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 완전히 접은 건 아닙니다”

입력 2015-01-2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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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만수 전 감독은 퇴임 직후, 라오스로 날아가 야구 개척에 나섰다(위 사진). 이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선 경북 문경의 글로벌 선진학교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펼쳤다(아래 사진). 스포츠동아DB

■ 권력 떠나 행복 찾은 이만수 전 감독

라오스 야구센터 건립 등 봉사활동 활발
재단 후원 위해 직접 기업 찾아다니기도
기회가 되면 현장 컴백…해설도 한 번씩

지미 카터라는 민주당 출신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재임기간(1977∼1981년) 동안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정권을 공화당에 넘겨주기까지 했다. 카터의 반전은 퇴임 후 시작됐다. 비영리 ‘카터재단’을 설립해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서부터 한반도 북핵 위기 등 국제분쟁 중재역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빈부격차 해소, 인권신장, 국제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진정한 리더는 떠난 후에 아름답다’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프로야구에 원로는 있어도 존경받는 리더는 드물다. 퇴임 후 감독들은 다시 현장에 돌아가기 전까지 야인(野人)처럼 산다. 절대반지 같은 권력을 손에 쥐었다 잃으면 존재가치마저 상실한 양 은둔자 혹은 독설가로 변해갔다. 이런 풍토에서 이만수 전 SK 감독(57)의 퇴임 이후 행보는 ‘신선한 반전’이다. 기자는 25일 이 감독과 전화인터뷰를 했는데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내려놓는 마음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하는 사람의 확신에 찬 음성이었다.


-퇴임 이후 활동이 더 적극적인 거 같습니다.

“은혜입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1월 스케줄이 이틀만 빼고 꽉 찼어요. 감사해요. 라오스도 다녀오고, 경북 문경에 재능기부도 다녀오고. 강연이 많이 들어와서 강연하러 다니고. 믿는 사람이니까 간증도 하고. 고마운 것이 서울대 졸업생들이 ‘이만수 열린재단’을 만든다 하니까 찾아왔어요. 도와주겠다고. 서울대 출신 7명이에요. 각자 전공이 다른데 무보수로. 제 스토리를 보고 찾아왔더라고요. 감독님 돕고 싶다고. 리더가 박현우라는 친군데 서울대 야구부 주장 출신이에요.”


-퇴임 후 활동은 언제부터 생각해왔던 겁니까?

“선수 생활 은퇴할 때 준비를 못했어요. 선수를 영원히 할 줄 알았거든요. 고생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도자하며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어요. 감독대행, 감독하며 늘 사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감독 끝나면 어떡하나’ 늘 준비를 했는데, SK 최창원 구단주께서 독대할 때 물었어요. ‘이 감독, 끝나면 뭐할 것이냐’고. 그만두면 22가지 할일이 있다고 했어요. 첫 번째가 재능기부라서 라오스도 가고…. 준비를 미리 했어요.”


-요즘 사진을 보면 오히려 감독 때보다 더 밝아 보입니다.

“주위에서 듣는 얘기가 ‘얼굴이 너무 좋아졌다’에요. 제가 봐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고…. 현장에 있을 땐 시야가 좁고 야구만 봤는데, 재단도 만들고 재능기부도 하다보니까 야구 외적인 시야도 넓어져서 이전에 경험하거나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어요.”


-그렇게 좋으시다니 이제 감독직 제의 받으셔도 안 하시겠네요?

“아닙니다(웃음). 그런 질문 많이 받는데요.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되돌려 줘야 된다, 늘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재능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랬어요. 기회가 되면 현장 컴백도 하고 그런 마음이에요. 지금은 1년 동안 감독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해설도 한 번씩 하는 거고…. 완전히 감독을 접는 거 아니고, 야구를 하기 위해서 해설도 하고 그런 겁니다.”


-라오스는 또 가시나요?

“정기적으로 왔다 갔다 할 거고요. 라오스에 야구센터가 70∼80% 지은 상태에요. 완공이 3월말∼4월초라는데 거기에 맞춰 들어가요. 가서 1주일 동안 선수들과 지내면서 가르치고 그럴 생각이에요.”


-돈이 안 되는 일만 하는데 생계는 괜찮으세요?

“이때까지 많이 받았고…. 어떡합니까? 없는 거 가지고 해야죠. 라오스 다녀오는데 400만∼500만원이 들더라고요. 2월 1일 일본 가고시마에 6일 동안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재능기부 하러 가거든요. ‘좋다. 경비는 내가 다 댄다. 비행기 표도 끊어가니까 잠만 재워주라’ 했어요.(이 전 감독은 돈에 대해서는 결벽증적일 정도로 투명하다. 이 전 감독 측근에 따르면 SK에서 제의한 전별금도 사양했다고 한다.) 그 다음엔 강원도 강릉 사회인야구에서도 요청이 들어왔어요. 우리나라는 사회인야구가 활성화됐잖아요. 하룻밤 자고, 강연도 하면서 야구에 대해 얘기를 해줘야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재단을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요?

“서울대 졸업생들한테 분명히 얘기했어요. 첫 번째 봉사는 라오스에서 한다. 문어발처럼 하지 않겠다. 열린 재단 만들고 라오스에 야구장 지어 주고. 두 번째는 라오스에 교육이 안됐으니 학교를 지워줘야겠다, 그 취지고. (라오스 프로젝트가) 활성화되면 국내에 형편이 어려운 장학생으로 눈을 돌리려고 해요. 그런데 제일 문제가 재정입니다. 5억원은 있어야 한답니다. 어떡합니까? 제가 기업들 찾아가서 고개 숙여야죠. 같이 동참하자고. 전에 해보지 못한 것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감독 그만 두고, 상실감은 안 들었나요?

“솔직히, 저는 한 번도 없었어요. SK가 2014시즌 마지막 경기를 할 때, 나는 끝나는 것으로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어요. 사실은 제 꿈이 멋있게 좋은 성적 내고 감독 그만두는 거였어요. 2014년 1월에 가족에게 얘기했어요. ‘나는 감독 생활 이렇게 끝낸다’라고. 너무 힘들었어요, 8년 동안.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계속하면 끝까지 괴롭힘 당할 거 같았어요. 우승을 했어도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내가 조금 쉬었다가 다른 팀을 가는 것이 낫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이임식도 홀가분하게 다 한 거예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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