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피칭 X파일] 투수는 투지!…몸쪽을 지배해야 경기를 지배한다

입력 2013-04-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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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쪽 공을 잘 구사하기 위해선 제구력뿐만 아니라 담력도 필수다. KIA 서재응(왼쪽 사진)과 SK 채병용은 몸쪽 승부를 잘하는 대표적 투수들이다. 채병용은 과감한 몸쪽 승부로 가을잔치를 지배해왔다. 사진|스포츠코리아·스포츠동아DB

■ 피칭은 멘탈…몸쪽 승부가 관건

스포츠동아는 프로야구 2013시즌 개막을 맞아 ‘이효봉의 피칭 X파일’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효봉의 피칭 X파일’은 투수의 모든 것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투수의 기술은 물론 야구 이면에 감춰진 투수의 심리까지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다양한 투수 이야기들을 전해드릴 것입니다. 깊이 있는 명품해설로 현장 야구인과 야구팬들에게 두루 인정을 받고 있는 이효봉 해설위원의 ‘피칭 X파일’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최고 161km 강속구 뿌리는 리즈

몸쪽 공 던지면 타자들 움찔움찔

멘탈게임 피칭…두둑한 배짱 필수


강심장 채병용·서재응·임창용

맞더라도 몸쪽 공 승부 즐겨

우규민·박준표 공격적 투구 인상적

피칭은 멘탈게임이다. 투수가 공을 잘 던지기 위해서는 기량과 함께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 메이저리그의 300승 투수 톰 시버는 “투수는 재능보다 투지가 먼저다”라고 했다. 투수는 공격형 투수라야 한다. 동료들은 수비를 하고 있지만, 투수는 타자를 공격하는 싸움닭이 되어야 한다. 많은 투수들에게 가장 어려운 투구는 ‘몸쪽 승부’다. 메이저리그에 ‘가족을 생각하면 몸쪽을 던지고, 친구를 생각하면 바깥쪽을 던져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몸쪽 승부는 어렵다. 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에 맞는 것이다. 한번 자신을 맞힌 투수는 상대하기가 편치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수들 역시 타자들이 공에 맞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타자들이 두려워하는 몸쪽을 과감하게 공격하지 못한다.


○투구의 85%는 바깥쪽에 집중된다!

선발투수가 100개의 공을 던질 경우 몸쪽 공은 불과 15개 정도다. 직구와 변화구를 반반으로 볼 때, 변화구 대부분이 바깥쪽에 쏠리고 직구도 몸쪽은 많아야 15개 정도다. 제대로 된 몸쪽 공은 10개도 안 된다. 이숭용 XTM 해설위원은 “몸쪽 빠른 공이 가장 치기 어렵다. 하지만 한 타석에서 몸쪽 공 2개를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고 했다. 국내에서 몸쪽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채병용(SK)과 서재응(KIA) 정도다. 투수코치들은 가급적이면 볼카운트가 유리할 때만 몸쪽 공을 던지라고 한다. 심적 여유가 없을 때 던지면 실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레다메스 리즈. 스포츠동아DB


시속 161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리즈(LG)가 타자의 몸쪽에 직구를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공을 때리기 이전에 타자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삼성 김상수는 “리즈 공이 머리쪽으로 날아왔다. 그 타석은 치고 싶은 생각이 확 달아나더라”고 했다. 애틀랜타의 투수코치였던 마조니는 “위협구를 던져 위협만 할 수 있다면 A급 투수이고, 맞히면 B급 투수”라고 했다. 리즈가 리오스(전 두산)처럼 몸쪽 공을 현란하게 던질 수 있다면 다승왕도 가능할 것이다. 2008년 롯데 사령탑에 부임한 로이스터는 투수들에게 몸쪽 승부를 강조했다. 무조건 초구는 몸쪽에 던지라는 주문을 한 적도 있다. 당시 롯데 투수들은 당황했지만, 투수들을 공격적으로 만들기 위한 계산이었다.


○타자를 맞힐 수 있는 투수는 10%도 안 된다!

