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PEOPLE] 한국전기안전공사 박철곤 사장

입력 2014-02-02 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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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현 시점의 청춘들은 아픔이 지나쳐 꿈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꿈을 잃어버린 세대. 그들에게 여전히 꿈과 희망이 남아있다며 “함께 하늘의 별을 따자”는 사람이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박철곤(63) 사장이 바로 그다. 공기업에 ‘감성경영’을 도입해 화제를 모은 그가 좌표를 잃은 젊은이들을 향해 살포시 손을 내밀고 있다. 박 사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차라리 가시밭길이라는 표현에 더 적확할 것이다. 그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을 맨몸으로 맞섰다. 두 번의 검정고시를 거쳐 행정고시에 합격해 늦깎이 공무원이 됐다. 그 후 갖가지 공직 관련 기록들을 갈아 치우며 승승장구해 ‘공무원 기록제조기’로 불렸다.

특히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재임시절 사스(SARS) 퇴치와 통합방송법 제정, 교육개혁 법안 처리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정책들을 특유의 감각과 조정역량으로 풀어내 ‘총리실 해결사’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맨 꼭대기에서 감성경영을 펼치고 있는 박 사장을 만나 경영철학과 삶의 궤적들은 들었다.


- 총리실 근무 당시 ‘총리실 해결사’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유래가 궁금하다.

“무슨 일이든 맡겨지면 다 해결해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방법을 찾으면 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하니까 어지간한 일은 다 해결이 되더라. 한때 ‘기록제조기’라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자세 덕분이다.”


- 기록제조기? 재미있는 별명이다. 무슨 뜻인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을 두 가지 세웠다. 첫 번째는 최다 기수차를 극복하고 승진한 기록이다. 공직 사회는 승진 때 기수를 매우 중요하게 보는데, 승진 시마다 전무후무한 기수 파괴 기록을 세웠다. 5급과 3급 진급 때 17기차를 젖혔고, 2급 승진 때는 10기 차, 1급 승진 때는 11기 위의 선배를 뒤에 세우기도 했다. 또 다른 기록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한 단계씩 승진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때 5급 사무관으로 출발해 노태우 대통령 때 4급 서기관, 김영삼 대통령 때 3급 부이사관, 김대중 대통령 때 2급 이사관, 노무현 대통령 때 1급 관리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 때 차관을 지냈으니, 이 역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박 사장은 정말 어려웠던 모양이던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불리 먹거나 따뜻한 잠자리에서 자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학비도 없었다. 장학생으로 선발해놓고 학생회비 33원을 안 냈다고 시험지를 빼앗아간 선생님도 있었고, 공부를 하고 있다가 ‘돈도 안 낸 놈이’ 하면서 매를 맞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분들이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키워준 것 같다.”


- 행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무엇인가.

“어머니다.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언젠가 부자 친척에게 ‘없는 살림에 공부는 무슨 공부, 머슴이나 보내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서럽게 우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다는 열망도 컸다.”


- 지금 한창 고민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건을 핑계 삼아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 환경이 어려우면 꿈을 이루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가난’이라는 녀석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성공하고 싶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이를 악물고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 ‘감성 CEO’라는 명성이 자자한데.

“한국전기안전공사는 대부분의 직원이 남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여직원들이 애로사항이 좀 있다. 그래서 나는 여직원들하고만 식사나 산책을 하면서 여직원들의 애환도 듣고, 시도 암송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저 지나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감성 CEO’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그는 최근 자신의 삶을 통해 ‘아픈 청춘’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잔잔하게 묶어서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이라는 책을 펴냈다. 좌절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결국 꿈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이 책은 나를 지켜주고 믿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인 동시에 내 신념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또한 젊은 친구들에게 ‘희망의 힘’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뜻으로 쓴 책”이라고 말했다.

에피소드 하나. 얼마 전 박 사장의 출간기념식이 열렸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리 등 정계, 재계 인사 등이 대거 다녀갔다. 마당발이라는 또 다른 별명이 실감났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마치 정부를 통째로 옮겨온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박 사장은 ‘천여불취반수기구(天與不取反受其咎)’라는 말을 했다.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는다’는 뜻. 총리실 해결사에서 감성 CEO로 변신했던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연제호 기자 sol@do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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