쓸어 담았다.


○악동의 2013시즌은 어떨까?

뛰어난 실력을 앞세워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로 성장한 카브레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문제는 술이었다. 2009년 2월 혈중 알코올 농도 0.24로 수감된 그는 시즌을 마친 뒤 3개월 동안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아야 했다. 2010년 8월에는 한 식당에서 손님들과 싸움을 벌였고, 이듬해 2월 17일에는 음주운전으로 구속돼 물의를 일으켰다. 이처럼 그라운드 밖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악동 이미지가 구축됐지만, 카브레라의 방망이 실력은 여전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2012년 프린스 필더에게 다시 1루수를 내주고 3루수로 보직을 변경한 카브레라는 타율 0.330에 생애 최다인 44홈런과 139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타율에선 LA 에인절스의 괴물 신인 마이크 트라우트를 4리차로 제쳤고, 홈런과 타점에선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조시 해밀턴(현 LA 에인절스)의 거센 추격을 뿌리쳤다. 홈런은 불과 1개차였고, 타점은 11점 앞섰다. 1967년 보스턴 레드삭스 칼 야스트렘스키 이후 명맥이 끊겼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45년 만에 재현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카브레라는 홈런포를 터뜨렸다. 정확하게 9년 만에 기록한 월드시리즈 홈런이었지만, 소속팀 타이거스는 우세하리라는 전망과는 달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4전패로 무릎을 꿇었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지만 팀을 위해서라면 포지션 변경도 늘 마다하지 않는 카브레라. 신들린 듯한 방망이를 앞세워 WBC 실패와 지난해 월드시리즈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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