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 감독 “9년 전 처음 만난 ‘설국열차’, 그래 이거야!”

입력 2013-07-25 11: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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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다음 작품은 아기자기한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9년 전, 만화가게에서 책을 훑어보다 눈에 들어온 까만색 표지의 ‘설국열차’. 영화 ‘설국열차’가 그렇게 출발했다.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봉준호 감독은 가만히 책장을 들춰본 뒤 “그래, 이거야!”하며 눈을 반짝였다.

먼저 만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빙하기가 찾아와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 유일한 삶의 거처는 쇳덩이 기차. 하지만 그 공간도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기차 칸 마다 계층과 권력이 나눠져 있다. 이 흥미로운 발상을 접한 봉 감독은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봉 감독은 소설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새로 만들었다. 원작의 큰 틀 안에 새로운 인물과 내용을 넣어 새로운 ‘설국열차’를 탄생시켰다.

제작비 450억 원. 글로벌 프로젝트로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지만 미국 영화에 비하면 저예산영화에 속한다. 영화를 구상하는데 5년이 걸렸고 영화를 제작하는데 3년 반이 필요했다. 제작기간 동안 봉 감독은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작비였는데 가장 허리를 졸라맸다”며 “시나리오 과정부터 가시밭길 같았다”고 말했다.

“인물과 인물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감춰진 비밀 등이 이야기 속에 겹겹이 쌓여있어요. 이것을 격정적이고 동적인 영화에서 어떻게 잘 배분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머리를 많이 부여잡았습니다.”

‘설국열차’ 는 작은 프랑스혁명을 보는 듯 하다. 17년 동안 가난과 궁핍함에 지친 꼬리칸의 사람들은 특권계층에게 대항하며 열차의 심장부와 마찬가지인 ‘엔진’을 향해 돌진한다. 그들은 앞칸으로 전진하기 위해 몸과 몸이 부딪히고 땀과 피를 뒤엉키며 한 칸씩 돌파하기 시작한다. 봉 감독은 어디론가 탈출하고픈 인간의 본성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은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안주하는 동시에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어요. 하지만 그 곳을 나가기 위해 혹독한 과정을 겪죠. 결국 어느 정도의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벗어나야 하는 때는 언젠가 오고 도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외로운 인간의 모습도 그려지고요. 이 영화를 찍으며 인간에 대한 측은함이 느껴졌어요.”

봉준호 감독


이번 영화에 크리스 에번스, 틸다 스윈턴, 제이미 벨 등 할리우드 배우와 더불어 송강호와 고아성이 설국열차에 탑승했다. 세계 명배우들과 함께 하며 느낀 점도 많았다. 봉 감독은 크리스 에번스의 변화를 보고 놀라워했다. ‘퍼스트 어벤져’와 ‘어벤져스’에서 보여준 쫄쫄이 의상을 입은 모습 대신 고뇌와 회한으로 가득 찬 설국열차의 ‘커티스’를 멋지게 보여준 것이다.

“크리스 에번스는 ‘설국열차’에 참여하고 싶다고 자비로 보스턴까지 오디션을 보러 왔어요. ‘어벤져스’나 ‘캡틴 아메리카’를 보며 잘생긴 배우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다른 작품도 보고 오디션에서 보니까 인상적이었어요. 게다가 촬영 초반에 혼자서 어두컴컴한 기차 세트 안에서 4시간만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조용히 혼자 있더니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차츰 그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죠.”

국내 배우 송강호와 고아성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열차의 보안설계자로 기차 칸을 유일하게 열 수 있는 인물인 ‘남궁민수’로 분했고 고아성은 17년 전 기차에서 태어난 남궁민수의 딸 ‘요나’로 분해 2006년 ‘괴물’에 이어 다시 부녀로 만나 환상적인 호흡을 만들어냈다.

‘괴물’ 이후 이들을 다시 만난 봉 감독은 또 다른 욕심을 갖고 있었다. 이 두 배우의 인생 최고의 작품이 자신의 작품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이었다.

“저나 송강호 선배 모두 고아성의 ‘여행자’(2009)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고아성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거든요. 그런데 조금 질투가 나더라고요. 감독에게는 유치할지 모르는 질투심이 있어요. 어떤 배우의 최고의 작품이 제 작품이 되길 바라는 거죠. 고아성의 최고작을 ‘여행자’로 인정해버리니 조금 열 받더라고요. ‘설국열차’가 그들의 최고작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거대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마친 봉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봉 감독은 아직은 정하지 않았다. 다음 작품도 글로벌한 작품이 될 것인지 묻자 “‘세계화’를 꼭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봉 감독은 “한국영화가 한류나 세계제패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문화는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의 관심사는 ‘영화’와 ‘사람’입니다.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만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또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를 행해 가나. 이런 물음은 계속하며 살아갈 것 같아요. 프랑스만화가 저를 ‘설국열차’로 이끌었듯 소재와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가야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앤드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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