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인사이드] ‘류현진 방망이쇼’ 내일은 못본다…왜?

입력 2013-04-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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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선 아메리칸리그만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소속인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투타를 겸하고 있지만, 인터리그 원정경기에선 타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스포츠동아DB

■ 지명타자의 모든 것

LA 다저스 류현진(26)은 14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에서 3타수 3안타를 치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그의 타격 실력에 다저스 동료들도 “애리조나의 이언 케네디가 등판하는 경기에는 류현진이 4번타자로 나서는 게 좋겠다”고 농담할 정도로 감탄했다. 15일 애리조나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중계한 LA 지역 ‘프라임스포츠’는 트위터를 통해 ‘당신이 타자로서 류현진과 커쇼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고를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날 3안타를 친 류현진과 개막전에서 솔로홈런을 날린 커쇼의 방망이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질문이었다. 결과는 72%를 얻은 커쇼의 압도적 우세였다. 이처럼 내셔널리그에선 투수가 타격에서도 깜짝 쇼를 해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반면 아메리칸리그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제도를 쓰기 때문에, 인터리그 경기 외에는 투수가 타격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투고타저 현상 막아라’…AL 40년전 도입

고정보단 주전들 휴식 차원 배려가 대세

반쪽선수 평가절하 DH출신 MVP 단 1번


류현진, AL 팀 볼티모어 원정…타격 못해


○지명타자 제도는 언제 도입됐나?

지명타자 제도가 아메리칸리그에 도입된 때는 1973년이다. 지명타자의 정확한 정의는 수비는 하지 않고 투수 대신 타격을 전담하는 선수로 경기 시작 전에 반드시 지목해야 한다. 만약 지명타자를 라인업에 넣지 않았을 경우 그 경기에선 끝까지 투수가 타격을 해야 한다. 만약 경기 도중 지명타자로 나선 선수가 야수로 투입될 경우에도 투수가 타석에 서야 한다. 다른 포지션은 ‘더블 스위치’를 통해 타순을 바뀔 수 있지만, 지명타자의 타순은 변할 수 없다.

2012년 8월 4일 오클랜드 원정에 나선 토론토는 연장 12회초 부상을 당한 중견수 콜비 라스무스 자리에 1루수를 보던 얀 곰스를 이동시켰고, 야수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지명타자로 출전한 에드윈 엔카르나시온에게 1루수를 맡겼다. 지명타자 권리를 포기한 토론토는 연장 13회초 구원투수 애런 루프가 타석에 들어서야 했다. 이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된 루프는 인터리그가 아닌 아메리칸리그 경기에서 타격을 한 토론토의 첫 번째 구원투수가 됐다.

간혹 어처구니없는 착각으로 지명타자 제도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2009년 5월 17일 클리블랜드와 맞붙은 조 매든 탬파베이 감독은 벤 조브리스트와 에반 롱고리아를 모두 3루수로 잘못 기재한 스타팅 라인업을 제출했다. 당초 매든 감독의 생각은 조브리스트를 3루수, 롱고리아를 지명타자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1회초를 마친 뒤 에릭 웨지 전 클리블랜드 감독은 심판에게 스타팅 라인업 카드를 문제 삼았고, 결국 탬파베이는 이날 지명타자 없이 경기를 마쳐야 했다. 이미 조브리스트가 수비를 했기 때문에 롱고리아가 나서기로 한 3번타자 자리에 선발투수 앤디 소낸스타인이 들어섰다. 아메리칸리그 팀끼리의 대결에서 투수가 선발 타순에 포함된 것은 1976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소낸스타인은 적시 2루타로 타점을 올리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승리투수가 돼 매든 감독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지명타자 제도는 어떻게 정착됐나?

초창기 지명타자 제도는 이래저래 홀대를 받았다. 월드시리즈에서 지명타자 제도가 전혀 사용되지 않다가 1976년부터 짝수 해에만 적용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홀수 해에는 월드시리즈 내내 지명타자 없이 투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금의 규칙으로 바뀐 것은 1986년부터다. 아메리칸리그 구장에서 경기를 치를 경우에만 지명타자 제도를 쓸 수 있고, 내셔널리그 구장에서 대결할 때는 투수도 타격을 한다. 올스타전에선 1989년부터 지명타자 제도가 시행됐다. 처음에는 아메리칸리그 구장에서 경기가 열릴 경우에만 지명타자를 뽑았다가, 2010년부터 두 리그 모두 지명타자를 출전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범경기에선 간혹 내셔널리그 팀들도 지명타자 제도를 사용한다.

지명타자 제도가 생기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60년대 말 메이저리그는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을 보였다. 1968년 대니 매클레인은 무려 31승을 따냈고, 봅 깁슨의 방어율은 1.12에 불과했다. 타격왕을 차지한 칼 야스트렘스키의 타율은 0.301에 그쳤다. 메이저리그는 부랴부랴 마운드의 높이를 15인치(38.1cm)에서 10인치(25.4cm)로 낮추고, 스트라이크존도 타자의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내려 좀더 많은 점수가 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꿨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아메리칸리그는 1973년 1월 12일 구단주 투표를 통해 8대4로 지명타자 제도 도입을 승인했다.


○지명타자 제도의 명암

지명타자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긍정적인 면은 수비력이 떨어지는 노장 선수들이 타격에만 전념함으로써 선수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점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 선수로는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꼽을 수 있다. 18년간 시애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마르티네스는 통산 타율 0.312, 309홈런, 1261타점을 기록하며 5차례(1995·1997·1998·2000·2001년)나 최고의 지명타자로 뽑혔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버드 셀리그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2004년 9월 최고의 지명타자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을 ‘에드가 마르티네스 어워드’로 바꾼다고 천명했다. 보스턴의 ‘빅 파피’ 데이비드 오티스는 6번이나 이 상을 차지해 최다 수상의 영예를 보유하고 있다. 오티스 외에도 올란도 세페다(1973년), 짐 라이스(1977년), 돈 베일러(1986년)까지 보스턴 구단은 총 9번이나 이 상과 인연을 맺었다.

일각에선 지명타자를 ‘배팅 케이지 플레이어’라며 반쪽 선수로 평가 절하한다. 최우수선수(MVP)나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지명타자 출신들은 수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1979년 아메리칸리그 MVP를 차지한 돈 베일러만이 예외다. 그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40% 가량 지명타자로 출전한 베일러는 139타점, 120득점으로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에인절스가 팀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명예의 전당 멤버로는 폴 몰리터와 짐 라이스뿐인데, 두 선수는 약 25% 정도 지명타자로 경기에 출전했다. 역대 최고의 지명타자로 꼽히는 마르티네스는 지난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36.5%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지명타자를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마르티네스나 오티스처럼 시즌 내내 지명타자를 고정시키는 팀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주전 야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여러 선수를 지명타자로 골고루 기용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울러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명타자 제도는 여전히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논란거리다. 두 리그가 단일 룰로 통합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견해와 지금처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전혀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고 있는 셀리그 커미셔너의 머리는 늘 복잡하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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