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 특집|기부천사 션 따라잡기] 5km도 벅찬 이 길을 션은 1132km나 달려왔다

입력 2015-03-2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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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혹독하지만 달콤했다. 20일 힙합그룹 ‘지누션’의 멤버 션(왼쪽)과 함께한 ‘굿액션 by 션’의 나눔 달리기 미션완수 캠페인은 약간의 몸살을 안겨줬지만, 나눔의 즐거움도 알게 해줬다. 션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일상이 된, ‘재미로서의 나눔’이 가진 파괴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스포츠동아DB

■ 션과 함께 ‘나눔 달리기’ 체험해보니…

힙합그룹 지누션의 멤버 션(43)은 매일 달린다. 바람을 가르며 서울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를 지나 한강시민공원 잠원지구를 왕복하는 10km 구간을 거의 매일 뛴다. 네이버의 기부포털 해피빈과 손잡고 전개하는 ‘내 콩이 달린다! 굿액션 by 션’ 모금의 일환이다. 모금액은 전액 내년 봄 문을 여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쓰인다. 누리꾼은 ‘콩’ 1개(100원)를 기부하고, 션은 이를 1m씩 거리로 환산해 달린다. 물론 모금액은 매일 일정치 않지만 션은 10km를 ‘미션’으로 정해 스스로 달린다. 24일 현재까지 모금액은 1억9300여만원. 션은 그동안 약 1132km를 달렸고, 앞으로 남은 거리는 약 803km다.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 김청조 기자가 션의 나눔 달리기에 동참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달린 보람은 어떤 것일까. 김청조 기자가 그 나눔의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한 걸음에 100원씩 ‘나눔의 콩’ 모으는 기쁨에
관절에 무리 가고 발톱이 빠져도 멈출 수 없어
내게 나눔이란? 삼시세끼처럼 자연스러운 일

셋째 하율이도 연탄 나르기 봉사 놀이로 여겨
즐기는 나눔, 재미로서 나눔은 파괴력이 있죠

‘대망의 날’ 20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날씨부터 체크했다. 쨍하게 맑다. 반갑지 않다. 전날 밤 부담감에 잠을 설친 탓일까. 어깨는 천근만근, 머리도 무겁다. 알아주는 ‘저질체력’으로 10km를 뛰겠다니.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에 초조하게 날이 선 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대교 북단의 한강둔치 산책로로 향했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수 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부천사’라는 수식어답게 온화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이다. 워밍업의 몸놀림도 무척이나 가벼워 보인다. 지누션으로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 그대로다. 아!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 패기의 시작…10분 만에 몰락하다

출발의 각오는 대단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도중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더욱이 기분 좋은 봄바람에, 시원한 물 냄새를 맡으며 션과 함께 달리고 기부까지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뛰면서 인터뷰도 하겠다며 야심 차게 휴대전화 녹음을 시작했다. 호흡을 고르며 간간히 안부와 일상에 관해 물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반포대교 아래 중간쯤 나타난 작은 언덕. 멀리서는 경사가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 달리는 눈엔 초고층 빌딩만큼 높다. 언덕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첫발을 내디딘 지 10여분. 드디어 고비가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여유 속 질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다리의 힘은 점점 빠진다. 거친 숨소리는 창피했다. 하늘은 오늘따라 왜 이리 노란 걸까. 그룹 듀스의 “난 누군가/또 여긴 어딘가…” 노랫말이 절로 떠오른다. 헉헉거리며 얼마나 뛰었는지 물었다. 차분한 표정으로 발맞춰 주는 션이 대답했다.

“이제 겨우 2.5km 왔어요.”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

‘도대체 왜 뛰는 거야?’


● “즐거운 나눔의 파괴력…선행 레이스는 계속된다”

그래도 질문해야 했다.

“괜찮아요? 지금 무슨 생각하면서 뛰세요?”

“힘들지 않아서 뛰는 게 아니에요. 저도 힘들어요! 관절에 무리가 가고 실제로 발톱까지 빠진 적도 몇 번 있어요.”

그랬다. 그는 매일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오로지 ‘콩’만을 생각하면서.

“행복하고 재미있으니까요. 하루 세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의 연장선이랄까?”

션과 아내 정혜영 그리고 네 아이에게 나눔은 일상이다. 2012년 2월부터 정혜영과 하루 1만원씩 기부하는 일 말고도 2015년 1월1일부터는 연탄 기부에도 열심이다. 연탄은행의 ‘300만장 모으기’에도 세 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첫째 하음이는 저금통을 내놨고, 셋째 하율이는 연탄 나르기 봉사를 놀이라며 유치원 친구들에게 자랑했단다. 션은 최근 루게릭환우들을 돕기 위한 13억원 모금에 성공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예로 들며 “재미로서 나눔은 파괴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눔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면 훨씬 즐겁게 하고 싶어질 거에요.”

결코 여유가 있어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게 아니라는 그는 주로 강연이나, CF, 공연 등 수익금에 “적게나마 사업에서 얻는 일정액의 수입”도 더한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만큼 가난하지는 않아요. 하하!”

몇 차례 ‘유체이탈’의 끝에서 5km를 채 뛰지 못한 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션은 앞으로도 내달릴 것이다. 기부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대중과 함께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을 진정성 있게 재미로 느끼며 할 수 있다는 말, 그는 어쩌면 ‘뼛속부터 기부천사’일까.

“체험인데 더 뛰셔야죠. 하하!”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힘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5km를 마저 뛰고 돌아온 그가 말한다. “전 다음 장소까지 자전거로 이동할게요!”

김청조 기자 minigra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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