타자 몸쪽으로 깊숙한 공이 들어가면 타자는 물론 벤치와 관중 모두가 긴장한다. 투수가 ‘고의로 몸쪽에 던진 것이 아닌가?’하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프로야구에서 타자를 일부러 맞힐 수 있는 투수는 몇 명이나 될까? 투수코치들의 말을 빌리면, 그 정도 강심장을 갖춘 투수는 10%가 안 된다고 한다. 프로야구 9개 구단의 1군 투수를 100명이라고 가정할 때 각 팀에 1명꼴이다. 타자를 맞히라고 해도 맞히지 못하는 투수가 90%가 넘는 셈이다.

차명석 LG 투수코치는 루키 시절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태평양과의 원정경기, 동점 상황인 9회말 1사 2·3루 위기였다. 타자는 그해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된 김재박. 이광환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왔다. “스퀴즈 가능성이 있으니, 재박이 몸쪽으로 공을 두 개 빼라”는 것이었다. 바깥쪽은 번트할 수도 있으니 타자 얼굴쪽으로 높은 공을 두 개 연속 던지라는 주문이었다. 초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존을 약간 벗어난 평범한 볼이었다. 스퀴즈 사인이 났다면 쉽게 번트할 수 있는 공을 던졌다. 당시 포수였던 김동수가 깜짝 놀라 마운드로 뛰어왔다. “몸쪽으로 완전히 빼!” “네, 알았어요.” 2구를 한가운데로 던졌다. 끝내기 안타! 경기는 끝났고, 차명석은 곧바로 2군에 갔다. “도저히 김재박 감독의 얼굴쪽으로 공을 못 던지겠더라”고 했다.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기대주였지만, 그 이후 상당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몸쪽 공을 던져야 한다는 걸.”


○임창용, 몸쪽 승부의 달인!

시카고 컵스 임창용은 몸쪽 승부를 즐겨했다. 구위도 좋았지만 타자 몸쪽에 던지다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타자들은 임창용을 두려워했다. 언제든지 몸쪽에 공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타자들의 적극성을 무너뜨렸다.

손혁, 박재홍(이상 MBC스포츠+) 두 해설위원의 일화도 있다. 손 위원은 “현역 시절 박재홍한테 맞은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첫 대결에서 몸쪽 공을 던졌는데 공교롭게 머리 근처로 갔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박재홍이 나만 만나면 움찔움찔하더라”고 회상했다. 첫 만남에서 던진 몸쪽 공이 박재홍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셈이다.

2002년 김성근 감독은 “이상훈이 관중을 의식한다”고 했다. 이상훈은 어느 순간부터 몸쪽 공을 잘 안 던지기 시작했다. 몸에 맞는 공을 내준 뒤 터져 나오는 관중의 야유가 싫었기 때문이다.

대타자들은 실투를 놓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각 팀 4번타자들에게 투수는 많은 실투를 한다. 몸에 맞는 공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대구구장에서 이승엽에게 몸에 맞는 공을 내주면 웬만한 투수는 관중의 야유에 흔들린다. 사직구장에서 이대호에게 몸쪽 승부를 하는 것도 역시 쉽지 않다. 몸에 맞을까 두려워 소극적이다 보니, 몸쪽 공을 어정쩡하게 던지다가 장타를 맞는 경우가 많다. 올 시즌 개막전에서 SK 이재영은 LG 정성훈에게 만루홈런을 맞았다. 초구에 몸쪽 직구를 던졌지만, 가운데 높게 들어갔다. 몸쪽 승부, 참 힘든 일이다.


○우규민 박준표, 지켜볼 만하다!

개막 2연전에서 눈에 들어온 투수는 우규민(LG)과 박준표(KIA), 두 사이드암이다. 우규민은 선발투수로 등판해 승리를 챙겼고, 루키 박준표는 개막전에서 구원승을 거뒀다. LG가 우규민을 선발로 쓰는 것은 기량과 강한 정신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2005년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괌에서 LG의 족구대회가 열렸다. 공격수로 나선 우규민은 네트 앞에서 계속 공을 코트 밖으로 차 보냈다. 이때 이병규(9번)가 “우규민, 공격하지 마!”라고 하자 “네”하고 또 공을 코트 밖으로 날려 보냈다. 박준표는 선동열 감독이 개막 2연전에서 거둔 최고의 성과다. 2이닝 동안 6타자를 상대로 삼진 4개를 잡았고 한명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결과 이상으로 싸움닭 같은 그의 공격적인 투구가 인상적이었다. 박준표는 톰 시버의 말대로 “재능보다 앞선 강한 투지”가 돋보였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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