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ML 타임슬립] 영웅과 먹튀사이…우리베 ‘롤러코스터 인생’

입력 2013-12-19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LA 다저스 후안 우리베. 동아닷컴DB

■ 다저스에 남는 류현진 절친 후안 우리베

화이트삭스·자이언츠 우승 이끈 주인공
2011년 다저스로 이적 후 부상 먹튀 전락
‘최악의 선수’ 비난 딛고 올해 6월 부활
NLDS 4차전 역전투런…다시 영웅 우뚝

후안 우리베(34)가 내년에도 LA 다저스의 핫코너를 맡는다. 15일(한국시간) 다저스와 2년 1500만달러(약 158억원)의 조건에 합의한 우리베는 내년 시즌에도 류현진과 찰떡궁합을 과시하게 된다. 우리베의 야구인생은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수 있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2개나 차지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인고의 시간도 많이 보냈다. 라이벌 구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떠나 2011년 다저스와 3년 계약을 체결한 뒤 한동안 극심한 부진을 보여 네드 콜레티 단장이 영입한 최악의 선수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아야 했다. 다소 험하게 생긴 인상과는 달리 늘 미소를 지으며 팀 케미스트리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베의 야구인생을 들여다봤다.


● 멘토 우리베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니가 고향이다. 바나나와 커피의 생산지로 유명한 이 곳에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메이저리그 출신의 사촌형 호세 우리베로부터 그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인생의 진로를 일찌감치 정했다.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사촌형으로부터 야구의 기본기를 익힌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98년부터 도미니카 서머리그에서 활약하며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 미완의 대기 2000년 싱글A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우리베는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망주 2위로 이름을 올렸다. 2001년 4월 8일, 더블A와 트리플A를 건너뛰고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아 7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 8홈런, 53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7월 25일 네이피 페레스가 트레이드되면서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이 때만해도 날렵한 몸매였던 그는 무려 11개의 3루타를 때려 한 시즌 팀 내 최다 3루타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2002시즌 초반 17연속경기안타를 때리는 등 주가를 높였지만, 5월부터 8월까지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졌다. 또 수비에선 실책을 무려 27개나 범했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그라운드를 돌다 부상을 입어 5월말까지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그 해 12월 애런 마일스와 1대1 트레이드로 로키스를 떠나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둥지를 옮겼다.


● 첫 번째 우승 화이트삭스에서 우리베는 유틸리티맨의 역할을 맡았다. 1루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한 덕분에 후보이면서도 2004년 13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3, 23홈런, 74타점을 올리는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의 기량을 높이 산 화이트삭스는 노장 호세 발렌틴과 재계약하지 않고 우리베에게 주전 유격수를 맡겼다.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2005년 146경기에 나선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인상적 활약을 보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1홈런 3타점을 기록해 팀의 14-2 승리를 이끌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치른 월드시리즈에선 뛰어난 수비 실력으로 화이트삭스가 88년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데 일조했다. 3승무패로 앞선 가운데 치러진 4차전에서 우리베는 7회초 2사 2·3루 찬스서 헛스윙 삼진을 당해 고개를 숙였다. 8회초 저메인 다이의 적시타로 1-0으로 앞서나간 화이트삭스는 9회말 우리베의 환상적 수비로 1점차 승리를 지켰다. 1사 2루서 대타 크리스 버크가 친 파울 타구를 끝까지 달려가 관중석으로 고꾸라지면서 잡아냈고, 올란도 팔메이로가 친 느린 땅볼 타구를 잡아 러닝스로로 1루에 던져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책임졌다.


● 슬럼프 2006년에도 우리베는 21홈런, 71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파워를 과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출루율이었다. 시즌 타율(0.235)보다 조금 높은 0.257에 그친 것. 2007년에는 득점권 타율이 0.198에 그쳐 공격의 맥을 끊어놓는 선수로 각인됐다. 결국 화이트삭스는 2008년 올란도 카브레라를 영입해 주전 유격수로 기용했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2009년 자이언츠로 옮겼지만 우리베에게 주어진 역할은 또 다시 유틸리티맨이었다. 그 해 7월 11일에는 8회 평범한 타구를 더듬어 조내선 산체스의 퍼펙트 경기를 무산시켜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 2번째 우승 2010년 프레디 산체스가 부상을 당해 주전 2루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5월초 에드가 렌테리아마저 부상으로 쓰러지자 유격수로 다시 포지션을 옮겼다. 9월 6일 다저스와의 라이벌전에서 우리베는 결승 2점홈런을 터뜨려 3-4로 뒤지던 경기를 5-4로 뒤집으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9월 24일 시카고 컵스전에선 만루홈런을 때리는 등 혼자 6타점을 쓸어 담아 팀의 13-0 승리에 앞장섰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에서 결승 희생타를 날렸고, 6차전에선 8회 솔로홈런을 때려 팀의 3-2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맞붙은 월드시리즈에서도 1차전 3점홈런에 이어 2차전 2타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우리베가 공수에서 맹활약한 자이언츠는 4승1패로 레인저스를 제압하고 팀 통산 6번째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다저스와 3년 계약을 했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2011년 고작 7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04, 4홈런, 28타점에 그치자 다저스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라이벌 구단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가 다저스로 이적하자마자 ‘먹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주로 대타로 기용되며 66경기에서 생애 최악인 타율 0.191에 2홈런, 17타점으로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올 시즌에도 그는 벤치워머로 출발했다. 6월에야 주전 3루수로 도약한 그는 공교롭게도 친정팀 자이언츠를 상대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7월 6일 경기에서 혼자 7타점을 쓸어 담으며 다저스의 10-2 대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우리베는 단타를 치지 못해 사이클링히트를 아쉽게 놓쳤다. 9월 1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선 첫 세 타석 모두 홈런포를 뿜어내는 등 4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생애 처음 한 경기에서 홈런을 3방이나 터뜨린 것이다. 10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다저스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4일 만에 마운드에 올리는 초강수를 두고도 2-3으로 뒤졌다. 그러나 8회말 우리베가 극적인 결승 2점홈런을 터뜨려 4-3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시리즈를 3승1패로 마감하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